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집단농장'과 '연두농장'은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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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8월 03일 09: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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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사는 정말 어렵고 힘이 듭니다. 평생 농사를 짓고 사는 농민들이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려운 것은 사람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모든 섭리를 알고 견실히 따라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힘이 든 것은 농번기에는 해도 해도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으니 보이는 것이 적어서 대충 지을 수 있었으나, 올해는 지난해의 경험과 학습의 결과로 보이는 것이 많으니 작은 것에도 그냥 넘길 수가 없게 됐습니다.

    친환경적인 제초방식, 농사 절반의 일을 줄여준다.

    장마 기간에 틈틈이 감자 수확과 판매를 하고 나니 연일 계속되는 호우로 농장은 온통 습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내년에 씨알로 쓸 감자들도 썩어가서 이것마저 팔아버렸습니다. 토마토는 과습에 시들음병으로 죽어가고 , 쌈채도 포장되어 나가면 쉽게 짓물러 문의가 들어옵니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살갗이 익는 무더위가 계속됩니다. 연두농장은 제초 작업이 한창입니다. 제초 작업을 하면서 비닐 멀칭에 대한 미련이 또 다시 고개를 듭니다.

       
     

    한여름 뜨거운 볕 아래 풀을 베지 않았으려고 짚을 고추밭에 일부 깔아놓았지만 그것도 다 하기 전에 감자수확에 시간을 쏟았으니 … 불볕더위에 낫으로 풀을 베는 일은 고역 중의 고역입니다.

    불볕더위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제 아무리 중무장을 하더라도 옷을 뚫고 달려드는 모기에 목부터 발까지 모기 침에 부풀어 오르고 긁느라 힘겹습니다. 오늘 저녁 풀 작업을 했는데 낮의 더위에 살갗이 익은 상태에다가 저녁 모기에 쏘여 긁어대니 피가 묻어나옵니다.

    비닐 멀칭을 하지 않겠다는 제 고집은 폐비닐 처리 문제에 대한 경각심에서 비롯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식물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였습니다. 사람 편하자고 비닐 씌우면 땅이 숨을 고르게 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맛도 그만큼 떨어집니다. 이것이 연두농장에서 나오는 채소들이 맛이 좋다는 평판을 얻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제초작업이 얼마나 심리적으로 나를 억압했든지, 어느 날엔가는 관리기에 비닐이 말려들어가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풀 관리 방법을 모색하고 실험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묘수가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땅주인이 내 직장 동료에게 풀에 씨가 맺히도록 풀 작업을 안 한다는 불만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아니 장마기간에 풀 작업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비가 오는데 밭에 들어가?"
    "사람들은 풀을 보기만 하면 뽑잖아.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풀 하나 뽑지 않는다는 얘기지."
    "풀을 왜 뽑아. 뽑을 때 뽑아야지. 우리는 풀을 일일이 뽑지 않아. 풀뿌리가 유용하기도 하거든. 작물이 풀을 이기면 굳이 풀을 뽑을 필요가 없는데……."

    관행농을 했던 그들에게는 풀을 무조건 뽑아야 하는 것으로 보이겠지요. 우리 농장 주변의 밭에는 풀이 별로 없습니다. 아주 깨끗한 밭이지요. 이유는 제초제를 뿌리기 때문입니다. 제초제를 뿌리면 풀이 황변이 되어 고사하지요. 주변의 농가에서는 대부분 고령자가 농사를 짓기 때문에 풀 작업을 제초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겠지요. 10명이나 되는 우리 농장에서도 불볕더위 속에서는 견딜 재간이 없습니다.

    한국작물보호협회에 따르면 ‘농약사용은 줄어든 반면 제초제 사용은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다’는 조사결과를 보더라도 농번기 풀 관리에 많은 일손과 시간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농번기에 풀 관리에 대한 방법만 확실히 나오면 일은 반으로 줄어듭니다. 제초에 대한 연구가 관건입니다. 베어 놓은 풀도 15-20 센티 이상의 두께가 되어야 풀을 억제할 수 있어요. 이것도 풀이 마르면 또 풀들이 올라옵니다. 농번기 이 맘 때가 되면 지난해에 이어 풀 관리 숙제가 또 긴요해집니다.

    "휘발유 사오게 돈 좀 주세요."
    "무슨 휘발유?"
    "예초기랑 관리기에 넣을 휘발유"
    기계를 들여온 순간 ‘석유’에 의존하게 됩니다.
    예초기나 관리기가 있어 편리하긴 합니다. 속도도 훨씬 빠르지요.

    "이게 일인가요? 놀이지"

    최소한의 기계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일만 평 이상이 되면 기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트랙터, 경운기…. 등등. 우리처럼 사람이 많다고 일만 평을 일일이 낫으로 제초할 수는 없지요. 기계에 의존한 농사를 하지 않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석유’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기계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계를 사용함으로서 땅과 인간의 사이는 기계가 존재하게 됩니다. 기계를 운전하는 일이 인간의 일이 되는 것이지요. 인간은 기계를 조작하게 되고 농사는 기계가 대신하겠지요. 그것은 기계노동일 뿐입니다.

