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두통의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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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7월 27일 09: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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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영남노동운동연구소(소장 임영일)가 발행하는 <연대와 실천> 8월호에 실린 임영일 교수(경남대, 사회학)의 권두언을 요약한 글이다.

그동안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산별전환의 성공을 위해 힘써온 임 교수는 이 글에서 산별전환 전후에 느낀 소회를 일본에 있는 한국인 연구자 “김 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밝혔다.

글 뒷부분에 임 교수는 지난 18일 한국노동연구원 주최로 산별노조 전환 이후의 노사관계를 전망하는 전문가 내부토론에 참석한 경험을 전한다. 정부와 사용자단체, 노동연구원까지도 현대자동차노조의 산별전환이 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막상 결과가 다르게 나오자 당혹스러워 한 풍경이 전해진다.

더구나 보수언론의 공세가 노동자들의 반발과 위기의식을 자극한 것 아니냐는 등의 책임공방은 이들이 한 통속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자리에서 임 교수는 “돌연 맹렬하게 두통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회사의 지원을 얻어 현대자동차 실태조사를 했고, 그 결과 60% 정도의 찬성률로 이번에도 산별전환은 부결될 것이라 예측했던 장본인”인 “한때 노동운동에 몸담았던 경력을 가진 한 논자”가 이 자리에서 한 “횡설수설” 때문이었다. <편집자 주>

김 선생님,
지난해 11월, 선생님의 주선으로 10년 만에 일본을 방문했었지요. 돌이켜보면 국제노동연구센터, 그리고 호세이(法政) 대학 오하라(大原) 연구소와 함께 한 작년 가을의 행사는 저에게도 여러 가지로 자극이 되고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오하라 연구소 행사에서 한국의 산별노조 건설운동에 대해 발표를 하면서도 사실 저 자신도 매우 긴장했었습니다.

확신 가질 수 없었던 산별전환 투표

그날 제 이야기의 요지는 크게 두 가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나는 일본의 경우와 달리 한국의 노동운동은 기업별노조 자체를 산별노조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고 2006년 상반기를 거치면서 일단 그 성과를 확인하게 될 것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이 운동의 성패 여부와 상관없이 이후 곧바로 제 2단계의 산별노조 건설운동이 전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짐작하셨듯이 2006년의 대대적인 산별 전환이 과연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그리고 기업별노조 체제를 형식이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완전히 극복하여 현장 수준에서까지 산별노조의 본질을 구현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간다고 하는 목표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저 스스로도 사실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음이 사실입니다.

김 선생님,
2006년 산별전환이 고비가 될 것이고, 성공하면 한국의 노동운동은 일 단계 전진할 수 있으며, 실패하면 한국의 노동운동 역시 깊은 좌절과 퇴행을 면치 못하리라는 생각은 저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주요 조직의 활동가들이 공유했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실패 이후 노동운동에 대한 비관주의적 전망이 ―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미 상당한 정도로 깊숙이 탈계급화되고 있는 노동운동의 본질에 대한 패배주의적 회의가 이를 계기로 현실화하는 것이겠습니다만 ― 자리 잡고 있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보수언론들의 무지막지한 악선전을 뚫고

현대자동차 노조는 40여명의 교육위원을 선출하여 겨울 동안 집중적으로 이들을 교육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여기에 기존 상집 간부들이 결합하여 4만3천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4시간 이상의 대규모 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현대자동차 노조의 요청으로 교육위원 교육, 합동간부 교육에 참여하는 것으로 시작을 한 셈입니다.

이후 상급조직으로는 금속연맹과 금속노조, 공공연맹, 병원노조협의회 등과 간담회, 교육 등이 계속 이어졌고, 화학섬유연맹의 경우에는 조사연구 사업으로 결합하여 여러 현장을 돌아 볼 기회를 만들기도 했지요. 5월까지 정말 많이 돌아다녔네요. 강원도를 제외하고는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을 맴돌아 다닌 셈입니다.

6월 초순 지나면서는 이제 산별전환 투표 준비 과정으로 들어가 현장 교육은 거의 마무리 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경련의 <한국경제신문>을 필두로 한국의 거의 모든 보수 언론들이 산별노조 전환이 임박했고, 만일 산별노조가 결성되면 한국 노사관계는 파탄이고 경제도 거덜이 날 것이라는 논조의 무지막지한 악선전을 쏟아내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지요. 핵심 사업장인 현대자동차를 놓고 치열한 계급투쟁이 전개되었다고나 해야 할까요, 여하튼 상황은 일촉즉발인 듯했습니다.

