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방형 경선제 둘러싼
    정의당 전국위원회 토론 단상
    [기고] 당 정체성 강화와 당 민주주의의 장기전략 논의로 이어지기를
        2019년 09월 23일 11: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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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의당의 5기 1차 전국위원회가 열렸다. 총선을 목전에 두고 새롭게 구성된 전국위원회는 다루는 주제들의 무게만큼 많은 인원이 참석하여 8시간의 회의를 진행하였다. 이날의 전국위원회는 5기의 새로운 사업 방향을 결정하는 것과 더불어 다가온 총선 대응이 주요 주제였다.

    이날 정의당 전국위원회에서 가장 치열한 토론은 ‘개방형 경선제’ 도입과 관련한 토론이었다. (개방형 경선제는 정의당 국회의원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후보의 선출 과정을 진성당원들의 직접투표를 통한 선출이 아니라 당원 외에도 선출과정에 참여할 의지를 가진 비당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편집자) 토론은 팽팽한 찬반 토론을 거친 뒤 ‘개방형 경선제 도입을 위한 세부 방안을 차기 전국위원회에 제출할 수 있도록 TF를 구성한다’는 합의를 결론으로, 도입과 관련하여 차기 전국위원회로 결정을 연기했다.

    진성당원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당과 개방형 경선제

    정의당에서 이 토론이 격렬해졌던 이유는 진성당원제를 기반으로 한 공직후보자 선출이 진보정당의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찬성 발언을 했던 전국위원조차 “진성당원제는 당원으로서 자부심”이라 표현한 것처럼 당원투표를 통한 공직후보자 선출 그 자체가 진보정당의 가장 큰 특징이면서 당원들에게는 자부심이기도 하다.

    민주당 계열과 자유한국당 계열의 기성정당들은 당대표가 지역위원장을 임명하고 지역위원장이 대의원을 임명하고, 임명된 대의원들이 총선 후보를 결정해왔다. 대의원들이 총선 후보를 결정하기는 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대의원에게 가장 큰 입김을 불어넣는 사람은 지역위원장이었고, 결국 지도부 누군가에게 줄을 서는 것이 출마를 할 수 있는, 공천의 기준이 되는 계파정치, 보스정치의 온상으로 자리잡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진성당원제에 기반한 당원직접투표를 통한 진보정당의 공직후보 선출은 정당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진보정당의 성장과 함께 진성당원제는 다른 기성정당 내부에도 당원 참여를 요청하는 각종 제도의 도입에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정의당의 개방형 경선제 도입과 관련한 논쟁은 기성정당의 도입 논의와는 성격이 다르다. 기성정당들은 제한적인 당원 참여라는 불안정한 당내 민주주의로 인해 당원이 아닌 유권자까지 포함하는 제도로서 개방형 경선제 도입을 논의한 것인 반면, 정의당의 개방형 경선제 도입 여부는 진보정당의 당내 민주주의의 방향을 바꾸는 논쟁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도전인가, 책임회피와 잘못된 현실 판단인가

    찬성을 주장한 전국위원들의 주장은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도전을 시작하자는 것으로 집중되었다. 국민들에게 정의당 후보를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고 개방형 경선은 당원이 되는 것이 부담스러운 유권자에게 개방형 경선제에 참여하여 먼저 후보자와 만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는 점을 찬성 이유로 이야기하였다. 당과 지지자의 일체감을 높임으로써 당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입당은 많은 고민을 요구하는 일이다. 정당에 입당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특정한 입장을 표명하고 그 입장에 따라 살아가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을 자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떄문에 개방형 경선제의 시행은 입당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정의당에 대한 호감과 지지를 표명할 수 있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지는 사람들, 피선거권이 부여되지 않은 청소년 등은 입당 자체가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거나, 법적 조건에 맞지 않아 입당을 거부당하는 일을 당하기도 한다. 개방형 경선은 이런 사람들의 정치적 참여를 확장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기도 하다.

    반면 반대를 주장한 전국위원들은 개방형 경선제도에 대해 크게 두 가지의 의문을 던졌다. 하나는 후보를 결정하고 국민들에게 내세우는 정당의 기본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정책과 후보를 통해 당의 정체성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지지를 호소하는 게 정당의 기본과제인데 개방형 경선제는 이러한 정당의 책임을 유권자에게 넘김으로써 정당의 책임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이다.

    다른 하나는 개방형 경선제가 과연 당과 참여자의 일체감을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미 개방형 경선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를 살펴보더라도 대체로 정당 일체감이 있는 사람들이 개방형 경선제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의당이 원내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인 나라에서, 그리고 정치적 변화가 다이나믹하게 나타나는 나라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일체감을 형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진보와 중도, 보수가 모두 분당과 합당을 반복하는 정치적 현실이 그것을 더 어렵게 한다.

    일회성 이벤트보다 뚜렷한 정체성이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가는 길

    개인적으로 정당의 책임성이라는 문제, 정당과 경선에 참여하는 유권자들의 일체감이 일회성 행사를 통해 형성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으로 (개방형 경선제) 반대 의견을 전국위원회에서 표명했다. 물론 개방형 경선제 그 자체가 무조건 나쁜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방형 경선제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 진성당원 중심의 진보정당의 정신과 어긋난다는 점, 나아가서 특히 비례대표 후보 선출에서의 개방형 경선제는 오히려 개방형 경선제의 대부분 사례가 지역후보 선출에서 활용된다는 점에서 더더욱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해외의 정당들에서 개방형 경선제가 도입되었던 배경에는 진성정당제의 전통과 문화가 취약한 현실에서 정당이 유권자와의 일체감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강화하면서 본선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의식이 깔려 있다. 유권자와 정당의 일체감은 정당이 내세우는 정책, 후보, 정체성에 대한 것에서 이뤄지는 것이지, 정당의 정치행사에 유권자들이 일회적으로 참여하는 이벤트를 통해서 형성되는 것은 아니며, 혹여 일시적으로 형성되더라도 안정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최근 몇몇 여론조사에서 나온 정의당 지지율의 변동은 조국 장관 임명건의 찬반 여부와 상관없이 이슈와 정치인의 호감도로 인해 형성된 지지율이 얼마나 쉽게 큰 진폭의 높낮음이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결과를 두고 우리는, 정의당은 그리고 한국 정당들은 대중적 성과를 가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개방형 경선제의 논의가 국민이나 당원이냐의 싸움으로 비춰지지 않길 바라며 보다 충실한 정의당의 정체성을 뚜렷히 하고 당내 민주주의를 위한 장기적 전략으로 논의되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정의당 전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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