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쯤 목숨 걸지 않고 형산강을 건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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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8월 04일 08: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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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하게’ 뜨거운 날이다. 숨쉬기조차 벅찬 날씨다. 8월의 태양은 등짝에도 얼굴에도 하염없이 그 열기를 퍼부으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뜨거운 시작을 알렸다. 8월 1일 새벽 2시 55분 노무현정권의 폭력타살로 16일간의 사투를 벌이던 하중근 동지가 세상을 떠났다.

    살아있던 마지막 순간까지 노동의 권리를 누리지 못했던 열사의 넋이 신음처럼, 통곡처럼 햇살로 부서져 내리는가 보다. 10일간의 포스코 점거 투쟁이 자본과 정권의 마녀사냥에 농락당할 동안 민주노총은, 아니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이 투쟁을 제대로 엄호하지 못했다. 그 뒤늦은 후회가 또 한 분의 열사 앞에 부끄러울 뿐이다.

    8월 4일 오후 2시 30분 고 하중근 열사의 시신이 누워있는 동국대병원 앞에서 <고 하중근 열사정신 계승, 경찰살인폭력 규탄, 책임자 처벌, 손배가압류 철회, 구속자 석방, 건설노조 공안탄압중단, 포항건설노조 투쟁승리를 위한 민주노총 결의대회>라는 긴 명칭의 집회가 시작되었다. 울산에서 광양에서, 서울에서, 충청에서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싸웠을 노동자들이 포항으로 모여들었다. 1만의 대오, 열사가 돌아가시기 전 참으로 소망했을 그 동지들이 모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열사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

    8월 1일부터 3일까지 포항투쟁의 진실을 알리고 정권의 살인적 만행과 거대자본 포스코의 노동탄압 책임을 묻기 위해 상경투쟁을 벌였던 포항, 전남동부, 경남서부 상경투쟁단 동지의 투쟁보고에 이어 시작된 본대회에서 민주노총 조준호 위원장은 “정권과 자본에 경고하고 요구한다.

    폭력책임자와 경찰청장을 구속하라. 포항건설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라.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지금은 열사를 추모할 때가 아니다. 승리할 때까지 투쟁할 때”라며 8월 9일, 19일 포항에서 민주노총 집회를 다시 열고 정권이 완전히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총파업 투쟁을 결행할 것이라고 배수의 진을 쳤다.

    정광훈 민중연대 상임의장은 “노동자 농민을 때려죽이는 노무현 정권을 처단하는 것이 하중근을 살게 하는 길”이라며 살인정권 노무현 정권을 규탄했다.

       
    ▲ 4일 오후 경북 포항 형산교차로에서 결의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포항=연합뉴스)
     

    무대 중앙에 하중근 열사의 영정이 모셔진 가운데 지민주 동지는 열사추모곡 <끝내 살리라>를 바치며 “차별 없는 세상, 지긋지긋한 노가다 인생 버리고 편히 쉬시라”며 고단한 삶을 투쟁 속에 헌신한 동지의 넋을 위로했고, 그래서 싸워야만 하는 건설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해방 쟁취!’의 만장이 나부끼는 가운데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이대로는 열사를 도저히 보낼 수 없다. 포스코는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죽인 놈 찾아내서 처벌해야 한다”며 야만적 노동착취와 탄압의 대명사 포스코와 살인 폭력 정권을 규탄했다.

    살해당한 노동의 권리

    그렇다. 하중근 열사는 정권과 자본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러나 죽임을 당한 것은 열사만이 아니다. 거대자본 포스코가 용광로 속으로 노동자의 고혈을 빨아대고 있을 때 포항건설노동자들의 생존은 철저히 죽임 당하고 있었다.

    목공과 제관, 설비, 기계라는 다양한 직업에도 불구하고 ‘노가다’로 통칭되는 건설노동자들은 포스코에서 탈의실조차, 식당조차 변변히 사용할 수 없는 하층민이었다. 살아 있으나 산 자로 대접받지 못했고, 인간이었으나 인간답게 살지 못했다. 구걸해서 얻어질 것이 아니라면 쟁취해서 누려야 한다고 느꼈던 건설노동자들은 그래서 최소한의 요구, 생존의 요구를 내걸고 파업에 나섰던 것이다.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하자는 것이 도대체 맞아 죽을 만큼의 요구인가? 남들 다하는 토요 유급 주5일제 하자는 게 국가경제를 뒤흔드는 폭도들의 요구인가? 답하라, 답하라, 답하라고 외쳤지만 돌아온 것은 경찰의 방패날과 물대포, 난자하게 짓이겨진 동지의 시신이었다. 포항건설노동자들의 권리는 빼앗긴 것만이 아니라 살해당했다.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포항건설노조 지갑렬 위원장 직무대행은 말했다. “열사의 영정 앞에 투쟁 승리를 결의했다. 깨지고 짓밟히며 여기까지 왔지만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열사 앞에 삭발하면서 구속을 각오했다. 포스코 자본과의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해 열사의 한을 풀자”

    이 당찬 각오와 결의는 이어진 투쟁결의문에 고스란히 살아남아 집회 참가자들을 일으켜 세웠다. 집회 시작 두 시간 만이다.

    가자. 형산강 다리 넘어 포스코로

    “오늘 우리는 포스코까지 행진해 평화적으로 집회를 마무리할 것입니다. 동지들 포스코로 갑시다”라는 목소리와 함께 대오는 뜨거운 거리를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깃발과 만장과 영정.
    영정으로 모셔진 하중근 열사의 눈빛은 노동해방 쟁취! 아로새겨진 만장에 꽂힌 채 포스코를 향해 걷는다. 살아서는 돌아가지 못했던 작업장을 만장을 앞세우고 걷는다. 수천의 동료들과 함께 탈환해야 할 일자리를 찾아 걷는다.

    그러나 열사는 형산강 교차로 앞을 막아선 경찰병력에 다시 가로막혔고, 경찰은 여지없이 소화기와 물대포를 난사하며 포스코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오후 4시30분부터 시작된 형산강 교차로 앞 공방은 앞뒤로 완전히 대오가 병력에 포위당한 상태에서 6시 30분경 마무리집회가 열리며 잦아들었다. 그러나 열사가 숨져간 바로 그 자리에서 오늘도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나갔다.

    형산강 다리를 넘어 포스코까지, 언제쯤 우리는 목숨을 걸지 않고 건널 수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기억하고 있을까? 그 자신 한때 폭력정권에 의해 목숨을 잃은 대우조선 이석규 열사의 영정을 부둥켜안고 거리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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