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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의 친구’와 정치·외교
    [기자생각] 한일 갈등과 법원 판결
        2019년 08월 30일 09: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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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갈등이 단기간에 수습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관측들이 많다. 한일 양측 정부 모두 퇴로를 차단한 배수진을 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경제보복 등의 방법이 아닌 정치적 외교적 대화를 통한 해법을 촉구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무력한 게 사실이다. 한국 정부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일본과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 해법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알 길이 없다.

    정부 측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양국 민간 차원의 의견도 소중하다. 지난 7월 25일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 등 일본의 지식인 77명은 ‘한국은 적인가’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이에 화답해 8월 12일 고건 정운찬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이승헌 변호사, 권영길 전 국회의원 등 한국의 원로 지식인 67인도 동아시아 평화회의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양 측의 공통 입장은 한일 양국 정부가 진지하게 대화와 협상으로 현재의 갈등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77인 선언에서는 양국 정부의 논리적 문제점과 공백을 지적하기도 했다. 65년 청구권협정으로 양국 간의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다”는 일본 정부 입장에 대해 사할린 주재 한국인의 귀국 지원 및 피폭 한국인에 대한 지원 등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의 개인 피해를 보상해왔으며,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국비를 공식 출연한 것 등에서 스스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노무현 정부 시절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 위로금을 지급하는 법률을 만들어 보상한 것을 언급했다. 한국이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정희 정부 때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1975~77년 피해자 신고를 접수하여 보상했으며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에는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했다.)

    그렇지만 양국 정부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65년 한일청구권협정 등 한일관계의 기본을 심대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게 일본 정부의 입장이고 한국 정부는 삼권분립의 민주사회에서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에 인위적으로 개입할 수 없으며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인청구권이 65년 청구권협정으로 포기된 게 아니라는 것이 이번 한국 대법원의 판단이다.

    하지만 양 정부의 입장 모두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65년 청구권협정이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 혹은 그 과정의 불법성 모두에 대한 면죄부를 줄 수 없다는 것은 협정 이후에 공론화된 위안부 문제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고, 대법원도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라는 점”을 2018년 판결문에 규정하고 있다. 전범기업 등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개인청구권의 문제는 65년 청구권협정과는 별개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도 과거 시베리아 억류 일본인 등의 사례에서 공식적으로 개인청구권은 국가 간 협약으로 사라지거나 포기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삼권분립의 민주사회에서 사법부에 대해 행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도 석연치가 않다. 이와 관련해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도 한 칼럼(시사인 623호)에서 “한국에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행정부와 사법부 사이의 견해차를 사전조율하는 법정의 친구(amicus curiae) 같은 제도가 없다”며 행정부의 불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28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대한 청와대 입장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런 요구는 사법부의 독립성과 삼권분립의 원칙을 무시하는 것으로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법정조언자 제도(법정의 친구)와 참고인 의견서

    ‘법정의 친구’(법정조언자제도) 제도는 소송 당사자주의의 전통이 강한 미국와 영국 등에서 발달한 것으로 사건 당사자가 아닌 제3자로 소송에 이해관계가 있는 개인 또는 단체가 자기 의견을 법원에 제시하는 제도이다. 주로 공익에 기초한 의견수렴을 위한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규칙에서는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자치단체는 법원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고 관계기관, 각종 단체, 전문가 등은 법원의 허가를 얻거나 양 당사자가 동의할 경우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 애플사와 삼성전자의 특허 소송이 제기 중이던 2016년 미국 연방법무부는 법정조언자 의견서(amicus curiae brief)를 제출했고 이 의견은 소송결과에도 중요한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2012년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에 대한 하급심의 기각 판결을 개인청구권 인정 취지로 파기 환송시켰고 재상고심의 최종 판결은 6년의 기간이 지난 2018년 내려졌다. 6년의 시간은 다른 의미에서도 판결의 대외적 의미가 그만큼 크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고 이에 대한 고심의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보인다. 그런데 그 고심의 시간을 박근혜 정부에서는 악의적으로 사용하였고 문재인 정부는 무개입의 무력함으로 보냈다.

