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에 포위된 멕시코 중남미 '왕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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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7월 27일 04: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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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대통령 선거가 지난 7월2일에 있었지만 부정선거 시비에 휘말려 야당에 의해 선거법원에 고소됐다. 늦으면 9월초에나 법원의 판결이 있을 예정이다. 이상하게도 바로 위 큰 나라의 모습을 닮아 있다.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할 선관위가 한쪽 편을 든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멕시코 개표 방송은 우리나라와는 매우 다르다. 우리의 경우 투표가 끝난 후 각 개표소 집계가 이루어질 때마다 실시간으로 텔레비전 화면에 득표 현황이 계속해서 중계된다. 그런데 멕시코는 투표일인 7월2일 밤 11시까지 아무런 관련 보도가 없었다.

그러다가 선관위원장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집권당인 국민행동당(PAN)과 야당 민주혁명당(PRD)의 두 후보 간 표 차이가 너무 작아 어느 쪽이 유리한지에 대한 잠정 집계결과(PREP)를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 수요일까지 기다리면 최종 집계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각 정당, 지방정부, 매스컴 등은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무조건 기다리라고 했다. 약 15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폭스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와 같은 결과를 이야기하면서 시위 등을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상한 멕시코의 선거개표

잠정집계라면 모든 개표소의 투표함 중 일부를 열어서 문자 그대로 잠정적으로 집계한다는 것인데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지역에 따라 당연히 선호하는 후보가 다를 테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남부지역은 야당인 오브라도르가 우세하고 북부지역은 PAN당이 우세하다. 

   
▲ 민주혁명당 오브라도르 후보
 

우여곡절 끝에 최종 집계 결과가 나왔는데 결과는 PAN당 후보가 이긴 것으로 됐다. 물론 이게 공식적인 결정이 아니며, 공식 발표는 선거법원에 결과가 통보되면 법원에서 공식 발표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심각한 선거부정 의혹으로 PRD당이 법원에 고소하고, 법원이 관련 사실을 조사를 하는 중이기 때문에 아직 공식 발표가 안 됐다. 하지만 PAN당의 후보는 당선된 것처럼 행동하면서 국민화합과 대연정을 제의하고 있다. 민영 텔레비전 두 채널에서는 PAN당 후보에게 유리한 방송을 하고 있다. 선거가 있기 직전 의회에서 방송법이 개정되면서 두 민영 방송사에 특혜를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편 야당의 오브라도르 후보는 자신의 특기인 대중동원 시위와 기자회견을 연일 열면서 모든 투표함의 재개봉과 투표용지를 한 장씩 다시 확인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집계표 기록이 조작되었고 이를 근거로 한 선관위 컴퓨터 작업결과가 의심스러우므로 수작업으로 투표함마다 하나씩 열자는 것이다.

부정선거 의혹 속속 드러나

여기에 여당후보측은 반대하고 있다. 우리가 볼 때는 당연한 요구인 것 같은데 멕시코 법률로는 오직 선거법원만이 모든 투표함 개봉을 결정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는 집계표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되는 해당 투표함만 여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멕시코 일간지 <라 호르나다> 7월25일자에 의하면, 야당은 개표소에서 집계한 표의 숫자와 투표시 확인한 선거인 명부의 숫자가 다르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7월25일 현재 PRD당의 대변인이 발표한 것에 의하면 약 160만 표 이상이 집계표와 실제 표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이 차이는 3.88%가 된다. 선관위 발표는 여당의 후보가 0.58% 포인트 차이로 이긴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7월2일 잠정개표 상황 내내 양 후보의 표차이가 일정하게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서로 그래프가 교차하기도 할텐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반면 최종 개표에서는 처음부터 오브라도르 후보가 이겨나가다가 최후순간에 북부지역의 투표함이 개봉되면서 아슬아슬한 표차로 칼데론 후보가 이긴 것으로 되었다. 현지 통계전문가들은 잠정집계 상황의 조작의혹을 제기하면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칼데론 처남이 납품한 개표집계 프로그램 사전 조작 의혹

이것만이 아니다. 멕시코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집약하면 끝이 없을 정도이다. 예를 들어 남부의 오브라도르가 우세한 지역은 그 지역의 상원의원에 투표한 숫자보다 대통령에 투표한 숫자가 훨씬 적게 나왔는데 이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이다.

또한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는 펠리페 칼데론의 처남 힐데브란도가 선거관리 소프트웨어를 멕시코 선관위에 납품했는데 미리 조작된 프로그램 입력으로 0.58%의 표차로 자기 매제가 이기도록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계속되고 있다.

