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들갑과 희망사항
    보고 싶은 것들에 대한 집착
    [일본통신] 한·일의 아무말 대잔치
        2019년 09월 09일 09: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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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관계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악화되는 가운데 최근 일본 언론의 과열보도가 도를 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9월6일자 아사히신문에 의하면 와이드쇼(다수의 게스트가 참가하는 시사・연예 정보 프로그램)의 한국 관련 보도량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최근 일주일 동안(8월26~9월1일) 관련 보도량이 14시간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하루 평균 2시간 꼴로 한국 이슈가 다루어진 셈이다.

    와이드쇼의 한국 관련 보도 시간(아사히신문 9월 6일)

    민영방송사에서 와이드쇼를 담당하는 한 프로듀서는 이러한 과열양상에 대해서 “한국 이슈를 다루면 시청률이 오른다. 지금 모든 방송국이 한국 관련 보도 일색인 것도 그만큼 시청자가 몰리기 때문이다’라고 아사히에 설명했다.

    비정상인 것은 비단 보도량만이 아니다. 내용도 그야말로 아무말 대잔치 수준이다. 이를테면, “까도까도 의혹 덩어리 양파남에 문대통령 부정평가 50% 넘어”, “측근 스캔들 무마위해 지소미아 파기 의혹”, “측근 딸의 입시부정으로 탄핵 당한 박근혜 대통령 사례와 유사” 같은 식이다.

    (후지TV의 Live News it! 9월2일 방송) ’속보 – 문 대통령 측근 해명 기자회견 차기 법무부 장관도 의혹 속출’, ‘의혹의 양파남 문 대통령 측근 조국 씨’

    이 같은 보도행태는 비교적 신뢰도가 높다고 하는 ‘보도 스테이션(TV아사히)’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주 보도에서 서울역 태극기집회 장면과 함께 ‘문재인 탄핵 요구가 등장’했다는 리포트를 내보내는가 하면 “한국인들은 입시부정만큼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에 내몰렸던 것도 결국 최측근 딸의 대학 부정입학이 도화선이 되었다. 이번 문 대통령 측근의 스캔들 문제도 그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단할 수 없다”는 해설을 덧붙였다.

    공영방송인 NHK는 어떨까? 민영방송사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관련 보도내용이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례로 시사논평 간판프로그램 ‘시론공론(時論公論)’ 8월 23일자 방송을 보자.

    ”GSOMIA 파기 충격 동아시아 안전보장은?”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이날 방송에서 이데이시(出石) 해설위원은 “한국은 왜 지금 타이밍에 협정 파기 카드를 빼들었을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정부 내부에서도 격론이 있었습니다. 외교부도 파기에는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의 대일 강경파가 밀어붙여 관철시켰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한국도 일본을 신뢰할 수 없고 군사정보도 공유할 수 없다’는 논리였지요.

    문재인 정권은 민족주의적인 성격이 아주 강합니다. 일본이 수출관리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에 대한 불신감과 함께 자존심에 상처 받았다고 하는 반감이 밑바탕에 깔려있었던 것 같습니다”

    NHK時論公論 8월23일 방송 자료화면

    “이에 더해서 지금 문제인 정권을 둘러싼 국내 정치상황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서는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질 예정입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장관으로 임명하려 한 인물이 최근 스캔들에 휩싸이게 되면서 문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보수언론과 야당 진영에서 연일 격렬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 인물을 장관으로 임명하기 위한 청문회 절차가 내주 초에 열릴 예정인데, 그 전에 (GSOMIA 파기로) 여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데이시(出石) 해설위원이 언급한 ‘지적’이란, 이날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조국 사태가 들불처럼 번지자 국민여론 악화를 덮기 위해 지소미아 파기를 강행한 것”이라 주장한 것과 나경원 원내대표도 “조국(曺國)을 위해서 우리 국민의 조국(祖國)을 버린 것”이라고 비판한 것을 가르키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옛말에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일갈했듯이 한국에서는 억지주장 취급을 받는 이 논리가 일본에서는 꽤나 설득력을 얻고 있는 모양새다.

    NHK 보도의 문제점은 지난 5월 24일에 방송한 시론공론(時論公論)에서도 드러난다. 이데이시(出石) 해설위원은 문재인 정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어렵기는 (한국)경제도 만찬가지입니다. 중국 경제성장의 둔화로 인해 수출은 5개월 연속 지난해 수준을 밑돌고 있습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1분기 경제성장율은 마이너스0.3%로 2008년의 세계금융 위기 이후 최저수준입니다. 한국경제를 견인해온 삼성전자도 1분기 영업이익이 60% 감소하는 등 주력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수출도 대폭 감소했습니다”

    NHK時論公論 5월24일 방송 자료화면

    “문재인 정권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한 것이 오히려 고용환경을 악화시켜, 4월 기준 실업율은 4.4%로 4개월 연속 4%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15~29세 청년 실업율은 11.5%로 상당히 높고, 취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4명에 1명 꼴로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못하는 아주 어려운 상황입니다. 취임초기 80%를 넘나들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도 46%까지 떨어졌습니다”

    NHK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46%까지 떨어졌다고 하던 지난 5월,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문재인 직무수행 지지율, 취임 2년차 역대 대통령 중 DJ 다음”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대부분의 혐한 보도가 그렇듯이, 사실의 왜곡은 거짓을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실들을 어떻게 강조하고 나열하느냐에 달려있다. 반대로 위안부 다큐 주전장(主戦場)에서 미키 데자키 감독의 지적했듯이 주장 속의 오류를 공격하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허위가 될 수 있다. 일본 언론의 보도행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용하는 내용에 거짓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건의 선별과 강조를 통해 늘 같은 결론(문재인 정권의 위기)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관련 일본 언론의 보도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니까 그렇다 치고, 이제 한국 언론은 그동안 어떠했는지 돌이켜보자.

    행여, 수출 피해는 일본이 더 크다는 뉴스. 한국인 단체관광 줄취소로 일본의 유명 관광지가 텅텅 비었다는 뉴스. 총리관저 앞과 도쿄 도심에서 일본시민들이 항의 집회가 이어지고 전직 총리나 학자들이 아베 정부를 비판했다는 뉴스. 고노 다로 외무대신(그의 정치성향과는 무관하게) 교체설에 일본의 외교정책에 변화조짐이 보인다는 뉴스. 아베 정권의 10월 위기설 등등. . . 듣기에 기분 좋고 비슷비슷한 뉴스들만 넘쳐나지는 않았던가?

    이 중에 얼마가 현실에 부합하고 또 얼마가 침소봉대였는지 다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사실관계는 좀 따져 보아야 하지 않을까? 도덕적으로 우월하자는 것도 그렇다고 저널리즘을 논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건 다만, 문재인 정권이 위기에 빠졌다는 일본 언론의 호들갑이나 아베 정권이 역풍을 맞고 있다는 한국 언론이 전하는 소식들이 결국 희망사항을 나열한 데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고, 게다가 기분 좋은 소식에 마냥 뿌듯해 하기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그다지 녹록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남수현(필명) : 현대일본정치(현대정치분석) 전공. ‘55년체제의 지속성’과 자민당의 상대적 우월성, 지방조직, 지방선거에 관심이 많다. 일본체류 중 얻게 되는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고자 일본매체 해설 중심의 글을 부정기적으로 게재한다

    필자소개
    일본 거주 연구자. 현대일본정치(현대정치분석)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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