• 자존심 크게 손상시킨 민주노총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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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8월 07일 10: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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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운동하면서 “동지들, 법 좀 지킵시다!” 이렇게 소리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인기가 떨어질 것이다. 아니 잘못하면 적과 내통하는 자로 의심받을 수 있고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팍팍한 지난 세월의 유습이다. 그래서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럼 무어라고 해야 하나? 되도록이면 자주 이렇게 소리쳐야 안전하다. “법 따위는 지키지 맙시다!”

    그렇다. 부르주아 국가의 법을 우리가 지키려고 애를 쓸 게 무언가? 법이란 건 다 자본가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우리는 우리 나름의 법이 있다. 우리가 부르주아 국가의 법을 애써 지키려드는 순간 우리는 계급 지배 도구에 불과한 이 국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고, 우리는 이 빌어먹을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저 보통의 부르주아 국가라도 그러할 진데 하물며 친일파의 찬란한 전통을 이어받은 친미 예속 정권, 정통성도 없는 이 남한이라는 나라에서 정부 권력이 하라는 건 되도록 거꾸로 하는 것이 좋다. 특히 국가보안법은 안 지키는 것이, 위반하는 것이 곧 선(善)이다. 통일부에서 하는 방북교육 따위는 아예 무시하는 것이 착한 것이다.

    그런데 웬 난리들인가? 역시나 조중동 보수 언론들의 반응은 한결 같다. 아니 그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과 왜곡은 짜증스럽도록 똑 같이 반복되고 있다. ‘혁명열사릉’ 참배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초청한 쪽의 체면도 생각해야지, 그 쪽에서 그리로 한 번만 가달라고 거듭 요청하는데 속 좁게, 그리고 비겁하게시리 꼭 거절해야 했다는 말인가?

    따지고 보면 ‘혁명열사릉‘에 묻힌 사람들이 무덤 앞에 고개를 숙여서는 안될 만큼 그리 나쁜 사람들도 아니다. 동작동 국립현충원에도 나쁜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일이 따지지 않고 참배하지 않는가? 물론 냉전적인 극우보수적 시각에서 바라보았을 때야 대다수 적(敵)이고 원수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그런 극우보수적 시각과 거리가 멀다는 건 상식이 아닌가?

    그런데 새삼스럽게 보수 언론은 지난 일을 가지고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다. 그들의 뻔한 소리들이야 뭐 그리 신경 쓸 거 있겠나? 우리 갈 길을 가면 되지. 안 그런가? 그래서 민주노총이야 즉각적으로 보수 언론을 비난하는 성명을 내고 잘 대응하고 있는데 한국노총은 또 흔들리는 건 아닌지, 자기들만 빠지려고 엉뚱한 소리나 안 할지 걱정이다.

       
     ▲ 북한의 혁명열사릉. (사진=민주노총)
     

    그런데 정작 민주노총의 성명서를 살펴보면 불만이고 불안이다. “5.1절 남북 노동자 공동 행사장 바로 위에 혁명열사릉이 위치하고 있었다. 북측에서 행사장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혁명열사릉에 차량을 주차하였고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선열들이 묻혀있는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 참배를 요청하였다.”는 지리적 상황 설명이 민주노총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더욱이 “양노총은 초청한 측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하는 것이 예의상 맞지 않고, 특히 혁명열사릉이 다른 곳과는 달리 항일투쟁을 기리는 곳이라면 이는 사상과 정견, 이념을 떠나 같은 민족으로서 참관하는 것 자체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 하에 북측의 요청에 응하였던 것”이라는 설명에 이르러서는 걱정이 더 커진다. 즉흥적인 행동이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작년 8.15 남측 행사에 참가한 북측의 대표단이 공식적으로 현충원을 참배한 바 있고, 같이 동행한 통일부나 국정원 관계자들도 혁명열사릉 참배와 관련해 대표단에게 어떠한 제재나 만류를 하지 않은 점도 고려되었다.”는 해명에 이르러서는 그 궁색함이 노동운동의 자존심을 크게 손상하고 있다.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가 정당한 행동을 했다는 무슨 근거가 되는가?

    현충원을 참배한 북측 관계자는 북한의 민간인이 아닌 북한 정부 당국의 공식 대표였다. 그 사실을 들어 민주노총의 혁명열사릉 참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건 일종의 상호주의 논리인 셈인데 민주노총이 정부 당국과 스스로를 혼동하니 논리적 오류일 뿐만 아니라 예사롭지 않은 정체성의 혼란이 있다. 통일부나 국정원 관계자가 제재나 만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다니 책임 있는 행동 주체이기를 포기하였는가?