이와 같은 의혹은 그냥 아마추어 시민들이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멕시코의 권위 있는 국립자치대학교(UNAM) 물리학연구소의 루이스 모찬 박사가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잠정집계의 최초 산출에 사용한 집계표 1만 표를 거꾸로 분석한 결과, 득표추세 그래프를 보면 PAN당과 PRI당의 후보는 출발(제로)에서 만나는데 이상하게 오브라도르의 경우 제로에서 만나지 않는다. 이 점만 고려해도 오브라도르는 약 13만표는 더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멕시코 포퓰리즘의 기원

멕시코 예전 집권당인 PRI당은 1929년부터 2000년까지 71년을 장기 집권한 정당이다. 겉으로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적이고 민중지향적이지만 실제로는 부정부패에서 가장 앞서고 멕시코 사회의 통제와 안정을 위해 개인의 인권보다는 노조 등의 집단을 통해 포퓰리즘적인 극우적 통치를 해왔다.

중남미 다른 나라들도 그렇지만 멕시코에서 조작적인 포퓰리즘이 통할 수 있는 구조적 원인은 가톨릭의 영향으로 사회에 깔려있는 온정주의와 대중의 무지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등 좌파 정권들은 무엇보다도 교육에 정부의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문맹 퇴치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1910년에 터진 멕시코 혁명은 사빠타와 판초 빌라 등의 지도자가 헤게모니 싸움에서 패하고 암살됨으로써 혁명의 완성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기존의 정치, 사회 지형을 완전히 뒤엎은 일대 사건이었다.

따라서 기득권층으로서는 멕시코의 안정과 통합을 최우선 가치로 정치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도구가 노조를 통한 일정한 지원과 통제에 있었다. 각 산별노조의 지도자들은 귀족처럼 살았고 국회의원으로 출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노조 중에는 모든 투표용지를 다시 확인하자는 PRD당의 요구를 거부하고 PAN당을 지지하는 노조가 있다. 국영회사인 전기회사를 모태로 하는 전력산업 노조가 그렇다.

두 개의 멕시코

이번 선거결과는 멕시코의 허상적 정체성인 사회통합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멕시코는 지금 남과 북으로, 그리고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들로 완전히 갈려있다. 멕시코의 남부나 북부나 노동자들은 대부분 모두 가난하다.

그런데 북부 노동자들은 대부분 마낄라도라 외국투자 공장에서 일하면서 겨우 연명하고 살지만 노동자, 농민을 위하겠다는 PRD당을 별로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부는 다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사회, 문화적으로 정체성의 뿌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 치아파스에서의 마르코스 부사령관
 

남부에는 원주민과 혼혈인들이 많이 산다. 이곳은 다른 지방과 정치 헤게모니 지형이 많이 다르다. 그리고 오브라도르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최근 오하하까 지방에서는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민중의회를 구성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원주민들의 공동체 문화는 생명력이 아주 강해 개인간의 무한경쟁을 원리로 하는 신자유주의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남부에 자리잡은 것도 서로 코드가 맞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대기업체의 이익을 주로 대변하는 우파 정당 PAN당의 거점은 중부지역인 과나화또, 할리스코주 등과 북부 산업지대 등이다. 특히 중부의 과나화또 지역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광산이 주로 있어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고 그때부터 내려오는 기득권층의 전통이 큰 곳이다. 현재 폭스 대통령과 지금 당선된 것으로 치부하는 펠리페 깔데론도 거기 출신이다. 우리로 치면 TK 정도 될 것이다.

특히 이 지역과 멕시코시티 부근의 뿌에블라 등은 멕시코 가톨릭의 극우집단인 융께(YUNQUE)가 중심이 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융께를 연구한 알바로 델가도에 의하면 현재 집권당의 사무총장인 마누엘 에스피노와 내무부 장관인 까를로스 아바스깔도 이 집단의 구성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멕시코 최대의 공업도시가 있는 누에보 레온주도 PAN당의 거점이다. 이곳에는 멕시코 최대의 독점기업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이에 반해 지식인들과 비판적 의식이 강한 중산층이 많이 사는 수도는 다르다. 특히 몇번에 걸쳐 멕시코시티 시장직을 차지한 PRD당이 도시빈민을 위한 정책을 과감하게 실시해 오브라도르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다. 그리고 광산이 있던 중북부의 사까테까주도 노동운동이 우세하고 판초빌라가 활동하던 주무대여서 그런지 PRD당의 거점이다.

