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근태의 '뉴딜'론 안팎에서 뭇매
        2006년 07월 31일 01: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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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대권으로 가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른바 재벌과의 ‘뉴딜’이다. 불법을 저지른 재계인사를 사면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경영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각종 규제완화 조치 등 재벌의 각종 숙원을 들어줄 테니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늘려달라는 제안이다. 김 의장은 하청 관행의 개선,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배려 같은 조치도 재계에 요청하겠다고 했다.

    김 의장은 31일 대한상공회의소 방문을 시작으로 이번 주 안에 전경련,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 주요 경제단체를 찾아 ‘딜’을 공식 제안할 예정이다. 김 의장은 재계와 ‘딜’이 성사되면 곧장 노동계로 달려갈 계획이다. "노동계에 요청할 사항은 요청하고, 지원할 사항은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할 방침이다. 재계, 노동계와의 연쇄 ‘딜’을 통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보겠다는 게 김 의장의 복안이다.

    김 의장은 전에도 이런 구상을 종종 비쳐왔다. 스웨덴식 사회적 타협모델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재계와의 뉴딜정책이 순수한 김근태식 구상으로 읽히는 까닭이다. 그래선지 뉴딜에 대한 당내 반응은 다소 난데없다는 것이다. 어느 중진의원은 "여당의 모습이 마치 더위 먹은 공룡같다"고 했다. 충분한 내부 논의 없이 급작스레 튀어나온 정책이라는 얘기다.

       
    ▲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31일 오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 손경식 회장 등 회장단과 정책간담회를 갖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당 바깥의 반응은 뜨악하다 못해 싸늘하다. "재벌에 투항했다", "순진하다"는 평은 그나마 우호적인 편이다. "제2의 정경유착", "재벌과의 추악한 뒷거래", "나라를 망치려고 작정한 것"이라는 극언이 쏟아져 나온다.

    비판의 핵심은 각종 규제가 기업의 투자를 발목잡고 있다는 재계의 주장을 김 의장이 여과없이 수용했다는 것이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출총제는 투자가 아니라 출자를 제한하는 것"으로 "투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도 "재벌체제하에서는 지배력 유지를 위한 순환출자 증가 등 비생산적 투자만 증가할 뿐, 생산적인 투자를 기대할 수 없어 실질적인 일자리 확대가 불가능하다"고 ‘재벌 규제 완화-투자 확대’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김 의장 구상의 전제는 규제와 외자의 지배 때문에 투자와 고용이 늘지 않고, 비정규직이 늘어난다는 것"이라며 "그런 전제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2002년부터 대기업의 제조업 투자가 늘어나기 시작해 경제위기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면서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투자 부진, 다시 말해 투자율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 양극화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조진한 진보정치연구소 상임연구위원도 "기업 투자가 부진한 것은 새로운 투자영역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 규제 때문이 아니"라며 "1회성 투자가 늘어난다고 잠재GDP가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뉴딜을 통해 재벌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는 지적도 비등하다.

    심상정 의원은 "(김 의장이 재벌에게 양보를 얻어내겠다고 말한) 비정규직 대책, 원하청 관계 불공정 시정 등은 기업이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책무"라며 "불법 행위를 사면하고 필요한 규제를 없애줄테니 은전을 베풀어 달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조진한 상임연구위원은 "일자리 문제에 관한 현실적인 해법은 공공부문부터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고, 거기에 맟줘 민간기업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유도하는 것"이라며 "요컨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전환과 출총제 폐지는 각각 노사의 이해관계가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혹시 ‘딜’의 대상이 될 지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뉴딜을 통해 노동계가 얻어낼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다.

    반면 뉴딜이 가져올 부정적 효과는 한결 뚜렷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먼저, 사회적 대타협을 명분 삼은 김 의장의 이번 제안이 제대로 된 사회적 대타협에는 해악을 미칠 것이라는 역설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상조 교수는 "사회적 대타협의 전제는 균형과 형평"이라고 강조하고, "노조와 시민단체가 재벌편향적인 이번 타협안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또 "대타협은 상대방이 협력틀을 깰 경우 그에 대한 패널티를 줄 수 있는 힘이 부여될 때 이뤄지는 것"이라며 "사면, 출총제 폐지, 경영권 방어 보장 등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준 다음 재벌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도 아무런 페널티를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타협’의 구속력을 회의했다.

    가장 우려되는 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대한 재벌의 영향력 강화다.

    심상정 의원은 "재벌은 ‘특혜중독증’에 걸려 있다"면서 "재벌은 나날이 더욱 강력한 특혜를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조 교수도 "경제정책의 핵심은 예측가능성과 신뢰"라며 "무원칙한 양보를 통해 규제가 언젠가 해소될 것이라는 신호를 주게 되면 문제가 있더라도 재벌들이 버티지 당장 시정하려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재벌에 대한 양보가 이렇게 쌓이다 보면 종국에는 재벌의 지배력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게 비판론자들이 그리는 묵시록적 전망이다.

    김상조 교수는 이를 ‘사회적 기업국가’라고 부른다. 재벌이 정치, 경제, 사회의 각 부문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심상정 의원이 "여당이 자신들의 개혁포기를 넘어서 국민들마저 재벌의 손아귀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다"고 뉴딜 구상을 강력히 비판한 것도 같은 이유다.

    이선근 본부장도 "일자리를 구실로 기형적 소유지배구조인 재벌체제를 눈감아 주겠다는 것은 국민경제를 희생양으로 재벌체제를 보전해 주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의장의 뉴딜 구상에는 경제에 대한 고려보다는 정치적인 고려가 좀 더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를 살리는 민생의 지도자,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낸 통합의 지도자가 김 의장이 얻으려는 이미지로 보인다.

    김상조 교수는 "순수 경제정책적 동기에서 이런 제안을 하기에는 경제에 대한 김 의장의 식견이나 확신이 부족하다"며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이번 제안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번 뉴딜 정책은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맞는 것"이라며 "문제는 이런 정책을 편다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할 리 만무하다는 것"이라고 김 의장이 거두게 될 정치적 효과도 낮게 봤다.

    조진한 상임연구위원도 "이번 제안에는 (김 의장이 좌파라는) 재벌과 우파의 우려를 불식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며 "그러나 시장의 논리에도 맞지 않는 뉴딜 제안은 우파에게도 환영받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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