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우 경솔하고 무책임한 '청와대 브리핑'
    By tathata
        2006년 07월 27일 04:36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포스코 사태가 정리(?)되고 나서 청와대 사회정책 수석실 명의로 “노동운동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최근의 노동쟁의를 보고”라는 브리핑자료가 발표되었다.

    발표 내용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포스코 사태를 빗대어 노사관계의 문제 해결방식에 있어서 불법적인 폭력이 사용된 것에 대한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포스코 사태의 본질인 비정규노동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의 책임으로 돌리며 비판하는 내용이다.

    노사관계를 연구하는 연구자의 시각에서 이 브리핑의 내용에 일부 공감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국정을 총괄하는 청와대에서 나온 공식문건이라는 점에서 적어도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특정 사업장의 노동쟁의 문제를 국정을 총괄하는 당국에서 논평을 내는 것이 적절한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반드시 거래의 쌍방이 존재하는 노사관계의 문제를 어느 한 쪽만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시각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나라에는 포스코 하나의 사업장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300만개가 넘는 사업장이 존재한다. 그런데 비록 대기업이라고는 하나 특정 사업장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 국정의 총괄책임을 지는 부서에서 별도의 언급을 해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혹시 그 사업장의 문제가 대단히 일반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그렇게 했다면, 가장 문제로 지적된 폭력적 사태가 전체 300만개의 사업장 가운데 도대체 몇 군데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어느 정도로 만연해 있는 현상인지에 대해 납득할만한 자료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외적인 사태’ 원인 규명은 없다

    노사관계 연구자로서 필자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인식으로는 우리나라 노사관계에서 폭력이 사용되는 경우는 일반적인 일이기보다는 예외적인 일에 해당한다. 따라서 포스코 사태에서 폭력이 예외적으로 사용되었다면 거기에는 예외적인 노사관계의 특수성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특정 사안에 대한 평가는 국정을 책임지는 부서의 행동으로는 매우 경솔하고 무책임한 일로 생각된다. 왜 그런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이 사용될 수밖에 없었는지가 일차적인 사태 이해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또 하나 지적해야 할 문제는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의 문제이다. 노사관계는 자본주의에서 노동력을 매개로 한 거래행위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거래에는 항상 쌍방이 존재하는 법이다.

    우리 속담에도 있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노사관계에서 누군가가 예외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이며 그 이유에는 노사 쌍방이 함께 연루되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적 전제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왜 정규직 책임인가?"

    상식이 이러할진대 비정규노동 문제가 어떻게 전적으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책임으로 돌려질 수 있는지 사물에 대한 그 인식구조가 놀랍기만 하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이지만 비정규노동은 사용자가 이들을 고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이다.

    사후적으로 그것이 기존에 이미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어떻게 그것이 원천적으로 사용자의 책임이 아닌 기존 노동자들의 책임이 되는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연구자인 필자의 논리적 추론으로는 이런 인식에 도달하기 어렵다.

    어떤 경우든 폭력은 그 자체로 정당화되기 어렵고 따라서 포스코 사태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우리 노사관계에서 일반적이기보다는 예외적인 일이라는 점에서 거기에는 그럴만한 예외적인 이유가 존재하고 이런 예외적인 이유를 먼저 찾아낸 다음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국정을 담당하는 정부의 올바른 역할일 것이다.

    피해자를 비난하고, 정규직에 책임돌리고

    실질적인 사용자가 거래 당사자가 아니라고 우겨대는 예외적인 구조가 바로 그 원인이라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문제이다. 당국자가 힘을 쏟을 일은 바로 이런 예외적인 고용관계의 제도적 정상화에 있는 것이지 그것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는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일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해결해야 할 이런 과제를 밀쳐둔 채 그 책임을 엉뚱하게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돌리는 일은 매우 생경스럽고 무책임해 보인다. 물론 비정규노동 문제에 우리 노동운동의 보다 효율적인 연대와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은 굳이 청와대에서 얘기하지 않아도 필자는 물론 우리 노동운동 진영 모두가 이미 절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이 문제는 노동계가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는 전제들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과 깊은 관련이 있다. 비정규노동 문제는 본질적으로 초기업적 교섭의제이고 우리 노동운동은 이런 초기업적 교섭단위를 아직 꾸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금속연맹을 필두로 초기업 교섭구조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도 바로 당국자가 지목한 대기업 노동자들의 주도 하에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제 노동계는 비정규노동 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대응책을 마련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계 노력에 찬물 끼얹는 청와대

    포스코 문제에 대한 당국의 무책임하고 비과학적인 브리핑이 우려스러운 것은 앞으로 전개될 노동계의 노력에 이런 당국자의 인식이 도움은커녕 오히려 찬물을 끼얹는 일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필자가 새삼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물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은 언제나 “원인 없는 현상은 없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는 점, 그리고 사회적 문제의 원인은 언제나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즉 이해 당사자들 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보다 문명화된 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도덕적 원칙이 있다. 자신의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하며 남에게 그것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동계의 책임은 노동계의 몫으로 그리고 당국자의 책임은 당국자의 몫이어야 한다. 남의 책임을 거론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