FTA 12년 멕시코의 현실

이야기를 조금 바꿔보자. 최근 한미 FTA 때문에 멕시코가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는데 멕시코에 한번 와보면 나프타 발효 12년이 지난 후 멕시코 경제, 사회의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신호를 받아 잠시 정차하면 거지 행색의 젊은이들 여럿이 물병과 걸레를 들고 달려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차 앞유리창을 닦는 시늉을 하고 몇 푼의 동전을 받는다. 이들도 취업인구로 잡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모든 도시의 소매점은 거의 미국계 연쇄점이 장악하고 있다. 대도시의 골목과 빈민들이 사는 곳의 아주 영세한 구멍가게 일부를 제외하고 그렇다. 하바드대 의대 출신의 최고급 의사들이 진료하는 미국계 고급병원도 들어와 있지만 일반 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청소회사서부터 커텐 가게까지 미국 자본이 곳곳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실상이 소개 되었지만 멕시코 영화를 구경하기가 정말 힘들다. ‘자유무역 행동 멕시코 연대’에 의하면 나프타 이후 약 2백만 개의 중소기업이 파산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시민단체의 자료에 따르면 약 2백만의 농민이 농촌을 떠났다고 한다.

멕시코는 나프타 도입 이후 성장율이 거의 1%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멕시코 정부는 거시경제 지표가 안정되어 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또 멕시코의 수출도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수출하는 제품의 부품 97%가 미국 등에서 들여오는 것이다. 조립만 해서 다시 미국으로 가져가면서 멕시코 통계에는 엄연히 수출로 잡히는 것이다.

중남미에서 ‘왕따’ 당하는 멕시코

우리나라에서 4대 선결조건이 문제가 되어있지만 멕시코도 선결조건이 있었다. 1992년에 나프타가 체결되었고 1994년부터 발효되었는데 1992년에 헌법 제27조를 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농민 공동체 소유의 토지(EJIDO)를 기업들이 매입할 수 있게 되었다. 대규모 현대식 기계농업의 기반을 닦아준 것이다. 그리고 농지분배를 위한 농업개혁처도 없어졌다.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는 미국 기업 메탈클래드 사건을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멕시코 중부 산 루이스 포토시주에 투자한 캐나다 광산회사인 메탈리카 리소스도 노천광산에 의한 중금속 오염문제가 생겨 주 법원이 작업 중단을 지시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고 있다. 정부의 주권 행사에 심각한 위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프타 이후 멕시코가 당면한 최대 문제는 전통적으로 중남미에서 맏형노릇을 해오던 지도적 위치를 잃고 ‘왕따’ 비슷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최근 메르코수르에 베네수엘라가 정식으로 가입하고 정상회의에 볼리비아가 초청되고 쿠바의 카스트로까지 초청되어 메르코수르가 단지 경제통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의미까지 강화되고 있는데 멕시코는 겨우 준회원으로도 들어가고 싶다고 희망하는 수준에 있다.

중남미 각국마다 진보세력들이 연쇄적으로 집권하고 있고 이미 미국과 FTA를 추진중이던 에콰도르와 페루도 그 추진이 어렵게 되고 있다. 겨우 멕시코와 같은 신자유주의 모범생은 칠레인데 이 나라는 겉으로 보기와 달리 비민주적 제도의 온존과 사회적 양극화 문제로 큰 홍역을 앓고 있다.

칠레에서는 5월 말 어린 고등학생들 약 1백만 명이 전국적으로 반신자유주의 시위를 벌인 일이 있다. 지나치게 경쟁을 부추기고 교육을 산업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비민주적 교육법을 개정하고 사립학교에 비해 질이 낮은 공립학교 처우 등을 개선할 것을 요구한 시위는 기성세대에게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미국과의 FTA, 한국이 멕시코보다 불리한 이유

우리나라와 멕시코는 노동자들의 저항에 공권력이 폭력으로 대처하는 등 비슷한 점이 많지만 실제 FTA를 맺었을 땐 멕시코보다 우리가 훨씬 더 불리하다.

우선 한국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목숨 걸고 넘어갈 수 있는 미국이 바로 국경 옆에 있지 않다. 또한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정치세력인 PRD당이 강세를 유지하고 있고, 멕시코시티 시장과 지방의회 및 지방정부의 상당수를 진보세력이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남부의 마르코스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하는 원주민 중심 지역 등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진보적 저항의 진지를 멕시코가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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