    낫질을 하면 분별할 수 있는데 예초기를 사용하면 까마중, 비듬나물, 며느리밑씻개 같은 잡초(?)를 볼 틈이 없지요. 그냥 모든 것이 싹쓸이 되지요. 인간이 식물, 땅의 기운과의 교류는 사라집니다. 도구인 낫은 인간과 식물의 간극을 벌여놓지 않지만 기계는 간극을 벌여 놓게 됩니다.

       
     

    얼마 전에 농사가 좋아 오신 새로 온 팀원은 중풍으로 전신마비가 왔던 분이지요. 현재 이 분은 장애 3급이지만 몸놀림에서는 장애를 느낄 수 없습니다. 그 분의 기는 정상적인 사람보다 더욱 충만합니다.

    "몸을 계속 움직였어요. 힘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힘들게 일을 해야 몸이 편안해집니다."
    "지금 농사일 힘들지 않아요?"
    "아니요. 이건 일도 아니예요. 그 전에 있던 곳에서는 새벽 4시부터 일을 했어요. 여기 와서 게을러지고 있어요. 이 게으름도 익숙해지겠지요." 지금 그 분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을 하십니다.

    "이게 일인가요? 놀이지요."
    이 분은 일이 아니라 ‘놀이’랍니다.

    농의 가치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꾸준히 공부를 하는 새 팀원을 바라보면서 기원전 4세기에 장자에 얽힌 이야기가 되살아옵니다.

    주공(장자)이 한강 북쪽 지역을 여행하고 있을 때 그는 채소밭을 일구고 있는 한 노인을 보게 되었다. 그 노인은 밭의 물골을 파고 있었다. 그는 혼자서 아래쪽 우물로 내려가 항아리에 물을 담아 와서는 그것을 위쪽 물골에 쏟아 붓는 고된 작업을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노인의 노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지만 노력에 비해 결과는 매우 보잘 것 없어 보였다.

    주공은 말했다. "그처럼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하루에 많은 물을 물골에 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지 않으시렵니까?" 그러자 그 농부는 허리를 펴고 일어서서 그를 쳐다보고 말했다. "도대체 그게 어떤 방법입니까?"

    주공은 대답했다. "영감님께서는 뒤쪽이 무겁고 앞쪽이 가볍게 만들어진 나무 지렛대를 하나 만드세요. 그것으로 물을 빨리 퍼 올리게 되면, 물은 그 다음 저절로 솟아오르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흔히 두레 우물(a draw-well)이라고 부르지요."

    그러자 그 노인의 얼굴에는 분노의 표정이 일었고 곧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인은 소인의 스승으로부터 어떤 일을 할 때 기계장치를 사용하는 사람은 모든 일을 기계처럼 하게 되기 쉽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의 일을 기계에 의존해서 해치우는 사람은 기계와 같은 마음을 키우게 되고 가슴에 기계와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단순성을 잃게 됩니다. 또 단순성을 잃게 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기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지요."

    "사람이 가진 정신의 힘, 즉 기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곧 진실한 느낌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것은 단순히 기에 대해 무지하다는 차원을 넘어 기를 활용하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위 ‘집단 농장’의 문제

       
     

    10명이 농사를 짓는데 일이 끊임없이 산적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일하는 시간 문제가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천 시 학습’ 원칙대로 팀원들은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정상 근무를 하지만 7~9월 여름에는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서 2교대를 합니다. 대략 5시간 정도입니다. 햇볕이 따갑지 않은 시간대에 맞추어서 일을 하는 것이지요.

    실제 일하는 시간은 4시간 정도, 오전에는 생협에 나갈 채소를 뜯어 포장하고 한방 찌꺼기 수거하러 나가면 두 세 명이 밭일을 합니다. 오후반은 2-3명이 충균방제를 하고 다른 밭일을 합니다. 또 특근을 하게 되면 대체휴무를 하기 때문에 평일에 한 두 명이 빠집니다. 10인이 하는 일이 4인이 하루 10시간 정도 일하는 량도 못 미치지요.

    게다가 팀원들 각기 천차만별입니다. 일손이 느린 사람도 있고 빠른 사람도 있으며,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고, 덜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왔다갔다 하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지요.

    "힘든 일을 하게 되면 꼭 다툼이 있어요" 제가 항상 팀원들과 함께 농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다툼의 현장들을 일일이 목격할 수는 없습니다.

    "팀장님이 있을 때와 없을 때는 확실히 달라요." 열이면 열 사람이 나에게 건네는 얘기입니다. “나랑 같이 일할 때는 힘들지만 재밌게 일하잖아?” 간혹 티격태격하는 것을 목격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말들이 오가는 것도 듣습니다. 하지만 상처를 주고받는 말들이 오갈 때는 평가회의 시간을 통해서 엄중히 지적을 합니다. 내가 팀원들에게 누누이 강조하는 것은 ‘이타주의’이며 우리의 목표로도 세워놓았습니다.