    여기서 우리는 흔히 북한의 조선직업총동맹이나 여타 ‘민간 단체’들이 실상 당국의 어용(?) 관변 단체라는 데 대하여 내심 불편했던 터에 우리 노동운동이 자랑스러워하는 ‘독립성’도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통일을 위한 만남’을 너무나 귀하게 생각한 나머지 남북 교류에 참여하면서 이제 민주노총이 이 영역에서는 정부 당국과 스스로를 혼동할 지경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다.

    그래서 섣부른 충고를 하자면 먼저 오늘의 권력 남북 양 당국은 제발 이런 문제로 하여 민족의 미래요 희망인 노동운동을 희생시키지 말았으면 한다. 당국자간 회담에서 빨리 이른바 ‘참관지 방문 제한’ 철폐 문제를 해결하든지 아니면 그것이 해결되기 전에는 북한 당국은 공연히 합의된 일정에 없던 ‘성지 명소 참관’을 강권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니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 대표가 방북을 하면 반드시 ‘성지(聖地)’로 데려가시라.

    몇 가지 소식으로 짐작컨대 5월의 작은 사건은 민주노총의 전략에 따른 것이나 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민주노총 위원장은 헌화까지 한 4명에 대해서 가벼운 징계를 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통일부에서 남북교류협력기금 지원을 받는다는 건 이미 방북교육에서 통일부가 요구하는 바를 받아들인다는 암묵적 합의가, 약속이 조직 내외에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전 계획되지 않은 즉흥적인 행동으로 조직에 재정적 손해를 끼쳤는데 이런 돌발 행동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굳이 헌화까지 한 네 사람에 대해서 묻지 않고 누구에게 묻겠는가? 더욱이 이로 인하여 민주노총에 끼친 ‘정치적’ 손해가 있다면 무거운 징계도 고려해야 한다. 산하 단위나 실무자가 즉흥적으로 일을 벌여놓고 위원장은 뒷수습하기 바빠서야 무슨 일이 되겠는가?

    보수언론의 공격이 심각한 건 바로 노동운동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마음에 그러한 공격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다. 노동운동을 적대하는 사람들에게 보수언론의 선동이 먹히는 거야 크게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을 지지한 사람의 입에서 ‘짜증스런’ 말이 나올 때는 심각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사건이야말로 매우 짜증스러울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실은 우리가 가장 깊이 생각해야 할 지점은 또 다른 곳에 있다. 만약 보수언론의 선동이 민주노총 조합원의 마음에 어떤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면 참으로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민주노총 집행부는 조합원의 의견을 충분히 정확하게 들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런 문제에서 민주노총 집행부가 조합원의 의견과 무관하게 가고 있다면 조직의 일체감은 떨어지고 결전의 순간에도 영이 서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가장 심각한 사태, 즉 우리의 사령부가 대중과 유리되는 사태를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우리 노동운동은 이미 진작에 그런 사태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노동운동에 헌신한 운동권 출신 청년들의 공(功)에 버금가는 과(過)가 바로 그 언저리에 있는지도 모른다. 항상 계급과 운동의 이익을 먼저 심사숙고하고 어떤 판단을 하는 것이 노동운동에 헌신하는 자에게 요구되는 자세일 터, 그들에게 그것이 조금 부족하다.

    어디서 사이좋게 어울려 놀다가 경찰도 아니면서 갑자기 “여러분, 법 좀 지킵시다!”라고 소리쳤다간 왕따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담배꽁초도 버리고 길가에 오줌도 싸고 그런 작은 재미를 방해하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이고 금기는 깨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착한 사람이 되기 싫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나는 “법을 지키자!”고 외치지는 않으련다. 민주노총은 법을 무시하라. 특히 악법은 어겨라. 그러나 제발 작은 법은 어기지 말라. 큰 법을 어겨라.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서나 어기지 말고 꼭 필요할 때 어겨라. 반드시 계급과 운동에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여 이익이 된다면 지체 없이 법을 어겨라. 그러나 절대로 아무 개념 없이 법을 어기지 말라. 결국 위원장의 허락과 지시에 따라 “법을 제대로 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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