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쪽으로 튀어!』 를 읽으니, 황이민이 생각나
        2006년 08월 03일 06: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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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 나오는 황이민은 전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민주버스노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 <편집자 주>

    『남쪽으로 튀어!(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를 받아 들자마자, 황이민이 생각났다. 책 표지로 쓰인 40대 사내 얼굴 그림이 민주노동당에서 사무부총장으로 일했던 황이민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선 굵은 생김생김이 그러했고, 잔 정 따위 없이 거칠 것 같은 표정이 그러했다.

    『남쪽』은 한국에서도 유행했던 운동권 후일담 문학의 일본판이다. 사실, 진짜 후일담 문학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혁명가보다는 그 언저리에 있었던 사람들 얘기를 후일담 문학이라 하면 좀 ‘남사스럽지’ 않은가?

    진짜 후일담을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들은 너무 아파 아무 말도 못하거나, 아픔을 피하기 위해 망각 최면에 빠져 있거나, 아직도 혁명 중이라 문학적일 수 없다.

       
     

    각설하고. 『남쪽』은 한국 후일담 문학하고는 천양지차다. 혁명가를 사귀었던 여자가 커피 잔을 움켜쥔 채 눈물 흘리는 한국 문학에 질린 독자라면, 철부지 혁명가 아버지를 둔 초등학교 6학년생의 좌충우돌 일상이 더 ‘혁명적’임을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후일담 문학을 읽고 있자면, 이게 한국인가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한국에 있으되, 그들이 그리는 풍광, 언행, 날씨는 하나같이 동유럽의 칙칙한 가을이나 겨울이다. 한국에 살면서 동유럽을 생각했던 사람들은 어차피 혁명에 성공하지 못했을테니, 그들이 후일담에 빠져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반면 『남쪽』에는, 아버지가 전직 혁명가든 현직 장관이든 열한 살 배기 모두가 그러할 수밖에 없는 유쾌함과 덥고 습한 일본의 날씨가 그대로 살아 있다.

    혁명이 한 때 실패했다고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지는 않는다. 웃음이나 울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또 하면 되는 것을 웬 호들갑들인지. 『남쪽』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도쿄의 초등학교 6학년생 지로는 이상한 아버지를 두고 있다. 허구한 날 집에서 노는 것도 창피한데, 국민연금을 받으러 온 공무원이나 예쁜 담임 선생님한테 “체제에 빌붙어 사는 개”니 뭐니 뜻도 모를 막말을 해대는 아버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로의 아버지는 ‘혁공동(혁명 공산주의자 동맹)’의 행동대장으로 미군 팬텀기에 불을 지르기도 했던 유명 인사다. 인터넷에서 아버지 이름을 검색하면 자동으로 경시청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것을 본 지로는 질겁한다. 지로는 ‘아나키스트’라든가 이상한 말들을 공부하다, 곧 포기하고 만다.

    같은 반 친구들과 “출석번호 순서대로” 여탕을 훔쳐보는 게 더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지로는, 열다섯에 ‘참다운 공산주의적 혁명조직’과 투쟁강령을 만들었다는 김모 씨보다는 한참 떨어지는 모양이다.

    이러니 부자지간에 말이 통할 리 없다. 집에서 뒹굴대며 프리라이터(free writer)라 자부하던 아버지는 마침내 소설을 쓴다. 국회의사당을 폭파한다는 줄거리의. “와, 멋있는데? 스파이 소설 같아.” 지로가, “아버지는 소스에 케첩 섞을 거야?”라고 물으면, “안 섞어. 케첩과 미 제국주의는 우리의 적이야.”라는 답이 돌아온다. 불량 중학생에게 돈을 빼앗기던 지로가 가출하여 집에 전화를 해보니, 아버지는 빨리 끊으라고 성화다. 여동생과 플레이 스테이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노맹이 뜨뜻미지근하여 ‘혁노맹(혁명적 노동자계급 투쟁동맹)’ 활동을 한 황이민의 아들은 맑스를 가장 존경한다. 하지만 말이 안 통하긴 마찬가지. 황이민의 중학생 아들은 아버지가 ‘개량주의자’라고 생각한다. 키도 아버지만큼이나 훌쩍한 황이민의 아들은 오래 전부터 아버지보다 세상물정에 밝았다.