    박근혜 정부 시기 양승태 대법원은 강제징용 판결 문제를 시간을 끌며 버티기로 일관했다. 그 과정에서 대법원은 일본 기업 측 소송대리인과 교감하고, 청와대·외교부와 비밀리에 회동하면서 사법부의 이해관계를 행정부와 ‘부당거래’하려고 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법원의 시간 끌기를 사법 자제(judicial self-restraint)와 외교적 해법의 시간 벌기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소송 당사자인 강제동원 피해자들 몰래 밀실에서 진행되고 거래를 위한 협의였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전혀 인정받을 수 없다. 그 6년 동안, 소송 원고 9명 중 8명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대법원 판결의 경우 한일 관계의 외교문제와 직접 연관되기 때문에 외교를 총괄하는 행정부와의 의견조율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삼권분립이라는 게 사법부에 절대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판결은 성역이 아니다. 언제나 시민사회. 언론, 정치권에서 찬반 등 평가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실효적으로 법률적으로 최종적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기에, 특히 외교 등과 관련해서는 행정부와의 협의와 조율이 필수적이다. 그 과정과 절차는 공개적이고 투명해야 한다는 것은 전제이다.

    한국의 경우도 미국 ‘법정의 친구(법정조언자제도)’를 모델로 한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가 2015년 1월 민사소송규칙과 형사소송규칙 개정을 통해 시행되고 있다.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공익과 관련한 사항에 대해 대법원에 재판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고, 대법원은 이들에게 의견서를 제출하게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전에도 참고인 의견을 제출할 수 있었지만 공개변론에서만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을 변론을 열지 않은 경우에도 국가기관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양승태 대법원 시기의 5년 동안 사법부와 행정부의 협의 과정이 악의적으로 왜곡되고, 부당거래와 피해자인 소송당사자들을 기망하는 시간으로 허비되었다면,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2018년 10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는 1년 5개월의 시간은 어떻게 보냈나? 박근혜-양승태의 부당거래가 드러나면서 사법농단, 재판거래에 대한 따가운 비판 속에서 협의 및 대외적 대응을 준비해야 할 직무를 혹여 방기한 것은 아닌가?

    판결과 관련하여 외교적 영향을 고려해야 할 문재인 정부, 주무부서인 외무부는 박근혜-양승태 시기와는 다른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참고인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는지, 했다면 어떤 입장과 의견을 담았는지 궁금할 뿐이다. 더불어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일본이 수출규제의 경제보복 조치를 실행한 2019년 7월까지 어떤 정치적 외교적 해법을 모색했는지도. 이 과정을 돌아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은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법원과 법원의 판결이 다양한 사건과 갈등의 정치적 출구가 되어가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입장이 사법부 판결을 존중한다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대법원의 판결은 실효적 법률적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고, 행정부와 사법부의 협의가 있든 없든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그리고 이 판결의 내용과 기조는 청구권협정과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 일본 사법부의 입장과 다르다는 게 공식화되었다. 일본의 경제보복과 한국의 맞대응, 지소미아 종료,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이 이어졌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법원의 일본기업 자산의 강제처분 절차 시행과 일본의 추가 조치 등으로 확전될 여지도 상당하다.

    국가 간 정치의 이름이 외교이다. 그런데 국가 간 질서에서는 정치가 정치의 역할을 못할 때 나타나는 ‘정치의 사법화’를 담당할 국제적 법률 질서와 규범이 부재하거나 그 권위가 극히 미약하다. 결국 한일 갈등에서 외교가 실패할 때 남은 것은 극단적으로는 단교까지 갈 수 있는 대립 갈등의 지속일 뿐이다. 불매운동이든 뭐든 그게 해법은 아닌 거라는 점은 분명하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장, 전 진보신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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