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이 안 나온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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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22일 09: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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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민주노동당의 상근자 노조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박찬호나 서재응은 자본가인가? 아니면 노동자인가? 상근자 노조 문제는 그들이 이 질문을 이해하고, 대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풀릴 수 있다고 생각된다. 즉,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냐, 없느냐의 세계관의 차이에서, 이 문제는 출발하기 때문이다.

    구체에 대한 추상의 대응

    최근 <레디앙>에 올라온 전지윤씨의 민주노동당 상근자 노조를 반대하는 글을 보자면, 씁쓸하다. 민주노동당 상근자 노조가 ‘현실적으로’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무엇을 하는가에 대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다함께라는 특정정파 특유의 습관처럼, 사회주의 타령을 하고 앉아 있다.

    “민주노동당은 자본가처럼 이윤논리에 따라 움직이는가?” “당 지도부와 상근자가 계급투쟁의 대상인가?” “상근자가 당 지도부에게 착취/억압받고 있는가?” 등의 질문을 하면서 하나하나 반론을 하는 구조이다.

    또한, 퇴직금 미지급으로 당 대표를 고발한 노조원의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적을 옮긴 사례도 이야기하면서 상근자 노조를 ‘공격’한다. 그 한명의 사례를 통해서, 지금의 노조를 믿을 수 없다는 선동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관인 것은 사회주의자들이 언제나 노조를 지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반론으로, 베네수엘라 노총을 예로 든 것이다. “지배자와 동맹한 베네수엘라 노총”과 민주노동당 상근자 노조를 병치시키는 정치적 함의는 너무나 빤히 보인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이 구체적이고 복잡한 현실은 무엇인가? 통합신당으로 간 사람이 처음부터 그곳에 가고 싶어서 갔는지 여부에 대해서 그 글은 철저히 은폐하고 있다. 생업의 수준으로 노동을 했던 그 곳에서 임금이 체불되고, 퇴직금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는 그 상황, 그것도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자처하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생계를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는 그 곳에, 실망하지 않는 것이 정상인가?

    전지윤 씨는 당 재정악화로 인해서 상근자 임금이 체불되고 퇴직금이 미지급되는 상황에서 특별당비 한번이라도 낸 적이 있어서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당의 재정악화는 베네수엘라랑 평양 들락날락거리는 돈 반만 줄여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준의 것 아닌가?

       
      ▲피케팅하는 민주노동당 노조 조합원들.
     

    도대체 당의 재정이 악화되고 기존 상근자의 임금이 체불되는 대도 불구하고 당이 당 지도부와 같은 정파의 사람들을 신규 채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근자 노조는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단순히 정당이 기업주냐, 당 지도부가 상근자를 억압하느냐, 계급투쟁의 대상이냐 따위의 대응은 지극히 추상적일 뿐이다.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에서 계급투쟁과 자본가, 노동을 그렇게 나누었다고 해서, 19세기의 그것을 21세기의 이것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물론의 근본은 구체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다. 상근자 노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구체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듯한데, 이것 참 도무지 답이 안 나온다.

    정당이 기업의 논리에 따라 이윤논리에 따라 움직이지도 않고, 당 지도부가 상근자 노조를 착취하고 억압하려는 ‘의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그 둘은 계급투쟁의 대상도 아니고, 똑같은 당원이다. 하지만 그 정당의 당 지도부는 분명히 당의 상근자들을 특수하게 고용하고 있으며, 임금을 주고 노동을 얻고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게 임금을 주지 않으면 정당을 위해 상근하는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전지윤씨는 상근자들의 처우개선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노조를 반대한다. 퇴직금을 미지급하고, 임금을 두세 달 체불당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노동자 정당이란 곳에서.

    경희대학교 학생위원회에서 비정규직, 알바생 처우에 관련된 운동을 교내에서 한 적이 있다. 우리 학교의 당원들은, 우리가 민주노동당 안에서 볼 수 있는 임금체불과 퇴직금 미지급을 당한 사람들에게 단호히 말했다. “고발하고 법적 조치를 취하라. 이대로 당하고만 있으셔서는 안 된다.”라고.

    윤현식 당 법제실 국장 인터뷰

    작년에, 학생당원모임인 ‘새 세상을 열어가는 토마토 친구들’(이하 토마토)이란 곳에서 웹진을 내고, 상근자 노조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다음은 발췌한 부분. 전문과 다른 상근자 노조에 관련한 내용은 토마토 홈페이지(www.tomatos.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엄수홍 – 학생들의 경우는 당 내부사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황인데, 노조와 당 상근자의 노동자성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윤현식 – 당에서 임금을 받고 있는 상근자들은 노동자성을 갖고 있다고 봐야 되요. 부르주아 정치권력들의 근로기준법에서조차도 노동자는 자신들의 어떤 노동력을 제공해서 임금을 받으면 노동자라고 명확히 제시되어 있거든요. 노동자성을 어떤 기준으로 할 것이냐. 이것은 이념이 아니라 상식의 문제에요.

