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러 패권의 특별한 의미
    [지구화시대 자본주의 - ‘후기 국독자론’] 제4장 현대제국주의 ③
        2019년 09월 18일 02: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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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글 “탈냉전 시대와 ‘단일패권적’ 제국주의”

    3. 달러패권의 특별한 중요성

    현대제국주의의 두 형태 즉 ‘동맹적 제국주의’와 ‘단일패권적 제국주의’에 있어 세계화폐가 갖는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전자에 있어 세계화폐는 본래 국제무역의 원활한 진척을 위한 단순한 결재수단으로서의 의미가 강했다고 한다면, 후자에 이르러 세계화폐는 그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 전 지구적 자원에 대한 ‘무상 사용권’의 의미를 갖게 되었으며 이로써 진정한 슈퍼(超) 패권국가의 출현을 위한 유력한 수단을 제공하였다.

    이는 전후에 일국 내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성립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2차 대전 종식 이후 자본주의 선진 각국은 국내 화폐제도에 있어 금본위제를 정식폐기하고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한 신용화폐제도를 수립하였다. 이로써 국가는 경제과정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을 얻게 되었다. 만약 국가가 화폐권력과 같은 경제수단과 실질적인 물적 기반을 갖지 못한다면, 정부가 수립하는 경제정책이란 사실상 공허한 것에 불과하게 된다.

    국독자가 수행하는 여러 가지 경제기능은 결국 궁극에는 이러한 국가의 무한한 신용화폐의 발권력에 기초를 둔다. 때문에 금본위제에서 일탈한 신용화폐체제로의 이행은 종전 후 국가독점자본주의 탄생의 진정한 기초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원리는 ‘단일패권적 제국주의’의 성립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국제무대에 있어 이 같은 완전히 ‘신용화폐화한 세계화폐’ (즉 금 태환 의무에서 완전히 벗어난 세계화폐)에 대한 발권력을 어느 특정 국가가 독점하게 되면, 그 나라는 전 지구적 자원을 빌려 먼저 자국 내에서 수행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로서의 기능을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지속적인 복지정책의 수행에 있어 가장 고질적인 문제인 복지기금의 부족 사태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이로부터 국내의 사회정치 기반의 안정을 이룩할 수 있다. 또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 구축에 필수적인 현대 과학기술발전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에 대한 투자를 장기간에 걸쳐 수행할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슈퍼 패권국가 성립에 있어 필수적인 사회 및 정치경제적 조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의 초 패권국가 출현의 계기와 그 기원을 따지자면 1970년대 초반 당시 세계화폐였던 달러가 금 태환의 구속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미국은 진정한 세계무대에서의 ‘화폐권력’을 획득하게 되었으며, 이후 초 패권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구축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 화폐권력과 군사패권

    지구화시대의 현대제국주의와 관련한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그것을 구성하는 두 가지 기본요소인 군사력과 화폐권력 간의 상호 관계에 관한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아직도 초 패권국가인 미국이 자신의 화폐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구적 군사력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지구적 군사패권을 유지키 위해 화폐권력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현대제국주의의 역사적 존재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군사패권 자체가 제국주의의 목적이 될 수 없으며 결국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목적에 복무하기 마련이다. 다만 그 형식에 있어서 영토에 대한 직접적 지배 방식을 채택하는지 아니면 다른 방식을 통해서 인지가 문제 될 뿐이다.

    그런데 현대제국주의에 있어 영토 지배와 같은 구 식민주의적 방식은 이미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때문에 군사수단의 중요성은 현대제국주의에 있어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날로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핵무기 시대에 접어들고서 부터는 더욱 그러하다. 그 대신 규범과 질서에 의한 통치가 주요한 방식이 되는데, 이러한 규범과 질서에 있어 시장경제를 숭상하는 자본주의는 모든 교환관계를 매개하는 ‘화폐’를 그 제도적 근간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화폐권력의 중요성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부각되게 마련이다.

