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이를 왜곡으로 바꾸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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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7월 28일 12: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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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일 교수에게

    뒤늦게 <레디앙>에 실린 임교수의 글을 봤습니다(2006.7.27). 누군가가 그것도 밤늦게 전화로 알려주는 바람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노동운동 경력자의 횡설수설’이라는 제목은 제가 한 말을 가리키고 그 글의 뒷머리는 분명 저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임교수의 글을 읽고 나니 임교수의 그 두통이 이제는 저한테 밀려오는 느낌이더군요. “이 친구야말로 ‘횡설수설’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느낌도 솔직히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평소의 임교수답잖게 그 글은 사실을 비틀고 있고 ‘묵언수행’하신 분답잖게 감정적이더군요. 그런데도 “뜻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 한 구절 한 구절, 조사 한 단어까지도 절묘하게 지배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산별전환이 가결되자 당혹했다?

    먼저 저에 대한 소개부터가 임교수 편한 대로 끌고가고 있더군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두통의 원인에 저를 끼워 맞추느라 그렇게 된 것 같더군요. “지난 겨울 회사측의 지원을 얻어 현대자동차 실태조사를 했고 그 결과 60% 정도의 찬성률로 이번에도 산별전환은 부결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장본인”이라는 소개가 그것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이렇습니다. “지난 겨울, 정확히는 올 1월, 회사측으로부터 경비지원을 얻고 노동조합과 협의를 거쳐 현대자동차의 노사관계 현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고”가 그것입니다. 노동조합이 거부하면 설문조사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임교수도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또한 당시 설문조사의 주체는 역시 임교수도 잘 알고 있는 울산리서치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특히 제가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그 연구결과는 사측에 대한 ‘비밀보고서’가 아니라 노동조합은 물론 관련 연구자에게도 광범위하게 배포된 ‘연구보고서’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요지는 지난 6월, 산업노동학회와 산업사회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학술발표회에서 제가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산별부결을 유도한 설문조사였다는 뉘앙스는 뒷말에서 확인됩니다. “산별전환은 부결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장본인”이라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설문조사와 산별투표 간에는 6개월에 가까운 시차가 있습니다. 당시는 노조의 교육도, 사용자측의 방해(?)도 없던 상대적으로 고요한 시기였습니다. 더욱이 그 조사는 생산직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표본에서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갖고 산별전환 투표의 부결을 예측할 만큼 저는 무지막지하지 않습니다. 산별전환투표를 앞든 시점에서 제가 주위 사람에게 한 전망은 “가결과 부결 어느 것이나 2% 범위이내 일만큼 미세한 국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임교수도 산별전환투표를 확신하지 못하였다고 했다지요?

    “자신의 예측과 그에 기초한 보고가 어긋나서 화라도 난 것일까”. 이건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6개월 전의 예측이 실제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을 근거가 없다는 건 조금 전에도 지적했습니다만 산별전환 투표가 가결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저는 다른 지면에서 “노동운동의 2007 체제가 제 모양을 잡아가는 모습”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저로서는 당혹할 일도, 화날 일도 없었습니다.

    임교수가 해프닝이 있었다고 언급한 지식인들이 산별전환을 호소하는 서명문에는 저의 이름도 들어 있습니다. 저도 임교수만큼은 못되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산별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다녔습니다. 그보다 제가 지난 세월 동안 산별전환의 필요성에 대해 쓴 글들은 아예 고려의 대상이 아니더군요.

    ‘노동운동 경력자’나 또는 관변연구단체?

    ‘어느 노동운동 경력자’라는 표현도 묘하게 ‘선정적’입디다. 한 때는 청와대에 근무하였다는 사실은 너무 노골적이라 뺀 모양이죠? 어떤 사람이 노동운동 경력자에 해당되는지 모르지만 저는 지금도 조합원입니다. 그보다 어느 학자나 연구자라는 표현은 그렇게 쓰기가 힘들었던가요? 적어도 그날 모임은 그런 성격의 모임이 아니었던가요?