    비와서 ‘노가다’ 공치는 날이면 황이민은 아들에게 500원을 쥐어주며 나가 놀라고 한다. 아내와의 오붓한 시간. 500원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아들은 창가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피아노 건반처럼 쏟아지는 빗방울을 지켜본다. 제법 시간이 지나면 창가에 대고 묻는다. “아빠, 아직 멀었어?”

    어찌어찌하여 지로네는 오키나와보다 더 남쪽의 이름 모를 섬으로 쫓겨나듯 이사한다. 다 이야기하자면 얘기가 너무 길지만, 어쨌거나 옛 혁명가 아버지가 또 대형사고를 친 덕분이다. ‘혁공동’에 몸담았던 사람들 대부분이 학원을 하여 떼돈을 벌거나 변호사가 되어 ‘시민운동’, ‘환경운동’을 하는 시절에 지로네는, 아버지를 따라 전기도 수도도 없는 외딴 섬 오두막에서 살게 된다.

    황이민의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자주 이사할 수밖에 없었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머니 일자리’를 따라 다닌 것이다. 동년배 친구들 월급만큼을 연봉으로 버는 황이민이 민주노동당 일을 진작에 관뒀다면 그 아들도 남들처럼 학원에 다니고, 보고 싶은 책도 맘껏 봤을 것이다. 하지만 황이민은 공장에서 비밀활동을 하거나, ‘길’을 찾아 산사(山寺)를 헤매거나, 지병을 고치려 요양생활을 하며 지난 20년을 살았다. 아들은 아들대로 컸다. 아버지의 손길 없이.

    황이민이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반골인 것처럼 지로의 아버지도 어디 있든 사고뭉치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지로의 아버지는, 섬에 리조트를 만들려는 도쿄의 큰 건설회사와 그에 결탁한 지방의원에 맞서 싸우게 되고, 철거깡패와 진압경찰들에게 잡혀갈 것이 뻔한 시점에 이르러 아들에게 말한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 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하지만 너는 아버지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 아버지 뱃속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벌레가 있어서 그게 날뛰기 시작하면 비위짱이 틀어져서 내가 나가 아니게 돼. 한마디로 바보야 바보.

    ……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황이민은 이런 가르침을 아들네 반 전체를 모아 놓고 했다. 교장선생님께서 친히 전화하셔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강의’를 청탁할 만큼 2년 전 민주노동당의 위세는 대단했다. 아이들 반응이 얼마나 대단했는가 하는 영웅담을 황이민으로부터 세뇌받기는 했지만, 당시에나 지금이나 눈꼽만큼도 믿지 않는다. 카스트로와 친구였다는 지로네 아버지보다 황이민의 허풍이 조금 더 세다.

    그날 강의에 대해 아들이 무어라 했는지, 황이민은 전하지 않았다. 애비만큼이나 무뚝뚝하다는 황이민의 아들이 그날의 감상을 곧이곧대로 이실직고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분명한 한 가지는, 제 학교 교단에 떡하니 버티고 선 아버지가 눈부시지 않을 아들이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대담무쌍한 웃음을 날렸다. 하얗게 빛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지로는, 저 사람은 평생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을 거라고, 멀고 먼 누군가를 바라보듯 망연히 생각했다.

    …… 인류는 돈을 지닌 시대보다 지니지 못했던 시대가 훨씬 더 길었다. 그러한 인류 끄트머리의 기억이 아버지에게만 진하게 남은 것이다. …… 하느님은 이따금 이런 인물을 정기적으로 지상에 내보내시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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