    현대제국주의에 있어 군사와 경제와의 관계는 과거 냉전체제 하에서는 그 특수한 상황 때문에 어느 정도 왜곡되고 감추어져 있었다. 공산주의의 확장을 억지한다는 정치 이념적 성격이 표면상 앞세워졌기 때문에, 특히 냉전체제가 성립되고 정착되던 20세기 50년대까지는 군사 목적이 경제에 우선하는 것인 양 여겨졌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1960년대 들면서부터 상당정도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미국 존슨 정부에 의한 월남전 확전의 경우 그 동기를 분석하면, 이면에는 냉전적 이데올로기적 요소 외에, 군산복합체의 이윤추구 요구를 만족시킴과 함께 국내 경기 부양 목표도 동시에 추구하려는 경제적 동기를 상당정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제국주의에 있어 이 같은 군사와 경제와의 관계는, 냉전체제가 종식된 이후에는 더욱 순수한 형태로 그 본질을 노출하였다. 이제 과거처럼 더 이상 이데올로기적인 신비한 외관을 걸칠 수 없게 된 지금, 초 패권국가의 군사력과 자국의 경제목적과의 관련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초 패권국가에 있어 최고의 경제목표인 화폐권력 즉 세계화폐에 대한 독점권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 군사력이 복무하는 것이다.

    이 같은 화폐권력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지구적 차원의 군사패권에 의한 뒷받침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전 지구적 차원의 군사패권을 수립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는 또한 세계 각국과 초 패권국가와의 갖가지 충돌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예컨대 핵무기와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금지조치는 미국의 군사패권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것들인데, 이와 관련하여 미국은 이란‧이라크‧북한 등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행동이 표면에 돌출하는 빈도가 자연 높아지면서, 마치 군사패권 자체가 어떤 독자적인 목적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엄연히 화폐권력과 군사패권 간의 기본관계, 즉 화폐권력을 지키기 위한 지구적 차원의 군사패권 수립 및 그 유지과정으로부터 생겨나는 ‘파생적’인 것으로써, 양자의 기본관계를 뒤집는 것은 아니다.

    현대제국주의가 요구하는 전 지구적인 군사력의 배치와 운영 및 끝임 없는 군사기술상의 우위의 확보는, 화폐권력을 장악하지 않는 한 비록 단기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때문에 만약 화폐권력이 흔들린다면 오늘날 미국과 같은 초 패권국가의 지구적 차원의 군사력은 그 막대한 유지비용 때문에 얼마가지 않아 붕괴할 수밖에 없다.(1)

    이와 비교할 때 화폐권력의 군사패권에 대한 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덜 한 편이다. 화폐권력의 수립은 원래 경제논리와의 연관 속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한 국가의 경제력과 보다 본질적인 관련성을 갖는다. 예컨대 종전 후 처음 달러가 영국 파운드를 대체하며 세계화폐로 등장할 무렵, 주요하게는 미국의 세계 공업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황금보유량 등 경제적 요인이 고려되었다. 당시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 최강이었음에도 브레튼우즈협정 체결에 있어선 별반 결정적 요인이 되지는 못하였다. 이후 달러가 세계화폐로서의 지위를 더욱 굳혀 가는데 있어서도, 1960년대 중후반까지 미국의 경제력이 다른 경쟁국들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했던 요인이 주요하게 작용하였다. 이 같은 화폐권력의 기본적인 경제적 성격이야말로, 이후 1970년대 초 세계화폐가 초 패권국가의 성립을 위한 수단으로 성격을 바꾸는 순간에 다른 국가들이 그것을 알면서도 저지할 수 없었던 최대의 원인이다.(2) 물론 이 때 미국의 군사패권도 한 몫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다.(3) 그러나 이는 당시의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어디까지나 보조적이었다.