    그런데 당에서의 정책 활동가들이 그럼 노동자냐? 이걸 이원적인 구조로 말하면 안 됩니다. 노동자이면서 활동가일 수 있고, 노동자이면서 상근자일 수 있습니다. 이걸 상식이 아니라 이념으로 해결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엄수홍 – 노조가 건설되면 사용자는 대체 누구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현식 – 단체협약의 상대방은 분명히 지도부이고, 지도부가 결정하는데 있어 총체적 결정을 하려면 분명 당 대회나 중앙위원회에서 결정을 하면 됩니다. 일반적 기업의 기준에서 사용자라는 이름을 자꾸 대입을 하다보니까, 당 지도부나 중앙위원이나 당 대의원들은 자본가가 아닌데, 왜 그들이 사용자인가? 라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 발상으로는 전혀 문제의식에 접근이 안 됩니다. 단체협약이라든가 우리 노조가 요구를 해서 대응할 수 있는 대상은 분명 당 지도부나 대회, 중앙위원회 등의 결정 기구가 되겠지요.

    엄수홍 – 노조 설립이 갖고 있는 의미와 활동방향이 어떠한 것인지 질문을 드립니다.

    윤현식 – 전제조건은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운동조직 내에서 활동을 함은 조직의 이념과 가치의 지향에 대한 자신의 소망, 운동하고자 하는 방향이 일치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조직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자고 하면서, 공공연히 정규직이 아닌 상근 노동자를 두고 있는 당, 그런 단체들이 있는 것들, 성차별을 없애자면서, 정작 자기 안의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차별과 평등하지 못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강력히 주장하면서도 차등을 두고, 이런 현상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이런 건 운동권이 당장에라도 없애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많이 보이고, 당 내부에서조차 매우 많이 보인다는 것이죠. 우리 내부의 문제조차도 회복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세상의 모순을 극복합니까? 우리의 모순을 먼저 해결하자는 것이 첫 번째 문제의식입니다.

    두 번째는, 첫 번째 문제의식과 관련된 것인데, 어떤 조직이든지 그 조직이 발전되기 위해서는, 그 조직이 잘 알고, 그 조직에서 많이 활동하고, 그 조직에서의 노하우가 자신의 것인 사람들을 안에서 보호하고 키워야 합니다.

    그런데 당 상근자의 현재 구조를 보면, 우리는 그런 원칙을 실행하지 못합니다. 지도부가 바뀌면 지도부의 정치성향에 따라서 사람이 바뀌고, 이런저런 이유로 나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든가, 인사이동도 적재적소가 아니라 편의에 따라서 되던가, 이런 문제는 당의 역량을 갉아먹고, 큰일을 할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비전을 갖지 못하게 하는 그런 문제점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당 강령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공연히 당 강령에 위배되는 현상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일반 상근자들의 목소리를 단일하게 힘을 발휘토록 내세울 수 있도록 하는 통로가 현재까지는 없었다는 것이지요. 우리 상조회 회장의 공약이 노조를 만들겠다는 거였어요.

    이건 시사점이 굉장히 커요. 왜냐면, 상조회가 있고, 상조회의 회장으로 출마한 사람이 상조회의 한계를 스스로 말하면서 노조를 말한다는 것은, 그 안의 문제점이 심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즉, 상조회가 비록 물론 문제점을 말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한계가 너무나 명확했다는 거죠. 여담이지만, 상조회 회장으로 출마했던 사람이 우리한테 과거 공공연히 말했던 것은 "우리에게는 노조가 없어도 노조가 있는 곳보다 더 나은 조직을 만들 역량이 있다. 우리는 노조가 필요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그걸 말했던 사람이 노조를 만들겠다고 자기 스스로 주장했다는 겁니다. 이건 무엇을 말해주나. 결국 이 와중에 소외된 노동이 있었고, 그것을 극복키 위한 조직원들의 욕구와 요청이 하나로 모여서 나갈 수 있는 통로가 없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걸 극복키 위해서는 노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만들게 된 겁니다.

    세계관의 차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글의 시작 부분에서 말했던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 답변하자면, 박찬호와 서재응은 자본가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니다. 박찬호와 서재응은 분명히 생산수단을 스스로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금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구단과 관중, 마케팅, 자신의 기량 등 여러 문제가 그들의 노동에 얽매여 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은 언제나 변화하고, 19세기의 생각으로 21세기의 현실을 재단할 수는 없는 법이다. 마르크스는 그의 주장을 자기 식대로 받아들이고 마르크스의 주장이랍시고 무작정 추종하는(그리고 자신의 의도를 왜곡하는) 무리들에 대해서 단호히 말했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전지윤씨나,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무리들과 세계관이 다름을 인정한다. 나는 모든 것이 자본가와 노동자로 환원되지도 않고, 될 수도 없다고 본다. 나 자신이 사회주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주의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구체적 현실에 대해서는, 단순한 이념 이상의 정밀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역사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의 근간을 이룬다. 어쨌든,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자, 이제 ‘개량’의 굴레를 씌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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