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림은 미덕이 아니다. 본성이다.
        2006년 08월 01일 02: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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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이 신성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모든 노동을 즐겨하는 이가 있다면 한 번쯤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다. 게으름은 모든 생물종의 본성이게 마련이고, 그래서 인류사 역시 게으름과 편함을 목표 삼아 발전해 왔다.

    노동이나 빠름이 미덕이 아닌 것처럼 느림 역시 미덕이어서는 안 된다. 동서양의 낭만주의 문학에서나 노래되던 느림이 요즘 들어 ‘미덕’으로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발달된 생산력의 덕분은 아닐까? 느림은, 조직된 인간 사회의 이데올로기인 ‘미덕’에 갇혀 있어서는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반성이든 성찰이든 일탈이든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허용하는 안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느림은 미덕이 아니라, 본성이고 권리다. 느림을 미덕이라 부르지 말자.

    도시를 떠나 혼자 농사짓고 산다고 느림을 실천하는 건 아니다. 늦게 걷는 것은 자신을 되돌아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둘러보기 위해서다. 나 아닌 남, 인간 아닌 다른 것. 그렇다면 물리적으로 느린 삶에서 멈추는 것은 혼자 빨리 가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느림은 자아로부터의 이탈을 위한 조건일 뿐이어야 한다.

    송파에서 여의도로 왕복 48km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할 때는 건강을 생각했고, 좀 지내 보니 돈을 아껴 좋았다. 지금은 갖가지 옷차림 지나가는 사람들 훔쳐보고, 물고기 잡는 가마우지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런 게 느림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고, 느림의 진짜 목적이 아닐까?

    * 이 글은 여성환경연대 [느림 이야기] 에 같이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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