    세계화폐로서의 달러는 이렇듯 197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자신의 성격을 변모하기 시작했지만, 1990년대 들어 미국의 화폐권력이 최종 완성되기까지는 대체로 다음 두 번의 계기와 과정이 더 필요하였다. 첫째, 1973년 중동위기 이후 석유가격이 달러로 표시되었으며, 이어서 다른 관건적인 원자재와 대중상품들도 그 뒤를 따랐다. 둘째, 1991년 냉전종식 후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 지구적 금융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로부터 국경을 넘는 자금흐름의 추동이 일상화 된 것이 그것이다.(4) 이렇듯 40여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점진적으로 확립된 달러패권은 오늘날 매우 복잡한 지구적 금융질서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이 같은 기반 위에 구축된 달러패권은 미국의 군사패권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자체로서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어떤 경쟁적 요소에 의해 쉽게 전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상의 초 패권국가에 있어 화폐권력과 군사력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지구화시대의 현대 제국주의를 어떻게 종결시킬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하여 시사점이 많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구화시대의 제국주의는 달러패권의 종결과 함께 종식되며 양자는 운명을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2) 금융전쟁의 무기

    세계화폐가 초 패권국가의 화폐권력으로 성격이 전환하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능이 생겨났다. 만약 패권적 지위를 노리는 다른 경쟁 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저지할 필요가 있거나, 또는 다른 나라에 대한 금융적 수탈을 감행하고자 할 경우, 패권국가는 ‘경제금융전쟁’의 무기로써 화폐권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역마찰’ 과정에서 우리는 미국이 어떻게 자신의 화폐권력을 이용해서 경쟁 상대를 굴복시키는지를 관찰할 수 있다.

    미국이 무역 분쟁과 화폐권력을 처음 결합시키기 시작한 것은 국제통화체제가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이행하던 무렵인 1970년대 초반이다. 이 시기 미국은 종전 후 처음으로 ‘쌍둥이 적자’ 현상인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동시에 출현하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게 있어 진짜 심각한 것은 거액의 재정적자 문제였으며, 무역적자는 1969년 1월 처음으로 월별 무역적자를 기록한 이래 1970년 4월 두 번째 월별 무역적자가 발생하긴 하였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 같은 무역적자를 빌미로 당시 주요 국제수지 흑자국가이자 거액의 달러보유국인 서독에 대해 강한 무역압박을 가하는 한편, 국내적으로는 계속해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대량의 국채 발행을 감행하였으며 낮은 이자율 정책을 수행하였다. 이는 사실상 미국정부가 자국 내 인플레이션을 고의로 조장하는 조치였는데, 이를 통해 무역적자보다도 ‘훨씬 많은’ 달러가 해외로 방출되어 미국의 국제수지는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미국은 이를 자국 달러가 금 태환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국제통화제도를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전화시키는 계기로 활용하였다.

    무역 분쟁과 달러권력을 결합시키는 이 같은 방식은 생각보다는 훨씬 넓은 활용도를 지닌다. 이 방법은 미국과 같이 세계기축통화국의 지위를 확보한 국가로서는 언제든 상대를 타격하기 위한 목적에서 매우 주동적으로 교묘하게 활용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이유에서든 일단 자국의 무역적자가 일정 수준 누적되게 되면, 미국은 이 문제를 여론화하여 상대방(흑자국가)에게 이를 시정할 것을 요구한다. 만약 이정도로 사태가 마무리될 수 있다면 이는 무역교역국가 간의 통상적인 무역 분규와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미국은 이 같은 일반적인 무역압력 수단 외에도 인위적으로 상대방을 ‘환율조종국가’로 내몰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다른 정치적 수단을 포함한 여러 가지 합법적인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다. 예컨대 1970년대 초반의 닉슨 정부처럼 미국정부는 고의적으로 평상시보다 더 많은 달러를 찍어냄으로써 우선 국내적으로 과잉유동성을 만든 다음, 다시 자신의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이용해서 국내의 과잉달러를 해외로 방출시키기만 하면 된다. 국제금융투기꾼들은 미국정부와 연방준비이사회가 달러 약세 정책을 취할 것이라는 것을 일단 눈치 채기만 하면 언제든지 미국의 달러를 가지고 해외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5)

    이 경우 그들의 해외투자의 일차 목적지는 자연히 대미 흑자로 인해 자국 화폐가 강세를 보이는 국가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를 통해 환차익을 노릴 수 있으며, 이들 국가는 또한 미국정부가 내심 손을 보기 위해 벼르고 있는 경쟁상대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그것은 독일과 일본이었으며, 2000년대 들어서선 주요하게는 중국이 지목된다.

