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전쟁과 독일, 고민 그리고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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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8월 07일 09: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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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중동이 다시 한번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달 중순쯤에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를 폭격하면서 대 헤즈볼라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물론 이 사건 역시 진공상태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세계 각국 언론의 기사와 칼럼들은 처음에는 이번 충돌을 누가 먼저 자극했는지를 따졌다가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갈등의 원인과 배후세력을 논했고, 카나 학살 이후부터는 특히 전쟁의 확대와 연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물론 인도적 지원과 유엔(UN) 평화권한도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지금 독일에선, 벌써부터 파병 찬반 논란

    독일에서도 신문과 방송 도처에서 이스라엘-헤즈볼라 분쟁이 주된 주제가 되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또 하나의 논점이 최근에 두드러지고 있다. 그것은 이번 위기에서의 독일의 역할이다. 즉, 만약 유엔군의 평화임무가 결정되면 독일군도 파병해야 할지, 그러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논쟁이다.

       
     ▲ 아돌프 히틀러
     

    유엔군 평화임무 자체가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왜 독일군의 잠재적 파병에 대해서 그리 열정적으로 논쟁하는지에 대해 의아해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은 전쟁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을 무척 무겁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는 독일은 유대인들에 대한 책임도 있지만, 전쟁과 파시즘에 대한 책임도 있다. 지금은 이뤄지지 않은 만약의 경우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지만, 진정한 책임을 질 경우에는 이번 사태가 독일에게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스라엘과 관련해서 독일의 책임이 왜 그렇게 무거운가? 어떻게 보면 1940년대부터 이 지역에서 꾸준히 발생하곤 해왔던 갈등과 충돌들은 독일 나치의 유대인 박해와 대량 학살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2차 대전 후에 독일의 유대인들을 비롯해서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민을 가서 1948년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역사적 책임이 무거운 이유

    이스라엘의 국가를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국하려는 생각과 그러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들은 적어도 19세기 말부터 존재했었다. 하지만 독일 나치의 만행으로 인해서 유대인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국제적인 지지를 자극했고, 결국 건국이 실현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팔레스타인은 기원전 13세기에 유대인 조상들이 살았던 지역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시각에서는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천년 동안 거기서 살아왔던 팔레스타인인들과 주변 국가들은 유대인들을 단지 침입자로 보는 것도 당연하다.

    이스라엘의 건국을 구체적으로 추진한 테오도르 헤르첼(Theodor Herzl)은 오스트리아 유대인이었고 처음에는 부자인 유럽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팔레스타인에 땅을 구입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결국 건국을 가능하게 한 것은 유엔의 결정이며 영국의 움직임이었고, 그 이후부터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군사적 그리고 정치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전후 독일은 역사적인 책임을 지고 ‘전쟁은 영원히 없도록!’이라는 구호 아래 유대인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때문에 독일은 반드시 이스라엘을 위해서 유엔에서 수없이 거부권을 행사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편이 아니더라도 중동에서 분쟁이 생길 때에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낸 적이 거의 없다.

    이번 위기는 독일의 민감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노출시켰다. ‘만약 유엔군 평화임무가 결정되고 독일군도 위기지역으로 파병되고 이스라엘 군인에게 총을 겨냥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제기된 것이다.

    라퐁텐 “독일, 팔레스타인에 대한 책임도 있다”

       
     ▲ 테오도르 헤르첼
     

    한 편으로 보수정당 기민당/기사당(CDU/CSU), 사민당(SPD), 녹색당(Gruene) 등에서는 역사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에 유엔결의안의 경우에 오히려 파병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민당 출신 국방장관 융은 유엔의 요청 땐 독일이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언급으로 자기의 취지를 분명히 했다. 그런 가운데 메르켈 총리(CDU)는 독일군은 요즘 다른 여러 나라로 파병되어 있는 상태인 만큼 레바논 임무는 무리라며 중립적 반대 입장을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른 한 편으로 자유당(FDP), 좌파당(Die Linke)과 사민당 일부 좌파들은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2005년에 설립된 좌파당 간부인 오스카 라퐁텐은 한 일간지의 회견에서 독일군 파병을 반대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 우리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책임도 있다. 이 사실은 독일에서 대체로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이스라엘의 건국과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 내버리는 것은 결국 독일 나치들의 범죄로 인해서 생긴 결과물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독일 유대인 중앙회의(ZRJ)는 물론이고 1947년에 홀로코스트 일부 생존자들과 함께 설립된 반파시스트협의회(BdA)도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유대인 중앙회의는 역사적 책임과 독일군과 이스라엘군의 잠재적 충돌을 우려하면서 강하게 반대한 반면, 반파시스트협의회는 “우리는 이스라엘 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의 존재권리를 주장한다. 우리는 유엔의 중동결의안과 요구의 실천을 촉구한다”며 “현재 중동전쟁과 관련해서는 우리는 테러리즘과 국가테러리즘 모두를 고발한다”고 하였다.