    임교수가 산별 간담회에 참석한 자리가 한국노동연구원이었다는 사실을 적시하지 않은 것도 그렇습니다. 관변연구단체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노동운동 경력가’가 노는 동네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던 건가요? 그렇다면 표현이 너무 얄팍하지 않을까요? 그런 모임에 참석한 임교수가 자신을 질책하였으리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임교수의 표현은 정말 놀랍네요. “오늘도 노동자들의 세금 수백만원이 이렇게 사라지는구나”라고 하셨네요. 저도 임교수가 떠난 바로 뒤에 자리를 떠서 모르기는 합니다만 마치 그 모임이 돈 잔치인 듯 몰고 가는 것은 심하네요. 임교수도 그랬겠지만 저도 교통비 10만원을 받았습니다. 무슨 일로 수백만 원씩이나 지출되었을까요? 그것이 노동자만의 세금인지도 의문입니다만 수백만 원이 사실이라면 감사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임교수의 의도적인 비틀기는 “정부도, 경총 등의 자본가 단체도, 그리고 이 연구기관의 분석으로도 금속연맹의 산별전환, 특히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의 산별전환은 부결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고 합니다”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물론 저 자신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정부도, 노동연구원도 그런 전망을 낸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경총 등의 자본가 단체’는 어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임교수는 말미에 “이라는 판단이었다고 합니다”라는 간접화법을 씀으로써 책임은 피하면서 마치 그게 사실인양 전달하고 있군요.

    노조의 전략적 유연성이 산별완성을 앞당겨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가죠. 임교수가 제가 한 말이라고 적은 부분도 선정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날 제가 한 이야기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화날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현대차 노조의 경우 산별전환은 연대의 경험이 바탕이 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그것이 산별전환 투표를 가결시킨 것하고는 별개의 문제이다. 특히 단기적인 실리주의는 기업별 체제가 낳은 고질적인 병폐이고 이는 산별원칙과 양립하기 힘들 뿐 아니라 자칫 제2노조의 온상이 될 수 있다.

    산별의 완성은 산별적인 교섭구조의 정착을 의미하고 이는 노사간 합의사항이다. 만일 ‘투쟁에 의한 산별완성’을 내건다면 별 문제이겠지만(나로서는 그게 어렵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노사간 타협을 유도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전략적 유연성은 중요하다. 이는 산별에 대한 정부의 우호적인 정책을 끌어내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산별전환투표과정에서 사용자측이 집요하게 방해공작을 펼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미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물론 왜 사용자측이 그렇게 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제가 순수하게 이론적인 추론이라는 것을 전제로 너 댓 가지를 제시하였죠. 이는 사실 예상치 못했던 지점인데다 매우 민감한 사항인 만큼 조심스럽게 진단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표현도 제가 썼죠, 아마? 그런데 임교수는 이 부분 역시 예의 선정적인 노사담합론만, 그것도 순수하게 이론적인 추론수준이었다는 사실은 생략한 채 지적하였더군요.

    좀 더 이야기하죠. 그 날이 7월 18일이었던가요? 그 때는 현대차 노조의 임투가 한창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저는 임투에 대한 과도한 집중은 그것이 산별로 전환한 이유도 아니겠지만 향후 산별이행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지금도 이 생각은 여전합니다만 그것이 과거 질서의 마지막도, 새로운 질서의 시작도 아니라고 본 것이죠. 노사간에는 그렇잖아도 강한 불신이 존재하는 터에 더 깊어질 경우 그것이 노조가 원하는 안정적인 교섭구조의 조기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였습니다.

    인신공격을 넘어 생산적인 논쟁으로

    두서없이 제 이야기만 길어지고 말았네요. 저 때문에 두통이 오고 또 자리를 떴다는 데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두통은 좀 나았는지 궁금합니다. 이 글이 또 다른 두통의 원인이나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한테 보낸 편지도 아닌데 마치 제가 가로채기라도 한 듯 답변을 씁니다.

    이제는 우리나라 사회학계에서 일가를 이룬, 항상 자랑스런 친구라 여겼던 임교수에게 이런 글을 쓴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저와 임교수 사이에는 산별을 둘러싸고 많은 견해차가 있으리라 여기고 있습니다. 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시절 인연이라도 되살릴까요, 사적이든 공적이든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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