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웃고' 민주노총은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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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04일 08: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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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일, 공식적으로는 마지막으로 예정되어 있던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종결되었다. 추가적인 의견일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당초 불참의사를 밝힌 바 있던 한국노총이 참석했으며, 복수노조 허용 및 전임자임금지급금지에 대한 5년 유예안 등 새로운 수정안 및 절충안이 다양하게 제출되었다.

    외형적으로 보면, 복수노조, 전임자, 필수공익사업/직권중재/긴급조정, 근기법 3개 과제 등 포함하여 당일 논의된 대다수 사안에 대해 민주노총을 제외한 한국노총-경영계간의 의견접근은 적지 않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최대 승자는 한국노총?"

    현재까지의 결과에 대한 민주노총의 입장 정립이 관건이겠으나, 한국노총과 이제까지 불안정하게나마 유지되어오던 공조의 외형은 향후 제 갈길 가는 형식으로 바뀔 공산이 크다. 그만큼 한국노총으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교섭성과를 챙길 수 있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며, 일각에서는 이번 교섭의 최대 승자가 한국노총이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 ⓒ 매일노동뉴스
     

    지난 8월로 돌아가 보자. 대표자회의에서 다루어진 총 논의 과제 수는 당초 정부방안 33개 과제에 노사간 추가과제와 별도 논의과제 등이 더해져 총 42개 과제에 달했다. 여기서 10일과 26일 대표자회의를 통해 의견일치를 본 과제는 총 25개였다.

    이중 18개 과제는 현행유지로 결정되었고, 7개과제의 경우는 소폭의 개선안으로 정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총의 입장에서 볼 때 여기까지는 적지 않은 교섭성과라 평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부 로드맵의 전체 과제 각각이 한두 가지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의견일치를 본 25개 과제에 있어 개악저지의 수준에서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당초의 1차 교섭 목표였던 ‘민주적 노사관계 구축 8대 요구안’으로의 재편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즉, 나머지 17개 과제는 사측이 제기한 5개 과제를 제외할 경우 민주노총의 8대 요구안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복수, 전임자, 산별, 공무원, 비정규, 공공부문, 고용안정, 손배가압류)

    핵심의제 접근할수록 민주노총 주도성 떨어져

    하지만, 8월 중순 이후 논의가 핵심의제에 근접하면 할수록 발빠르게 논의를 주도한 측은 더 이상 민주노총이 아니었다. 일단, 민주노총의 입장에서 볼 때, 안팎으로 더 이상의 추가적 의견일치가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회의적 전망이 팽배해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민주노총은 8대 요구안에 대한 원론적인 확인과 일괄타결의 원칙만이 있을 뿐, 교섭상의 운신의 폭은 없었다. 물론, 이는 8대 요구안에 대해 수정없는 관철과 각각에 대해 충분한 배려를 분배해야 하는 민주노총의 입장에서는 타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공무원 논의틀이 구성되지 못하고, 산별문제 등이 논의의 중심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등 다양한 악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민주노총의 관심은 이미 교섭결렬 이후로 넘어가 있었다는 평가가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노총의 입장은 달랐다. 사실상 전임자임금지급에 배타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결국 여타 사안에 대해서는 상당한 양보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또한 정부와 경영계 역시 핵심의제에 대해 노동계의 요구안을 적절히 막아내면 되는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교섭에서 가동할 수 있는 자원의 폭은 민주노총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노총-경총간 제출된 안이 바로 ‘5년 유예안’이다.

    한국노총 ILO 철수 소동과 교섭 복귀의 이면

    추가적 유예안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최초로 이 방안이 언급된 것은 7월 하순 대표자회의 운영위에서였다. 그러나 당시 각계는 명확한 입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노총은 이후 비공식적 경로를 통해 유예안을 수용할 수 있음을 피력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노총의 입장은 지난 8.26 대표자회의때 밝힌 바와 같이 ‘전임자 자율-복수노조 금지’를 주장하되, 최소 5년 이상의 유예안을 최종 교섭안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이 논의시한 직전 ‘극적으로’ 제출된 계기가 되었던 것은 지난 8.30 ILO 총회당시의 상황이었다.

    즉, 한국노총은 8.26 대표자회의를 통해 ‘전임자 자율-복수노조 금지’로 가기 위한 사전 교섭안으로 ‘전임자는 영국식 타임오프제도, 복수는 조합원 과반수 사업장에 국한하여 허용’하는 방안 등을 제안한 바 있었다. 이에 대해 노동부장관이 8.30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노총의 교섭안을 외부 공개한 바 있는데, 이는 사실상 한국노총의 ‘전임자 자율-복수노조 금지’ 방안을 모두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결국, 한국노총의 ILO총회 철수소동은 표면상 ‘일방적 입법예고’에 대한 항의에 맞추어졌으나, 기실 한국노총의 교섭전술은 소득 없이 노동부의 반대에 부딪히고, 또한 사전 교섭안까지 외부에 공개된 것에 대한 불쾌감의 표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한국노총은 지난 1일 산별대표자회의를 통해 ‘정부의 전향적 태도변화 없이는 교섭불참’을 결정한 바 있으나, 이는 온전히 언론플레이에 지나지 않았다. 교섭불참 방침이 언론에 공개된 직후 같은 날 한국노총은 경총과 복수노조-전임자에 대한 타협을 시도했으며, 여기서 ‘5년 유예안’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2일 ‘예상을 뒤엎는(?)’ 한국노총의 대표자회의 참석은 교섭성공을 알리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었다.