    그런데 이들 핫머니는 여러 경로를 통해 상대 국가에 유입된 후 그곳 외환시장에서 먼저 달러를 상대국 화폐로 바꾼 다음 그것을 다시 현지의 주식‧채권‧예금 등의 금융상품이나 부동산에 투자하여 자체 자본증식을 꾀한다. 그런데 이들 투기자본이 가지고 가서 교환한 달러는 결국 상당부분 상대국가의 중앙은행이 보유하게 된다. 왜냐하면 1970년대 초반에 미국정부의 고의적인 달러의 해외방출에 직면해야 했던 서독 정부와 마찬가지로, 상대국가의 중앙은행이 취할 수 있는 정책은 결국 이하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길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국화폐의 급격한 절상을 방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해서 달러를 중앙은행이 매수하는 방법이다. 이는 미국정부를 대신해서 달러가치를 방어해 주는 셈이 되지만, 자국의 수출과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다른 하나는 그냥 자국화폐의 절상(달러환율의 절하)을 용인하여 자국의 수출과 고용을 어느 정도 희생하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미국정부는 앉아서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경쟁 국가는 달러매수를 통한 자국화폐의 급격한 절상 방지 쪽을 선택한다. 그것은 수출과 고용안정이 자국 경제성장과 사회 안정에 직접적으로 관련되기 때문에 그것들은 더욱 정책 우선순위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미국 정부는 ‘자국 부채의 화폐화’라는 중요한 목표를 실현할 수 있게 되는데, 상대방(흑자국가) 중앙은행은 달러를 매입한 후 그 가치보존과 증식을 위해 다시 이들 달러 대부분을 미국국채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정부는 늘어나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경쟁국의 중앙은행이 이처럼 미국국채를 대신 매입해주기 때문에, 미국 금융시장은 유동성 경색을 우려할 필요도 없고 이자율의 급격한 상승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또 과도한 통화증발로 인플레이션이 국내에서 유발될까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이 얻는 이점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으며, 경쟁상대를 ‘환율조종국가’로 내몰 수 있는 새로운 카드를 보유한다. 위의 과정에서 보았듯이, 경쟁국가의 중앙은행은 확실히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환율을 안정시킴으로써 자국의 수출경쟁력을 유지하는 선택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후 미국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적절한 시기에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서 사용될 수가 있다. 예컨대 미국경제가 지나친 군비지출로 인해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함으로써 누군가 그에 대한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경우, 또 전략적 경쟁국을 정치적으로 집중 공격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이 그러하다. 특히 선거 때가 되면 이러한 방식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다. 상대방 흑자국가는 미국정부를 대신해서 그 국가부채를 ‘화폐화’ 시켜주면서도, 결국 ‘환율조종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이중의 고통을 맛보아야만 한다. 현재 1조 달러 이상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면서도 수시로 환율조종국가로 비난 받는 중국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여기서 처음 논의가 시작된 부분, 즉 ‘무역적자’의 발생으로 되돌아 가보자. 만약 무역적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위의 시나리오들은 모두 무역적자가 발생하는 시기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가 않다. 화폐권력을 지닌 초 패권국가에게 있어선 이 같은 무역적자는 필요할 경우 경쟁국을 공격하거나 약화시키기 위해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그것의 시발점은 국가독점자본주의 하에서는 우선 재정적자일 수밖에 없다. 막대한 군비지출과 거대한 복지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초 패권국가에 있어 재정적자는 일상적인 현상인 때문이다.

