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더 이상 아무 희망도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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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8월 03일 03: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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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세기 초에 쥘 게드라는 프랑스 사회주의자가 있었다. 그는 운동권 안에서도 가장 원칙적이고 급진적인 입장으로 유명했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 사회당의 또 다른 기둥이던 장 조레스와는 대조적이었다. 게드가 좌파라면 조레스는 우파, 게드가 혁명주의자라면 조레스는 개량주의자, 게드가 근본주의자라면 조레스는 실용주의자,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형식 논리학의 상투적인 분류법보다는 훨씬 복잡한 것인가 보다. 조레스는 1914년 여름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다가 극우파에게 암살당했다. 반면 게드는 어땠는가? 그는 전시 내각에 합류했다. 전에는 사회주의자 국회의원 한 명이 부르주아 정당의 내각에 참여했다고 ‘배신자’라고 목청을 높였던 게드였다. 그런데 막상 장관이 되고 나더니 한 술 더 떴다. 원래 민족주의 우파였던 사람들보다 더 심한 반(反)독일 발언들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레닌은 한때 게드를 존경했었다. 조레스의 개량주의로부터 프랑스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을 지키는 투사라고 봤다. 하지만 1차 대전 와중의 게드의 모습은 도저히 눈 뜨고는 못 봐줄 것이었다. 레닌은 게드 류의 사람들을 ‘사회배외주의자’(사회주의자의 탈을 쓴 국수주의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좌파’

    지금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 세계인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이 공격의 최고 결정자는 에후드 올메르트 수상이다. 그는 리쿠드당에서 갈려나온 신생 우파정당 카디마당 소속이다. 한마디로, 그럴만한 인물이다.

       
    ▲ 이스라엘 노동당 당수 아미르 페레츠
     

    문제는 공격의 실무 책임자인 국방장관이다. 현재 이스라엘 좌우연립내각의 국방장관은 부수상도 겸하고 있다. 그는 바로 노동당 당수 아미르 페레츠다.

    사실 이스라엘 노동당을 다른 나라의 좌파정당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무리다. 아주 평균적인 사회민주주의정당의 기준으로 봐도 이 당은 유별나다. 이 당이 ‘사회주의’를 내걸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시온주의’를 전제로 한 ‘사회주의’다. 이스라엘의 공격적인 영토 확장과 대(對) 아랍 전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사회주의’인 것이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며 제1, 2차 중동전쟁을 일으킨 벤 구리온 수상이 노동당 소속이었고, 제3차 중동전쟁 때의 수상은 이스라엘 노총(‘히스타드루트’라 불린다)의 창립자 레비 에슈콜이었으며, 제4차 중동전쟁 때도 군 통수권자는 노동당의 골다 메이어 수상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좌파’(이런 말로 불릴 수 있다면)는 왕년의 소련이나 지금의 북한이 아니다. 이스라엘 노동당이다.

    기대와 실망의 롤러코스터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실망이 크다. 왜냐하면 그만큼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9일의 노동당 당 대표 경선에서 노총(히스타드루트) 위원장인 페레츠가 원로 정치인 시몬 페레스를 물리쳤을 때, 다들 ‘이변’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이변이 중동 정세의 교착 상태를 푸는 희망의 조짐이 아닐까 기대했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페레츠는 노총 위원장 시절 우파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었다. 1995년에 위원장이 된 이후 정치총파업을 남발한다는 공격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룰라’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이스라엘의 사회복지가 점점 줄어드는 이유를 과도한 군사비와 정착촌 유지 비용에서 찾았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복지 확대를 바라는 이스라엘 노동계급의 열망을 평화 정책의 필요성과 결합시킬 수 있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 노동당 안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신선한 접근법이었다.

    페레츠의 당 대표 당선이 불러일으킨 새 바람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은 크게 둘로 나뉜다. 절반은 유럽의 아시케나지 유대인이고, 나머지 절반은 오래 전부터 중동이나 북아프리카 지역에 거주해온 세파르디 유대인이다. 이스라엘 사회의 주류는 아시케나지다. 세파르디는 대개 가난하고 문화적으로도 비주류 취급을 받는다.

       
    ▲아미르 페레츠와 이스라엘 노동당의 총선 로고
     

    이스라엘 노동당은 아시케나지의 당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세파르디는 빈곤층이면서도 극우 종교정당들을 지지한다. 어찌 보면 한반도의 어느 나라 사정하고도 비슷한 이 역설이 오랫동안 이스라엘 사회의 전반적인 우경화의 토대가 되었다. 그런데 페레츠는 모로코 출신의 세파르디다. 말하자면 정치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희망의 카드였다.

    페레츠의 평화운동 경력도 상당한 신뢰감을 주는 것이었다. 그 역시 다른 이스라엘인들처럼 참전 경력(예비역 대위)을 갖고 있고 아직도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1980년대에 의회 안에서 “지금 평화를”(Peace Now) 운동의 대변자로 활약한 바 있다. 이 당시 그는 노동당 안에서도 소수의 별난 사람들 취급을 받은 이른바 ‘8인조’의 일원으로 팔레스타인과의 대타협을 주장했었다.

    이쯤 되면 작년 말, 중동 정세에 꽤 정통한 사람들이 왜 ‘페레츠 변수’에 주목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는 “변화의 때가 왔다”는 슬로건으로 올해 봄의 총선에 뛰어들었고, 다들 정말 그 때가 왔다고 기대에 부풀었던 것이다.

    100년 전의 게드, 오늘의 페레츠

    아쉽게도 총선의 승자는 노동당이 아니라 카디마당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파의 압승도 아니었다. 노동당 외에도 좌파 사회민주주의정당인 메레츠-하차드당, 공산당 계열의 하다쉬(‘평화와 평등을 위한 민주전선’) 등이 나름대로 자리를 지켰고, 연금 문제를 전면에 내건 신흥정당 노인당이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카디마당으로서는 노동당과 연립정부를 수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페레츠는 처음에 재무장관 자리를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은 국방장관을 맡게 됐다. 그가 국방장관에 취임한 첫 날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해방민중전선(PFLP)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취임연설치고는 참으로 뜻밖이었다. 그러고 나서 지금까지 올메르트-페레츠 내각은 이스라엘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더 공격적이고 모험적인 군사정책을 착착 추진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많은 이들이, 페레츠가 전에 없이 잔혹한 면모를 보이는 이유를 이렇게 풀이한다. ‘대 테러 전쟁’의 주도권을 잡음으로써 이스라엘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 모으려 하는 것이라고.

       
     

    다른 나라의 ‘정상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집권 후에 자신들이 우파 정부보다 더 자본가들에게 호의적임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이야기다. 다만 브라질의 룰라가 외채 상환 조건을 갖고 허리를 굽힌다면, ‘이스라엘의 룰라’는 자기가 무고한 아랍인들을 죽이는 일에 훨씬 더 단호하고 숙련돼 있다는 걸 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회배외주의’도 지난 세기보다는 21세기 판본이 훨씬 더 부박하고 잔인한 셈이다.

    하여튼, 한때 중동평화의 기대주였던 자는 지금 레바논 양민학살의 국제 전범(戰犯)이 돼 있다. 이것은 발칸반도의 도살자 슬로보단 밀로세비치가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불렀던 것만큼이나 희극적이면서 또한 비극적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것으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에 걸었던 세계인들의 마지막 미련마저 배반당한 것일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1995년 이츠하크 라빈 수상의 암살 이후 그 ‘나라’에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이 최종적으로 입증된 것일지 모른다.

    ‘유대인 국가’라는 울타리를 스스로 벗어버리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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