    깊어가는 민주노총의 고민

    민주노총 입장에서 이러한 추가적 유예안에 대해 원론적 우려를 밝히기는 했으나, 사실상 찬성과 반대 그 어떤 것도 쉽게 결정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일단, 9월 7일 입법예고와 동시에 교섭결렬이 예상되므로 2~3일내에 가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변수가 존재한다. 먼저, 민주노총의 기본입장은 ‘전임자는 노사자율, 창구단일화 없는 복수노조 도입’이 그 원칙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정규직, FTA, 로드맵 등 노동분야 핵심사안이 모두 국회로 집중되는 11월을 총력투쟁기간으로 설정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입장에서 전임자-복수노조가 유예안으로 정리될 경우 당초 계획대로 로드맵 투쟁, 혹은 하반기 투쟁을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하는 고민이 존재한다.

    다음으로, 유예안에 대한 승인여부는 비정규투쟁 때에도 그러했듯이, 로드맵에 대한 대응이 ‘개악저지냐, 요구안 관철이냐’와 관련돼 나타날 수 있는 다소간의 혼란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의 문제와 연관된다. 이는 초기부터 존재했고 여전히 남아있다.

    일단, 추가적 유예가 향후 노사관계에 가져올 수 있는 결과에 대한 현실적 판단은 필요하리라 본다. 간략하고 건조하게 정리해보자.

    먼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규정의 유예는 절대다수의 중소사업장(2004년말 현재, 300인 이하사업장은(87.3%)에서 노조활동기반의 갑작스런 붕괴를 그나마 지연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으나, 향후 지속적으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규정이 법 개정시마다 노조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두고도고 노조 발목잡을 전임자 임금문제

    다음으로 복수노조 도입 유예를 생각해보자. 냉정히 평가하자면 복수노조의 문제는 적어도 작금의 현실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노조, 혹은 조직, 미조직 노동자 간의 시각차이가 적지 않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즉, 단위 사업장 내 충분한 조직율을 구가하고 있는 정규직 노조의 경우 복수노조의 도입에 대해서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민주노총은 모든 노동자의 보편적 결사의 자유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복수노조의 당위성을 교육하고, 각 연맹단위에서 이를 구체적인 사업계획으로까지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연맹지도부의 노력과 대사업장 중심의 현장분위기가 충분히 일치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민주노총 조합원에 대한 조사에서 창구단일화에 대한 높은 지지가 확인된 것은 이를 반증하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즉, 산별체제가 정착되기 이전에 사업장 단위에서 복수노조로 분화되는 상황은 현재의 노동운동이 감당하기에는 적지 않은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복수노조의 유예가 현실화될 경우 당초 향후 노동운동의 중심으로 부각되리라 전망되었던 비정규직 노조 혹은 중소영세사업장 노조의 조직화, 그리고 당사자주의에 입각한 노동3권의 행사가 일정부분 제한될 수밖에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현행 법제가 허용하는 대로 비정규직의 조직화는 산별노조 혹은 지역별 노조에 국한될 것이며, 단위사업장에서의 교섭권 쟁취는 5년 이후의 일로 미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리하자면, 민주노총의 입장에서 5년 유예에 대한 판단에 있어, 원칙적 측면, 하반기 투쟁계획의 측면, 그리고 실리적 측면이 모두 고려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퍽 복잡한 것은 사실이다.

    산별 교섭 문제 쟁점화 시켜내야 

    로드맵 논의가 민주노총의 8대요구안 등 핵심의제만으로 추려진 지난 8월 하순 이후의 상황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노동부는 수차례에 걸쳐 입법예고의 시기는 7일이며, 입법예고의 범위는 지난 2월 당정협의사항에 국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몇일 동안의 추가적인 변화가 없을 경우 입법예고는 지난 당정협의사항 24개 항목 중 이미 발의된 노동위원회법을 제외한 23개 과제에 국한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민주노총 8대 요구안 중 4대요구안(산별, 공무원, 비정규, 손배가압류)이 입법예고에서 제외되는 상황이며, 정부의 승인여부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전임자와 복수노조 또한 유예안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될 경우, 민주노총의 입장에서는 8대 요구안을 둘러싸고 교섭의 성과가 무엇이었는가와 관련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발생한다.

    요컨대 향후 2~3일 동안의 추가적 실무교섭을 통해 전체 로드맵 교섭을 어떻게 마무리하는가와 별도로, 민주노총의 8대 요구안에 대한 일괄 해결이라는 원칙, 그리고 이를 현장으로 대중투쟁으로 조직하는 작업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교섭이 종결되더라도 역전의 시기와 공간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지적할 것은 산별교섭 안정화에 대한 다각적이고 긴밀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복수노조와 전임자에 대한 5년 유예안이 실제로 적용되든 그렇지 않든, 다시 말해, 복수노조 허용이 2007년이든 2011년이든 지부․지회교섭을 봉쇄(즉, 창구단일화)하여 산별교섭을 무력화하고자 하는 논리(즉, 창구단일화)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복수노조․전임자 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법의 중요한 단초가 산별노조 건설 및 산별교섭 안정화에 있다는 점을 인정할 때, 현재의 국면에서 산별교섭문제를 하반기 쟁점의제로 부각시킬 수 있는가는 하반기 투쟁국면의 유지 여부를 가름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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