    재정적자 때문에 발행하게 되는 국채를 중앙은행이 매입할 경우, 사실상 그 만큼의 화폐는 상응한 상공업 활동이나 추가적인 상품공급 없이 증가하는 셈이므로 만약 그것이 국내에 그대로 머무를 경우는 물가상승을 통해 화폐의 가치하락(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그러나 달러와 같은 세계통화에 있어선 상황이 달라진다. 이 ‘초과 발행된’ 달러들은 자신의 세계통화로서의 지위 때문에 언제든지 해외상품에 대한 유효수효로 전환되는 것이 가능하며, 실지로 이 때문에 자연스레 수입이 늘어나서 무역적자가 발생하게 된다. 요컨대 미국정부는 군사비지출이든 복지지출이든 재정지출만 늘리면 곧 무역적자가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외에도 클린턴 정부 때처럼 비록 재정적자가 잠시 발생하지 않거나 그리 많지 않은 경우라 할지라도, 만약 미연준위가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이자율을 낮게 유지하기만 하더라도 미국의 무역적자는 발생한다. 왜냐하면 이로부터 시중은행의 대출이 확대되어 유동성이 증가하게 되기 때문인데, 증가된 유동성이 당장 국내의 상품공급으로부터 만족을 얻지 못한다면 결국 해외의 상품공급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 결국 재정적자에 의해서든 미연준위의 이자율 정책에 의해서든, ‘무역수지’를 빌미로 한 압력수단은 화폐권력을 장악한 초 패권국가가 자신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경쟁국가와의 투쟁에 있어 매우 융통성 있고 주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존 퍼킨스의 2004년 <한 경제 저격수의 고백>

    2004년 미국에선 《한 경제킬러의 고백》(원제: confessions of an economic hit man ) 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어 한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 존‧퍼킨스는 그 자신이 한 때 미국 국가안전국(NSA)의 비밀고용원으로 소위 ‘경제킬러’가 되어 직접 활동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이 다른 국가를 상대로 경제금융 전쟁을 획책하고 그들 나라를 파괴하는 내막에 대해 적나라하게 폭로하였다. 이 책에 따르면, 핵무기의 출현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는 위험비용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전통적인 ‘군사전쟁’은 점점 더 은밀한 ‘경제금융 전쟁’으로 대체되고, 사용되는 무기도 점점 더 군함과 대포에서 경제금융수단으로 바뀌게 되었다.(6) 예컨대 경제킬러가 즐겨 사용하는 교묘한 ‘경제모형이론’을 이용한 사기, 로비홍보, 세계은행과 IMF가 제공하는 경제원조와 대출융자, 미국정부와 권위 있는 국제기구가 합의하고 적극 추천하는 ‘워싱턴 컨센서스’, 정부의 금융 감독을 취소케 만드는 금융자유화 정책의 주장, 개발도상국을 유인하여 국제 핫머니가 들어갈 수 있도록 빗장을 활짝 열어 제치게 만드는 금융개방화 정책, 거품경제를 육성하여 금융위기를 의도적으로 준비하고 그 틈을 타서 개발도상국의 경제와 금융의 근간을 공격하고 통제하기 등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은폐된 경제금융 전쟁은 오늘날 현대제국주의가 패권을 도모하는 새로운 전쟁형식이며, 또한 국제독점자본이 초과이윤과 재화를 약탈하는 새로운 착취방식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미국의 금융과두세력이 경제금융 전쟁을 준비하기 위하여 1970년대 이래 소로스와 같은 ‘금융 크록(악어)’을 의식적으로 육성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금융 크록(악어)은 외형상 각종 헤지펀드의 모습을 띠고 나타나는데, 그들은 기회를 노려 지구상에서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약세인 국가를 골라 심심치 않게 금융대란을 일으킨다. 1997년 동남아 금융위기와 그에 이은 러시아 금융위기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같은 형세에 직면하여 약체 경제권들은 자신의 금융안전과 경제안전을 위해 부득불 달러로 표시되는 거액의 외환보유고를 항시적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되며, 이를 통해 미국은 자신의 달러패권과 초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화할 수 있게 된다.(7)

    이상에서 살펴 본대로, 화폐권력은 지구화시대의 ‘단일패권적 제국주의’의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레닌은 금융자본에 의한 통치는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이며, 금융자본은 일종의 일체의 경제관계와 일체의 국제관계 가운데서의 거대한 역량이며 결정적 작용을 하는 역량(8)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오늘날 지구화시대의 현대제국주의의 화폐권력을 통해 우리는 금융자본의 이 같은 진수를 더욱 유감없이 확인하게 된다. 이 같은 세계화폐에 기초한 현대제국주의는 제국주의 발전의 새로운 최고단계라고 부를 수 있다. 끝으로 조금 길긴 하지만, 초 패권국가인 미국에 있어 달러패권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다음 글을 소개하면서 본 절을 마치기로 한다.

