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위적 민영화·외주화,
    하청 사망사고 근본 원인
    ‘김용균 특조위’ 진상조사 결과 발표
        2019년 08월 19일 07: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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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망한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사고가 비용절감을 명분으로 한 외주화와 민영화 등으로 인한 불평등하고 이원화된 원·하청 구조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하청노동자들을 산업재해의 위험으로 몰아넣은 근본 원인이 발전사 민영화와 외주화에 있다는 의미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는 19일 오전 서울 정부종합청사 브리핑룸에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6명의 조사위원으로 출범한 김용균 특조위의 진상조사는 약 4개월간 진행됐다.

    특조위는 “고 김용균의 사망이 특조위에 던진 과제는 발전소에서의 안전 관련 법 위반사항과 위험요인을 발견해 기술적 대책을 제시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전소의 안전을 저해하는 구조적 요인들을 규명해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청노동자의 거듭되는 사망사고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규명하고 이에 따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진상조사 결과 발표 모습(사진=공공운수노조)

    진상조사결과 발표 모습(사진=공공운수노조)특조위는 김용균 씨의 사망사고의 핵심 원인으로 비용절감을 위한 발전정비와 연료·환경설비 운전부문의 인위적 민영화·외주화 정책을 꼽았다. 이 분야의 민영화·외주화 확대는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정책으로 인한 발전5사 분할로 시작됐다. 발전정비산업에 경쟁을 도입해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특조위는 이러한 정부의 정책이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고용불안, 안전을 무시한 운영으로 인해 노동자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악영향만 초래했다고 결론지었다. 특조위의 보고서 내용을 종합하면, 발전사 민영화·외주화 정책으로 이익을 본 쪽은 하청노동자의 임금을 착복한 민간 하청업체와 안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원청인 발전사뿐이다.

    특조위는 “전력시장의 높은 도매가격 변동성과 이로 인한 발전공기업 영업이익률의 변동성과불안정성을 초래했고, 경쟁적 연료도입은 글로벌 대비 비싼 구입비용을 초래해 수직분할과 발전분할의 경쟁효과는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히려 5개의 발전공기업이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관리영역의 간접인력 비중은 증가한 반면 전기생산의 직접인력은 감소했다”며 “경영성과 경쟁으로 진행되는 정부경영평가의 결과, 발전 공기업의 협력관계는 붕괴되어 규모의 경제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부연했다.

    발전사 경쟁방안으로 발전시장에 유입된 민간 하청업체들은 높은 이윤을 내기 위해 노동자의 숙련도 대신 저비용의 청년노동자를 대거 고용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렸고, 안정적 설비운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발전사가 일정한 수준으로 책정한 직접노무비를 하청업체들이 상당 금액을 착복한 의혹이 제기됐다.

    특조위가 건강보험료 납부실적을 토대로 인건비 지급액을 역산한 금액과 노무비 계약금액 중 정산금액(실제 도급비로 지급된 인건비)를 비교한 결과, 하청업체가 지급받은 노무비 중 실제로 노동자에게 지급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율은 47~61%에 불과했다. 노무비로 지급받은 금액의 39~53%가 노동자에게 지급되지 않고 중간 착복됐다는 의미다.

    계획정비공사의 경우 인건비 지급률은 3~25%에 불과하다. 경상정비와 계획예방정비 인건비는 각각 상정되지만 하청업체들은 이 분야의 일을 노동자 1명에게 모두 시킨다. 그리고 노동자 1명은 경상정비에 따른 인건비와 연장수당만 지급받는다. 하청업체가 경상정비와 계획예방정비 인건비 양쪽에서 이중착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특조위는 “현재의 도급비 구조는 하청노동자에게는 저임금을, 협력사에게는 과도한 이윤을 안겨주는 의미가 강하다”며 “구조적인 저임금은 노동자가 위험에 노출돼도 자신의 안전보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업무를 강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간착취에 대한 어떠한 관리감독과 제재도 이뤄지지 않는 외주화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 안전권은 생존의 문제,
    원-하청구조는 노동자에게 위험 제거·해결 위한 권리 보장 못해“

    산재 사고 발생 시 발전사나 하청업체가 노동자 개인의 과실로 사고의 원인을 몰아가는 데에도 강한 문제 제기를 했다.

    특조위는 “개인의 안전수칙 위반이나 부주의에서 산업재해의 원인을 찾는 진단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자들은 영국 노동자의 20배, 유럽연합 노동자의 5배에 달하는 실수를 범한다는 말이 된다. 이런 진단은 그 자체로 타당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발전본부가 작성한 ‘중대재해 사고조사서’는 사고의 압도적 원인으로 작업자 과실을 지목하고 있다.

    특조위는 “노동자들에게 노동 안전권은 생존의 문제”라며 “그러나 원-하청구조에서 노동자들은 위험을 제거하고 해결하기 위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조위에 따르면, 현장에서 노동자가 위험요소를 제기하면 안전시스템에 적용되는 과정 자체가 부재했다. 원하청의 수직적 위계 구조 안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안전시스템을 보완해나가는 흐름이 없었다는 뜻이다.

    특조위는 “안전 조치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근본적 원인은 안전조치들이 현장 노동자들에게 통제장치로 작동했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통제는 위에서 아래로 행사되는 압력일 뿐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소통과 개선의 흐름을 봉쇄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노동자들이 사고조사와 해결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수직-하방구조에서 사고의 주범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들에게는 위험을 감수할 책임이 있지, 위험을 해결할 권한이 없다. 이것이 원-하청 구조상에서 위험의 근본적 특징“이라고 밝혔다.

    원·하청구조가 발전소의 흐름공정을 분할해 증식한 것도 문제였다. 특조위는 “2016년 당진 중대재해 등 사고발생 이후 원-하청간의 소통을 중심으로 공정과 절차가 증식됐다. 위험성평가를 위해 4단계 공정이 26단계로 늘어났다”며 “이 증가된 절차들에 따라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한 형식적 확인서들이 늘어났고, 이때 증식된 절차들은 책임의 하방 전가의 근거가 되며, 이는 ‘재해사 과실’이 원인이 되는 경로이며 동시에 결과적으로 책임의 공백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짚었다.

    연료운전은 직접고용 통한 통합운영, 경상정비는 재공영화 필요

    특조위는 발전사의 일관생산 작업방식에 비춰 봐도 연료운전은 직접고용을 통한 통합운영, 경상정비는 한전KPS로 재공영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특조위는 “과거 발전회사가 통합 운영했던 점, 현재도 발전회사가 포괄적인 지휘명령을 하면서 정보를 주고받아야만 한다는 점, 부서 간, 노동자 간 유기적 의사소통 없이는 노동자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해 발전회사가 통합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단일조직 운영을 통해 고용불안이 해소되고, 현장의 불필요한 위계 관계가 사라짐으로써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짚었다. 경상정비의 경우도 “관리의 일원화를 위해 통합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장기적으로 통합운영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조위는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전력산업의 수직 및 발전통합의 방안 고려 ▲정비 및 운전물량에 대한 인위적 민간개방을 철회해 민영화·외주화 중단하고 공기업으로 내부화 ▲산업안전보건법령의 개정·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마련 등을 권고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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