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도 좀 먹고 살자는데, 그게 큰 죄입니까"
    By tathata
        2006년 08월 04일 10: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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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을 저지른 게 누군데 오히려 우리가 죽어야합니까? 우리가 지은 죄라고는 20여년이 넘도록 피땀 흘려 일한 죄 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좀 먹고 살자는 게 그렇게 큰 죄가 됩니까?”

    “노가다는 사람도 아닌가요? 공권력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채 평화적인 시위를 하던 우리를 그렇게 개 패듯이 패도되는 겁니까?”

    억울해서, 너무도 참담해서

    지난 8월 1일 3시, 새벽에 조합원 하중근씨가 운명하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서울로 상경 투쟁을 하러 온 포항지역건설노동자들을 포함한 건설노동자들이 검찰청 앞 집회에서 쏟아 낸 피울음이었다.

    집회 바로 전 노동·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여 공권력의 살인 폭력과 탄압에 대하여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검찰에 대한 규탄과 건설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결의하였다. 하지만 건설 노동자들의 피 맺힌 절규에 화답이라 하기에는 부족하고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포항 건설 조합원들은 그 허전함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촛불로서 매우며 상경투쟁 1일차를 마감하였다.

       
     
    ▲ 포항건설노조 등 조합원 1백여명은 지난 1일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하중근 조합원을 추모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상경투쟁 2일차, 상경 투쟁단은 포스코 센터에서 기자회견 후 항의면담을 진행하였다. 봉쇄된 문을 뜯고 건물 내부를 꽉 채우고 있던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 되고 결국 사측은 면담을 수용하게 되었다.

    이에 상경투쟁단이 고인의 영정을 앞세우고 면담을 위하여 건물로 들어서려는 순간, 사측이 다시 막아섰다. 열사의 영정은 포스코센터 내부로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야 이**야 ! 니가 인간이면 이럴 수 있냐? 우리가 포스코를 위하여 청춘을 다 바쳤는데..” 살아 생전 자본에 의해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뜯길 수밖에 없었던 그는 죽어서도 포스코 자본에게 무시당하였다.

    또한 청와대 면담 투쟁과정에서도 경찰은 영정만은 안 된다고 가로 막았다. ‘분수도 모르고 초일류 기업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여 난동을 부리는 폭력집단’으로 매도하였던 포스코 자본, 그 오만함을 꺾어 버리기 위한 투쟁과 연대만이 남았을 뿐이고 그것은 우리의 몫 이었다.

    서울역의 계단의 쪽에는 청색티를 맞춰 입은 젊은 여성노동자, 오른쪽에는 붉은 조끼를 입은 붉게 탄 늙은 남성 노동자가 나란히 결의 대회를 진행하였다. 너무도 다른 그러나 원청사용자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로서 그들은 하나였다.

    집회에서 그리고 행진과정에서 그리고 경찰청 앞 경찰과의 몸싸움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KTX 여승무원 조합원들은 열사의 죽음 앞에서 경찰과의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전국에는 많은 투쟁사업장이 있으며 비정규 투쟁 역시 대부분 간접고용투쟁인데 과연 우리는 열사의 죽음 앞에서 얼마나 연대하고 있는지. 경찰청 앞에서 촛불은 우리안의 연대를 기원하며 타올랐다.

    동지의 죽음 앞에 연대는 휴가 중 ?

    노조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포스코 자본과 공권력 그리고 언론의 초토화 공세에 맞서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던 포항건설조합원들은 스스로 자본과 공권력 그리고 언론에 맞서 투쟁과 연대를 호소하기 위하여 서울까지 상경을 하였다.

    지난 울산플랜트 투쟁을 거치면서 많은 평가가 있었으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플랜트 투쟁이 울산에서 고립되었다는 것이고 전국적인 연대를 조직하지 못한 점에 반성하며 반복하지 않을 것을 결의하였다.

    하지만 하나도 나아지지 못한 우리의 한계는 온전히 포항 건설 조합원들의 고통이 되었다. 운동의 위기와 전망을 논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열사의 죽음 앞에서도 연대 대오는 많지 않았고 연대를 조직하여야 할 간부 활동가조차 여전히 휴가 중이다.

    한 여름의 뜨거운 서울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연대를 호소하는 포항지역건설노동자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로 그친다면 조합원들의 피맺힌 울분은 바로 우리 안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또한 동지의 죽음을 앞에 두고도 연대조차도 조직하지 못하는 한다면 과연 자본과 공권력은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더욱 두려운 것은 동지의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초연하게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우리의 관성이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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