    “주권 민족국가가 형성된 이래, 그 어떤 국가도 세계 다른 나라를 희생하는 대가로 장기간 이득을 취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1971년 이래로 지구상 유일하게 슈퍼대국인 미국은 날로 형성되는 자신의 달러패권에 기대어, 상호의존도가 깊어지는 국제사회에서 세계경제로 하여금 미국경제에 복종케 만들었으며, 세계 각국이 자신에게 변형된 형태의 ‘조공’을 바치는 제국(帝國)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전통적인 주권 민족국가로 구성된 세계에서는, 군사적으로 야심 있는 국가들은 하나 같이 채무국이 되어 높은 세율과 고비용의 경제체제로 변모함으로써, 최후에는 스스로 유지하기가 힘들어 결국 전쟁을 포기하였다. 나폴레옹이 이끌었던 프랑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었던 영국, 두 차례의 세계대전 무렵의 독일 등이 그러하며 이들의 경우 모두가 예외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주권 민족국가로 구성된 세계에서, 지구상 유일한 슈퍼대국인 미국만이 이미 가볍게 4차례의 국부적 전쟁을 치룬 후 다시 한 차례 이란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전통적인 주권 민족국가로 구성된 세계에서는 각국이 앞 다투어 경쟁적으로 수출을 시도하고, 이로부터 진정한 재화인 황금 혹은 기타 경화(硬貨)를 획득하여 자국 생산을 확대하려고 하며, 그 어떤 나라도 장기간 무역적자를 유지하길 원하지 않고 또 그렇게 할 능력도 없다. 그러나 오늘날 주권 민족국가로 구성된 세계에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슈퍼대국인 미국만이 수십 년이 하루 같이 수입이 수출보다 큰 상황을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무역은 미국이 지폐달러를 발행하고 다른 나라들은 이 달러로 구매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놀이’로 변모되었다. 이리하여 지구상의 최대 무역적자국은 경제의 고도한 번영과 지구적 패권을 유지하는 반면, 지구상의 수많은 무역흑자국은 ‘수출 조공국가’로 전락하여 국내의 빈곤과 자본부족 가운데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전통적인 주권 민족국가로 구성된 세계에서는, 채무에 시달리는 국가들은 세계 권력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자국정책과 중앙은행이 금융정책을 제정할 수 있는 자주권마저도 상실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주권 민족국가로 구성된 세계에서 지구상 최대의 채무국인 미국은 지구상의 유일한 슈퍼대국이며, 채권국들은 오히려 날로 자국의 국내 정책과 중앙은행의 금융정책을 제정할 수 있는 자주권을 상실해가고 있다. 달러패권은 이미 완전하고 철저하게 세계를 거꾸로 뒤집어 버렸다.”(9) (계속)

    [본문 주석]

    1. 중국 중앙번역국(中央翻译局)의 유원기는 미국의 달러패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과거 30년간 미국이 점차 지구적 생산중심의 지위를 상실한 후에도 경제가 저물가와 고성장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었던 원인이며, 미국이 연속적으로 대외전쟁을 일으키면서도 경제가 붕괴하지 않은 원인이다. 또 월남전의 위기에서 벗어나 신속하게 독일과 일본의 초월 위협을 제거하고, 소련을 무너뜨리고 단극의 패권을 세울 수 있었던 원인이다.”[中]李慎明 主编,2009,《달러패권과 경제위기(美元霸权与经济危机)》,p64. 社会科学文献出版社.