    파병시 독일군의 마지막 금기 사라져

    독일 사회여론 대부분은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스라엘 총리 올메르트는 독일군 파병을 환영한다는 발언으로 논쟁을 한층 더 높였다. 이스라엘이 제안한 시나리오는 독일군이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의 국경지역에서 프랑스 평화유지군의 일부분으로 병참업무를 맡고, 무장군인은 헤즈볼라의 무기운송을 제압하기 위해 레바논-시리아 국경에 파병시키는 것이다.

    나치독일의 항복 이래 10년 만(1955년)에 독일은 다시 군대를 가지게 되었지만, 단지 자위군으로 허용될 정도였다. 하지만 독일은 통일이 되고 나서 4년 만에 국제분쟁에서 무장군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기본법(헌법)을 개헌했다. 이후에는 캄보디아, 소말리아, 발칸,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수단, 콩고 등에 독일군이 파병되고 독일은 공식적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2002년 당시 독일 국방부장관 페터 슈트룩은 전통적 국방은 더 이상 실현성이 없고, “앞으로는 독일의 안보를 위해 힌두쿠시(중앙아시아에 있는 산맥)에도 파병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로 해외파병의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독일에서도 9.11 테러 이후에는 테러에 대한 자위와 위기지역에서 테러리즘이 자랄 수 없도록 하려는 정치적·도덕적 전략을 발견할 수 있다.

    만약 독일군이 정말 중동으로 파병될 경우 이는 독일군의 마지막 지리·역사적 금기가 막을 내리는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유엔의 평화임무가 결정될 경우에 독일이 역사적 책임 때문에 파병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독일로서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도덕적 문제인 것이 사실이다.

    독일군 파병하지 말아야

    마치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 각본과 비슷하게 남한과 북한이 협력해서 중국지역에 있는 테러조직과의 전쟁을 개시하는데 일본이 개입하는 것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복잡한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 독일 브레멘에서 벌어진 반전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레바논 국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독일 인디미디어)
     

    파병반대 쪽은 유대인에 대한 책임과 독일군의 자위활동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파병을 찬성하는 쪽은 역사적 책임은 유대인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자유, 인권과 화해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기 때문에 유엔 평화임무이면 파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만이 아니라 다양한 유엔 회원국과 중동지역 국가들의 지지가 이루어진다면 유엔 평화유지군은 최선의 해결조치이다. 하지만 독일은 잠재적 유엔 임무에 굳이 군대를 파병할 필요가 없다. 메르켈 총리가 말한 것처럼 독일이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꼭 조상들처럼 총을 들고 세계로 나갈 필요가 없다.

    현재 상황에서는 잔인한 전쟁의 중단, 인도적 지원과 유엔 평화유지군의 임무가 이루어지도록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결국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견되기로 결정이 난다면 독일은 다른 방식을 통해서 제몫의 기여를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쟁·파병은 가장 쉬운 수단일 뿐

    이스라엘 총리 올메르트의 제안에 따를 경우에 괜히 이스라엘의 행태를 정당화해주는 꼴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다. 독일은 군대를 파병하지 않아도 평화, 자유와 평등을 위한 것이라면, 설사 이스라엘에 불리할지라도 지금 현재를 위해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프러시아 장군 클라우제비츠가 말했다. “전쟁이란 다른 수단으로 계속되는 정치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의도와 좀 다르게 해석하면, 정치를 잘만 하면 폭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1999년 코소보, 2003년 이라크, 2006년 팔레스타인 등 최근에 전쟁들은 여러 이해관계와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역부족으로 인해 결국 가장 쉬운(?) 수단인 전쟁을 택하고 말았던 게 사실이다. 독일은 역사적 책임 때문에 아직 결정되지도 않은 파병에 대한 걱정에 빠져 있다. 하지만 독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그냥 군대를 보내버리는 ‘관습’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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