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상품
    대규모 손실 예상···제2의 키코 사태 우려
    금융정의연대 "금융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대책 필요"
        2019년 08월 20일 09: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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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이 판매한 독일, 영국, 미국 등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S·DLF)의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면서 ‘제2의 키코(KIKO)사태’ 우려가 제기된다.

    19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주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 판매현황 및 대응방향’에 따르면 대규모 원금손실이 예상되는 해외금리 연계 펀드(DLF) 및 파생결합증권(DLS) 판매액이 총 8224억 원으로 손실예상액만 4558억원(55%)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금감원은 “현재 미국과 영국, 독일의 금리가 하락하면서 DLS, DLF 가입자들 중 미국과 영국의 CMS 금리 연계상품은 56.2%, 독일국채 10년물 금리 연계상품은 95.1%의 원금손실(만기 시)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피해가 우려되는 독일국채 10년물 금리 연계상품과 미·영국의 CMS 금리 연계상품은 해외금리와 연계된 파생결합 금융상품으로 해외금리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며 상품의 만기 또한 짧은 편이다. 각각 1266억 원, 6958억 원이 팔렸는데, 우리은행이 4012억 원, 하나은행은 3876억 원 어치를 판매했다.

    특히 독일국채 10년물 금리 연계상품은 다음 달이면 만기가 되는 상황이라 투자자들이 원금 전체를 잃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 상품의 전체 투자액 1266억 원 대부분이 우리은행에서 팔렸다.

    두 상품은 애초부터 기형적 구조로 설계돼있었다. 아무리 금리가 올라도 투자자의 수익은 연 3~5%에 불과한 반면 금리가 하락해 일정 구간에서 벗어나면 원금 전체의 손실을 입는 구조다. 수익률은 최대 5%, 손실률은 100%까지 가능한 상품인 것이다.

    문제는 판매 은행들이 이러한 위험성을 소비자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상품을 적극 권유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피해자 A씨는 20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제가 안 하겠다고 했는데 은행 측에서 ‘원금 손실 전혀 없고 이 지역의 고령자, 퇴직자들이 안전해서 다 가입한 상품이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이 상품은 독일이 망하지 않으면 절대 손실 날 일이 없다. 무조건 넣으시면 된다’고 말했다”며 “그래서 5월 초에 가입을 했는데 3개월 만에 원금이 모두 사라졌다”고 전했다.

    ‘원금 손실 가능성을 은행 측에서 사전 고지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원금 손실이 있다면 누가 투자를 하겠나. (은행 측에선) ‘상품 구조가 이렇게 돼 있지만 -0.19 미만으로는 10년 이상 내려간 적이 없어서 전혀 신경 안 써도 된다. 11월 11일 만기 날에 와서 원금 플러스 이자 받아 가면 된다’고 했다”고 답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독일과 영국, 미국 등 해외 금리의 하락, 미중 무역갈등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금리 연계형 상품에 대해 ‘위험성이 거의 없다’는 식으로 판매한 것이다.

    금융 관련 시민사회단체인 ‘금융정의연대’는 이날 논평에서 “이 상품을 판매했던 증권사들조차도 금리 하락이 이어지며 일부 증권사들은 곧바로 판매를 중단했지만,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고객들에게 이 상품을 대거 판매했다”며 “지난 3~4월 20% 정도의 손실이 나고 있음에도 은행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상품의 위험성과 리스크를 충분히 알고도 판매 규모를 키운 은행들은 수수료 이익을 위해 고위험 상품 판매를 무리하게 강행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원금 전체 손실이 가능한 상품이 단기간 내에 대대적으로 판매된 점을 비춰봤을 때 은행의 조직적인 판매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정의연대가 이날 밝힌 제보 내용을 봐도, 은행 경영진의 압박 판매가 이뤄졌다는 의혹에 무게가 더해진다.

    제보자 B씨는 “만기 6개월 상품을 KEB하나은행은 3월까지, 우리은행은 5월까지 판매했고, 일부은행의 PB들은 ‘지난 4월 일부 손실이 나지만 환매수수료(7%)를 감액해주면 고객들에게 환매를 권유하겠다’고 해당 부서에 의견을 냈지만 묵살됐다”고 제보했다. 또 다른 제보자도 “은행의 KPI(성과평가)에서 상품판매에 가점을 줬고, 경영진들은 압박판매를 했다”며 “일부 지점에서는 판매자격(파생상품투자권유자문인력)이 없는 창구직원이 PB로 둔갑해 상품을 판매했고, 이는 지점의 ‘실적 압박’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번 DLS·DLF 사태는 2008년 벌어진 키코 사태를 연상케 한다. DLS·DLF의 상품 구조 및 판매 과정이 키코 사태와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시중은행들은 키코가 손실이 무한히 커질 수 있는 ‘환투기’ 상품임을 정확히 고지하지 않은 채 판매했다. 이후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환율이 상한선 이상으로 폭등하면서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 중 일부는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금융당국은 대대적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금융정의연대는 “10년 전 키코(KIKO)사태처럼 많은 금융소비자들이 자산을 상실하고 거리에 나앉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금융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대책이 필요하다”며 “금감원은 또다시 키코 사태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판매로 결론짓고 직원들만 징계하는 등 책임전가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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