    2. 이는 달러가 이미 세계경제에 있어 지불수단 및 비축수단으로서의 세계화폐의 기능을 광범위하게 수행하고 있던 객관상황과 관련된다. 예컨대, “그러나 미국은 그 해외채무의 상환을 거절함으로써 세계화폐체계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 점을 의식해서 유럽은 주저하며 물러섰다.” [미] 마이클 헤더슨, 2008,《금융제국―미국금융패권의 기원과 기초(金融帝国―美国金融霸权的来源和基础)》,p279, 中央编译出版社. 이 같은 상황은 현대에 와서도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미국 전 재무장관 사모스가 말한 대로 지구적인 ‘금융 공포의 균형’의 구조가 이미 형성되었다. 즉 만약 유럽·아시아 그리고 기타 지역의 중앙은행이 갑자기 자신의 자금을 미국금융시장에서 빼내게 되면, 달러가치가 폭락하여 그들 자신도 큰 손실을 입게 된다.” 《美元霸权与经济危机》,pp525-526.

    3. 이와 관련된 실례로, <뉴욕타임즈>1971년 5월 12일자에는 “미국의 협박이 보도됨”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 내용이 실렸다. “3년 전 미국은 은밀히 만약 서독 중앙은행이 잉여 달러에 대해 미국의 황금으로 태환하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면, 미국은 장차 서독에 주둔하는 군대를 철수시킬 것이라고 위협했다. 서독 <주간 쉬피겔> 지에 발표된 한 편의 인터뷰기사는 일련의 단서와 함께 세부상황을 묘사한다. 1971년 4월 25일 세상을 떠난 도이치연방은행장 칼 브라신 박사의 인터뷰 기사는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왜냐하면 유럽의 과잉달러 위기는 주요하게는 서독에서 발생했는데, 미국 상원의 새로운 동향은 바로 미국 군대의 서독 철수를 추진하는 것이었다.” 《金融帝国―美国金融霸权的来源和基础》,p310. 위 기사 내용은 1970년대 초 국제통화체제의 격변이 발생하던 무렵 금융 권력과 군사권력 간의 연계의 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4. Henry C K Liu,“The US-China Trade Imbalance,” April l, 2006.《美元霸权与经济危机》,pp517-518에서 재인용.

    5. 이는 1970년대 초반까지의 금 태환과 고정환율제 하의 기존 국제통화체제하에서뿐만 아니라, 이후 금불태환과 변동환율제 하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처음 미국 국내에서 연준위가 달러의 유동성공급을 확대하게 되면, 이것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기까지는 일정한 시차가 존재한다. 즉 확대 발행된 달러가 최종적인 소비자들의 손에 쥐어져서 시중의 달러가 넘쳐나는 것이 확인된 연후라야 달러가치는 비로소 과잉 공급된 만큼의 가치절하를 하게 되며, 그 과정은 일정한 시간을 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품공급량에 비해 갑자기 많아진 화폐가 실제 ‘유효수요’로 전화됨에 따른 상품가격의 상승(인플레이션)이 나타남으로써 실현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화폐가 발행자로부터 몇 차례의 중간 단계를 거쳐 최후의 소비자에게로 순차적으로 옮겨가는 동안, 확대 발행된 달러를 최초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가치대로 달러가치를 이용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이 때문에 국제금융투기꾼들은 기축통화인 달러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게 되는 이 같은 시차를 잘 활용하면 상당한 금융적 이득을 얻게 된다. 그 방법은 매우 간단한데, 다름 아니라 고평가된 달러를 다른 나라의 화폐 특히 국제수지 흑자국의 ‘강세화폐’와 재빨리 교환하는 것이다.

    6. [미] 존 파킨스,2011,《한 경제킬러의 고백(一个经济杀手的自白)》 ,p48. 重庆出版社.

    7. 《美元霸权与经济危机》,p432.

    8. 《레닌선집(列宁选集)》제2권,1972,pp780,802,人民出版社.

    9.《 美元霸权与经济危机》,pp522-523.

    필자소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 ,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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