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 안바뀌면 '뉴딜'은 시작도 전에 깨질 것
        2006년 08월 01일 01: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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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태 의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재계와의 ‘뉴딜’이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혔다. 재계가 작성한 요구 목록이 김 의장의 당초 예상을 훨씬 넘어서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래를 추진하는 속도감에서 둘의 차이가 현격하다. 김 의장은 서두르는 반면 재계는 한결 느긋한 표정이다. 거래 초장부터 당사자간 ‘비대칭성’이 두드러지는 이 거래가 ‘불공정거래’로 끝나지 않을지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먼저 재계의 요구사항 가운데는 취약계층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악화시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김 의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배려’는 뉴딜을 추진하며 김 의장이 내세운 주요 전제 가운데 하나다.

    김 의장은 지난 30일 기자간담회에서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관련 하청관행의 개선,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배려 등의 가시적 조치가 이뤄지면 경제계가 요구해온 것들을 수용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결국 재계는 김 의장에게 거래에 따른 주요 대가를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재계가 원하는 것은 ‘거래’가 아니라 ‘양보’에 가깝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의장측 관계자들은 "그런 식이어서는 곤란하다"고 재계의 무성의한 거래 태도를 비판했다.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대장정’의 첫날이던 31일, 김 의장은 대한상공회의소와의 정책간담회에서 재계로부터 12개의 요구 사항을 건네받았다.

    △금리·환율의 안정적 운용 △투자 관련 세제 지원 △건설경기 활성화 방안 △중소기업 창업 및 공장설립 규제완화 △수출 중소기업의 애로 해소 △서비스업 육성 대책 △출자총액제도 폐지 △이중대표소송제 도입 유보 △적대적 인수합병 방어수단 도입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재고 △4인 이하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확대 철회 등이었다.

    이 가운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재고 △4인 이하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확대 철회 등은 ‘취약계층 노동자 보호’라는 김 의장의 뉴딜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이들 요구가 수용되면 그나마 허약한 뉴딜의 정당성은 최소한의 구색도 갖추지 못하게 된다.

    김 의장측 핵심 관계자는 "투자확대와 일자리창출, 중소기업에 대한 부당 하도급 문제 해소,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노동자 보호 등 4가지가 뉴딜의 전제조건"이라며 "재계가 이를 수용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딜은 깨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상의가 앞서 요구한 12개 항목을 고집할 경우 거래가 성사되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재계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처우개선과 관련해서도 가시적인 조치를 요구할 것"이라며 "공공부문(에서의 개선 수준)이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목희 정책기획본부장도 "취약계층 노동자의 보호라는 취지에 반하는 요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수용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재계가 이날 별도로 요구한 ‘금융산업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철회도 여당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들다. 여당의 개혁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법안으로 인식되어 온 까닭이다. 이목희 정책기획위원장은 "(금산법이) 투자활성화의 걸림돌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김 의장의 한 측근도 "타협을 하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며 "금산법을 그런 취지에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의견은 아직 당론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강봉균 정책위의장은 31일 "이 문제에 관한 당 입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고, 우원식 수석 사무부총장은 "너무 나간 얘기"라고 말을 잘랐다. 이들 모두 금산법에 대한 재검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았다.

    김 의장은 뉴딜의 방식으로 단계별로 주고받는 거래를 생각하고 있다.

    여당이 먼저 경제인들에 대해 8.15 사면을 단행하면, 경제인들이 80조원에 달하는 사내 유보자금 가운데 얼마를, 언제까지,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 그에 따른 고용창출 효과는 얼마나 되는지,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방안이 무엇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서 화답해야 하며, 그 연후에야 경영권 보장 등 사전에 약속한 각종 친기업적 조치가 단행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재계가 김 의장의 기대대로 반응해줄지는 미지수다. 김 의장은 31일 간담회에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신규투자 확대 계획을 발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재계는 "간담회를 하기로 결정한 지 며칠 되지 않았고, 기업들이 투자를 어느 정도 한다거나 어떻게 확대한다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지 못했다"며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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