    나는 우리 팀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무슨 군대도 아니며 더구나 나는 기계적인 인간을 혐오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언쟁이 오가더라도 서로 합의점을 찾기 위해 진지하게 소통하기를 원합니다.

    유기농에 대한 자부심

    만약 그런 것이 없다면 여기는 일사불란한 ‘군대식 집단농장’에 불과할 것입니다. 오로지 노동에 복무하는 그런 기계에 불과하게 됩니다. 여럿이 같이 일을 한다는 것은 티격태격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공장에서야 자기가 맡은 일만 하면 되지만 농장에서는 작업량이 똑같을 수도 없거니와 한 가지 일만 온종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장이라면 누구는 쌈채 포장만 하고 누구는 제초하는 일만 하겠지요.하지만 이곳은 대량 제품을 찍어내는 공장도 아니고 어쩌면 정교한 수제품을 만드는 일이며, 목수부터 잡부에 해당하는 일까지 하는 미장이 따로 없고 목수가 따로 없는 ‘집을 짓는 일’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농사를 아직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제대로 일을 한다 하여도 하나씩 제 각기 다른 것을 알아차리고 판단하고 행해야 하는 점에서 아직 미숙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람마다 각기 성격에 따라 일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럿이 일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나 무엇보다도 농장에서 일을 하는 것은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과 다릅니다. 

       
     

    그런 차이도 있으니 몸이 부쩍 힘들면 서로가 예민해지기 마련입니다. 연두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현재로서는 농업노동자이지요. 농장은 팀원들의 소유가 아니고 미래의 자산일 뿐입니다. 현재는 급여을 받고 일하는 곳입니다. 또 똑같은 급여를 받아가니 누가 더 나서서 열심히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을 더 열심히 한다고 인센티브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미래의 자산이라고 하나 당장의 자산이 아니니 소홀할 수도 있습니다.

    종교적 신념이 없는 수많은 공동체가 깨어진 이유가 바로 소유관계의 충돌에서 빚어지거나 똑같이 일을 하고 똑같이 분배한다는 것에서 고취할 수 있는 계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위 북한식 ‘집단농장’의 생산력(?)이 오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 연유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집단농장’에서 일하는 농업노동자일 뿐입니다. 내가 이들을 고취하는 것은 ‘현재의 사회 현실’을 보여주고 ‘농의 가치’에 대한 의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소위 ‘의식화 교육’을 행하는 것이지요. ‘집단’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식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일이 즐겁지 않으면 관계가 좋거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일이 즐거워야 합니다. 우리 같은 집단 농장에서는 그러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일이 즐거워서 하는 이들이 있고, 어떤 이들은 관계가 좋아서 하는 이들이 있고 또 어떤 이들은 그냥 나와서 일을 해야 하니까 합니다.

    팀원들의 공통적인 점은 유기농을 하고 있다는 데 대한 대단한 자부심입니다. 수확을 하면 팀원들이 친지한테 앞 다투어 농산물을 보냅니다. 공부하면서 힘들게 유기농을 하고 있다는 그것이 이들의 자긍심을 이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연두농장에 맞는 농사 방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거미줄처럼 아니면 구두끈처럼 서로 생각하며 일이 즐거울 수 있도록 관계가 즐거울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농번기 농사를 통한 나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연두농장에 어울리는 농사 방식이 무엇일까? 단순히 농에 대한 가치를 학습하고 의식화하는 것일까? 한여름 뙤약볕의 제초작업이 즐거울 리가 없습니다. 농사 대부분이 힘겹고 고달픈 일입니다. 전원생활의 텃밭 수준의 농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나오든 나오지 않튼 개의치 않는 유기농업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 그대로 농업으로 먹고 살아야 합니다.

       
     

    유기농업을 하면서 기계화, 대규모화는 하지 않고 인력으로서 가능하다고 하지만 제초 문제는 결코 인력으로만 해결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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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인력이 많다고 일일이 수작업만으로 할 수 없는 일. 그렇다면 농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노동 시간이 작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최소한의 노동과 최대의 휴식이라면 현재의 시간은 충분한 것으로 여길 수 있는 것. 농사를 좋아한다는 관념으로만 ‘놀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처럼.

    발상의 전환, 즉 멀칭 자체가 필요 없는 농사. 밭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는 것, 현재 상품으로 내어놓는 식물에 대한 제고, 식물과 인간의 충돌, 인간과 인간의 충돌을 없애는 것, 올해 연두농장의 화두입니다.

    이글 서두에서처럼 ‘사람의 의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모든 섭리를 알고 견실히 따라야 하는 것’이 힘든 농사가 아닌 바로 즐거운 유기농업의 화두가 여기에 있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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