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지정생존자’는 누구인가?
[에정칼럼] 대통령, 9월 뉴욕 기후 정상회의 참석해야
    2019년 09월 02일 09: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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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채널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60일, 지정생존자”의 주인공 박무진(지진희 분)은 고지식한 과학자 출신 환경부장관으로 출연한다. 대통령을 포함하는 국가 중요인물들이 한꺼번에 의문의 테러로 사망한 후 예상치 못하게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60일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 그는 국방외교 현안에서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들을 다루게 된다. 그가 위기를 헤쳐 나가며 정치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드라마에 대한 관전평도 다양하다.

후반 연출이 상투적이었다는 평들도 있지만 다수는 미국 원작보다 낫다거나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났다며 좋은 점수를 주는 것 같다. 그런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내가 매 회를 볼 때마다 강하게 들었던 생각은 다름 아니라 대통령제의 근원적인 결함에 대한 것이었다. 대한민국 국민 중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과 책임을 집중시키면서, 그만큼 기대와 원망 역시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제도 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 많지만, 따지고 보면 제왕을 보통선거제와 결합시켜서 현대화 한 것이 대통령인 것이지 권력의 행사 방식은 예전의 제왕들과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성군(聖君)에 가까운 캐릭터를 가진 사람이 요행히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그럭저럭 제대로 작동하지만, 폭군이나 아둔한 군주에 가까운 캐릭터를 가진 이가 당선되면 모든 게 엉망이 되고 마는 게 대통령제다. 그러니 제왕적 대통령제가 잘못 되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성군에 가까운 대통령에 모든 것을 거는 게 정치가 돌아가는 주된 방식이 되어버렸다.

드라마에서 국회의사당 테러가 일어난 것도, 박무진 권한대행이 고군분투를 하며 견제의 표적이 되는 것도, 그와 비서진들이 선거 출마를 고민하는 것도 모두 그러한 대통령제의 특징과 뗄 수 없다. 사실 정당과 당론은 차기 대선에 유불리로 작용하는 것 말고는 크게 의미가 없다. 국민의 의사는 선거에서 차악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간접적 행위와 이따금씩 진행되는 여론조사를 통한 더욱 간접적인 방식, 그리고 집회와 시위라는 직접적이지만 효과는 미미한 방식으로만 전달될 수 있을 뿐이다.

대통령이 결심하고 대통령이 지시하며 대통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이 지정생존자는 다른 모든 국민의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그런 불가피한 조건 속에서 박무진은 나름 선방을 해내고 임무를 완수하며, 그 와중에서도 국민 여론을 다독이고 정적들마저 정치의 역할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정부에서 물러난 그는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보다 긴 호흡의 정치를 준비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장면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기엔, 지금 현실의 정치와 정치제도는 절망스럽기 그지없다. 어느 유력 정치인을 둘러싼 찬반 격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하긴, 이 상황 역시 초인적인 자연인 한 사람을 바라는 대통령제와도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에 모든 것을 걸면서 정작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무력하고 엉뚱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는 이 제도의 성격은 누가 다음 권좌에 앉든 별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2018년 미국에서 열린 기후행동집회

예를 들어 기후변화라는 문제를 보자. 원인은 분명하되 설왕설래가 있고 대응 방식은 여럿이지만 확실한 하나의 처방은 없는 문제다. 100년 뒤, 50년 뒤, 10년 뒤의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와 기온 변화 전망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고 각각의 경우에 따라 엄청난 경제사회적 그리고 생물학적 결과에 대한 상당히 구체적인 예상이 나와 있지만,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동안 뭔가 결과를 내기는 어렵다. 산업 생산과 예산 편성의 관성도 바꾸어야 하고, 세금도 더 걷고 에너지 요금도 더 올려야 하고, 지역구에 공항과 도로나 공단을 유치하는 것보다 눈에 안 띄거나 지역 토호와 기업주들이 싫어할만한 일을 해야 하는데, 이 모두가 선출직 정치인이 선택할만한 게 아니다. 미국의 ‘녹색뉴딜’처럼 경제와 환경이 윈-윈하는 정책 설계를 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누구에게나 좋을 손쉬운 정책으로는 국제 기후체제가 요청하는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는 없다.

한국의 5년 단임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소선구제는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서는 최악의 제도다. 50년 후가 아니라 10년 후라도 바라보는 인기 없는 기후변화 정책은 5년의 임기 동안에 그리고 정권 재창출을 생각한다면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옆 동네에 있는 다리와 4차선 도로가 우리 동네엔 왜 없느냐고 다그치는 지역 유권자들이 뽑아주지 않으면 국회의 자리를 지킬 수 없는 후보들은 기후변화 대응에 예산을 쪼개주고 기업친화 정책을 후퇴시킬 이야기를 꺼내는 바보짓을 하지 않는다.

국회 기후변화포럼이 활동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이 국회의 주요 의제가 되지 못하고 행정부도 탈석탄 로드맵 발표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 이후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국제사회 요구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고 그나마 스스로 제시한 목표 달성에도 실패하고 있는 데에도 대통령과 국회가 한마디도 하지 않는 모습이 이상할 게 없다는 말이다. 선거제도 개혁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지만, 비례대표 비율이 늘어나고 정당의 대표성이 조금 향상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대통령은 9월 23일 뉴욕정상회의 참석으로 기후행동의 임무 시작하라

그런 절망적인 현실과 바뀌기 어려운 제도 아래에서, 나는 오히려 대통령 개인에게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대통령이 기후변화에 대해 국민에게 이야기하고 중앙 행정부와 지방정부에게 이야기하고 국회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야말로 대통령의 자리를 걸고 기후위기라는 비상 상황에 대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이다. 남북미 관계 개선과 소득주도 경제 성장, 탈원전 에너지전환 같은 과제들을 중요하게 벌여 놓았지만, 지금 기후변화 저지를 위해 중요한 발걸음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역사에 큰 과오를 남길 것이고 회복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 대통령이 그런 사실을 모르지 않고 그런 주문을 안 들은 것이 아니라면, 오는 9월 23일 유엔 사무총장이 소집한 뉴욕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으로 비상한 행보를 시작해야만 한다. 알려진 바로는 한국에서는 환경부장관만 참석이 예정되어 있고, 유엔 사무총장이 세 차례나 청와대로 서한을 보냈지만 아직 대통령 참석에 대한 공식 답변이 없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이 무척 미진하고 국제적으로 ‘기후악당’이라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그리고 국내에서도 많은 정치적 공격을 받고 있는 조건에서, 잘해야 본전도 뽑기 어렵고 한국의 처지만 드러낼 회의에 참석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자신의 일로 염려하고 행동에 나서는 시민들이 요청하고 있고, 이들이 자신과 미래 세대의 생존을 말하며 대통령이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기후위기의 지정생존자는 대통령 권한대행 한 사람일 수 없다.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 모두의 생존 또는 멸종을 같이 이야기해야 하고, 때문에 오히려 대통령도 이제 이 이야기의 원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9월 23일 뉴욕의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와서 결과를 국민에게 보고하고 비상한 상황에 대응해나갈 방도를 대통령의 책임과 권한으로 제시하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에서 드라마의 한 장면을 빌어 올해 말쯤 듣고 싶은 대사를 진지하게 떠올려 보는 것이다.

“비서실장, 국무회의 소집하세요. 안건은 기후위기 특별법입니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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