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대통령, 이래도 거짓말 할겁니까"
        2006년 07월 31일 06: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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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부가 한미FTA 협상을 추진하기 위해 미국측이 제시한 이른바 4대 선결조건(쇠고기 수입 재개, 스크린쿼터 축소, 자동차 배출가스 허용기준 완화, 의약품 관련 투명성 제고)을 수용했음을 보여주는 정부의 공식 문서가 최초로 공개됐다. 정부는 지금껏 4대 선결조건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FTA가 아니었어도 해결했어야 할 외교 현안이었다"는 식의 주장을 일관되게 펼쳐왔다.

    대통령-정부 한 통속으로 국민 상대 거짓말 드러나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4대 선결조건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이에 대한 진위 여부가 한미FTA 자체에 대한 정당성 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4대 선결요건 논란과 관련해 더 이상 진위 논란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선결조건으로 해석된다면 대통령 결정으로 수용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으나 ‘거짓말’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은 없다.

    결국 이번 문서 공개로 그동안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해온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2005년 9월 12일에 열린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안건> 자료 가운데 ‘4대 선결조건’ 관련 부분을 31일 공개했다. 이 문서에서 정부는 "양국 정부간 사전 실무점검회의를 개최한 결과 미측은 대의회 설득 등 협상개시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양국간 통상현안의 진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안건> 자료 가운데 ‘4대 선결조건’ 관련 일부분
     

    정부는 특히 "06년 6월 양국 통상장관회담시 포츠먼 USTR 대표는 한미FTA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주요 통상 현안 사전 해결의 우리측 노력을 강조했다"고 전하면서 "이에 따라, 통상교섭본부장(김현종)은 05년 7월 방미하여 미 행정부 및 의회 주요 인사를 만나 한미FTA 추진 필요성을 설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 통상현안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

    정부는 그러나 "미 행정부 및 의회 모두 한미FTA 출범을 위해서는 주요 통상 현안의 사전해결이라는 기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쇠고기, 스크린쿼터는 완전 해결, 자동차, 의약품은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경우 한미FTA에 대한 의회 및 업계 설득이 가능할 것"이라는 아미 잭슨Amy Jackson USTR 한국 담당 부대표보의 2005년 8월 30일자 발언을 소개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 관련 이해관계 업계들은 FTA 추진을 통해 쇠고기, 스크린쿼터, 자동차, 의약품 등 관련 통상현안의 해결을 기대하고 있다"는 미 업계의 입장을 전하면서, "미 행정부는 통상 현안에 진전이 있는 경우 보다 구체적인 협의가 가능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안건> 자료 가운데 ‘4대 선결조건’ 관련 일부분
     

    즉, 한미FTA에 대한 초기 논의 단계때부터 미 정부 및 업계는 4대 현안이 해결돼야만 한미FTA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 왔으며, 우리 정부도 이런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 방안은 무었이었을까. 문서에서 정부는 "4대 선결조건의 해결(진전)이 없는 경우 11월 APEC 정상회의시 한미FTA 추진 공식화는 어려울 전망"이라며 "4대 선결조건의 해결(진전)에 최대한 노력하되, 이 경우 미측도 한미FTA를 확실하게 공식화하도록 외교적 협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 "4대 선결 조건 해결 위해 최대 노력"

    정부가 05년 11월 APEC 정상회의를 한미FTA 추진을 공식화하는 마지노선으로 삼은 이유는 "미국내 TPA 소멸시점(07.6), 1년 이상의 FTA 협상기간 등을 고려할 때, 11월 APEC 정상회담시 공식화가 어려울 경우 협상 추진이 상당기간 지연될 전망(11P)"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4대 현안 관련 한국측 주무부처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문서에 따르면, 문광부는 스크린쿼터에 대해 "미국 요구 수준(연 73일)으로 감축은 국회와 영화계의 반대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에 대해 농림부는 "미측 제출(8.30일) 자료에 대해 관련 절차에 따른 추가분석을 통해 안정성을 검토한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 배출가스 허용기준 완화와 관련, 환경부는 "미 연방기준 허용은 우리의 환경기준의 완화를 초래"할 수 있고, "08년말까지 소규모 판매자 유예시 유예기간이 장기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수용 불가"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2005년 9월까지만 해도 해당 부처 수용불가 입장 분명히

    의약품 관련 투명성 제고 문제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현행 약가산정방식 및 혁신적 신약 여부는 국내외 이해당사자가 참여하여 결정되었거나 결정하는 사항"이라며 약제비 절감방안의 투명성에 대한 미측의 문제제기를 일축하고 있다.

    즉,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회의가 있던 05년 9월 12일 기준에서 볼 때, 한미FTA를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약 2개월 후인 부산 APEC정상회의에서는 양국 정상이 협상 추진을 공식화할 수 있어야 했고, 그것이 가능하려면 늦어도 10월중에는 미측의 4대 선결 조건을 우리측이 수용해야 했는데, 해당 부처는 수용 불가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때문에 정부는 "주무부처의 적극적 조치 없이는 11월 APEC 정상회의 전까지 4대 선결요건의 해결 또는 진전은 어려울 전망"이라며 "10월 중순까지 4대 선결조건의 최대한 해결 또는 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상당한 초조감을 읽을 수 있다.

    이후의 사태 진행을 보면 ‘4대 선결조건의 최대한 해결 또는 진전’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노대통령과 부시 미대통령은 11월 부산 APEC 정상회의에서 만나 한미FTA 추진을 무리없이 공식화했다.

    그에 앞서 10월 30일 정부는 ‘약값 재평가 제도의 개정’ 중단을 선언했고, 11월 6일 수입차에 대해서는 배출가스 강화 기준의 적용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이듬해 1월 13일 미국산 쇠고기 금수조치를 해제했으며, 같은 달 16일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미FTA의 공식화 시점을 전후로 한 3개월 사이에 4대 선결조건이 말끔히 해결된 것이다.

    거짓말에, 독단적 결정에 어이없는 정권 

    결국 정부는 한미FTA 추진 여부는 물론, 추진 방향(4대 선결조건의 수락)에 대해서도 국내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결정했다. 한미FTA를 위한 공청회가 요식행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상정 의원이 이날 공개한 또 다른 자료인 <2005년 11월 대외경제위원회 회의안건 자료(외교통상부 작성)>를 보면, 정부는 06년 2월 3일 한미FTA 협상개시 선언 후 공청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 문서는 "FTA 체결절차 규정의 취지상 공식협상 개시선언 전에 공청회를 개최하는 것이 원칙이나 협상개시 선언 후 의회 등과 협의를 거치는 미국 국내 절차와 균형유지 문제 등을 고려하여 협상개시 선언 후 공식협상 개시 전에 (공청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미국 입장 고려 공청회 개최시기도 늦춰

    FTA에 대한 대통령 훈령을 어길 수도 있음을 공식문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절차적 감각에서 본다면, FTA 공식협상 개시선언과 같은 시간에 이뤄진 실제의 공청회(파행으로 무산된)는 그나마 양호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과 정부에게 있어 절차(공청회)와 내용(국내 이해관계자의 의견 반영)이란 처음부터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한미FTA 추진 자체가 중요했을 뿐이다.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정부의 공식 문서는 이런 참상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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