울산의 한 후배 교수가 연락을 해왔지요. 아무리 보아도 2%쯤 부족해 보인다, 연구자들이 산별노조 전환을 호소하는 성명서를 만드는 것이 어떤가 하는 제안이었습니다. 문안을 만들고 한국산업사회학회와 산업노동학회를 중심으로 서명자를 모았지요.

처음 찾아온 격렬한 두통

짧은 기간에 추진하느라 약간의 무리가 있었고 해프닝도 있었습니다만, 정부나 사용자가 아니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호소문 형식의 지식인 성명이 나온 것도 아마 초유의 일이었던 듯합니다.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말해주는 일이기는 하지요.

이즈음 저로서는 처음 겪는 격렬한 두통(頭痛)이 갑자기 찾아 왔습니다. 6월 말 산별전환 투표 결과 현대, 기아, 대우 완성차 노조들이 모두 높은 지지율로 산별전환을 이루고 두원정공, 로템 등 투표를 실시한 다수 노조들의 대대적인 산별전환이 확정되었습니다. 노동계 전반에 환호의 분위기가 넘치고, 반면 보수 언론들은 망연자실하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보고, 저는 산사(山寺)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7박 8일의 입사(入寺) 동안 묵언(黙言) 수행을 즐겼습니다. 아무 생각을 안 하기는 힘들었습니다만, 떠오르는 생각들 하나씩 벽에 버리는 훈련은 좀 했지요. 두통이 그로써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정도는 많이 덜하지만, 지금도 뒷머리 두통 진원지는 여전히 남아 있어 간간히 머리 전체로 올라옵니다.

김 선생님,
어떻든 한 고비는 넘긴 셈입니다. 선생님의 연구 주제이기도 한 한국의 산별노조 건설운동, 노동체제 전환 과정에 새 이정표가 놓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정표 다음의 길이 한 갈래는 아니지요. 어느 갈래로 방향을 잡을지 또 치열한 토론과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잠시도 쉬지 못하고 움직이고 있는 금속의 활동가들을 보면 제 두통도 핑계거리밖에는 안 되는 듯 하여 저도 이리 저리 움직이고 있습니다.

두통의 원인 확인되다

용서하신다면, 두통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가라앉았던 통증이 다시 맹렬하게 치솟았던 경험을 통해 이 두통의 원인을 확인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난 주, 관변 연구단체의 초청으로 산별노조 전환 이후의 노사관계를 토론하는 자리에 참석했던 일이 있습니다.

정부도, 경총 등의 자본가 단체도, 그리고 이 연구기관의 분석으로도 금속연맹의 산별전환, 특히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의 산별전환은 부결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고 합니다. 그들 사이에서 보수 언론의 맹렬한 반대 선전이 오히려 노동자들의 반발과 위기의식을 자극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나 봅니다.

그 깃발을 들었던 한 경제신문의 담당 편집자가 그런 질책을 듣고 자신의 의도가 그런(산별 전환을 촉진하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웃고 말았습니다. 노동자와 노동운동을 그런 정도로 만만히 바라보고 있는가, 씁쓸했지만, 약간은 고소하고 상쾌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두통은 없었습니다.

문제는 본토론 과정이었는데, 노동자들이 어떻든 산별노조로 전환해 가고 있는 실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것이 세계 노동운동의 분권화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둥, 기업별 교섭과 기업별노조가 오히려 시장주의적 세계화 추세에 적합한 측면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둥, 답답하기 짝이 없는 억지 토론이 이어졌지요.

압권은 한때 노동운동에 몸담았던 경력을 가진 한 논자의 발언이었습니다. 그는 지난 겨울 회사의 지원을 얻어 현대자동차 실태조사를 했고, 그 결과 60% 정도의 찬성률로 이번에도 산별전환은 부결될 것이라 예측했던 장본인기도 했지요.

노동자들의 세금이 또 이렇게 사라지고 있다

자신의 예측과 그에 기초한 보고가 어긋나서 화라도 난 것일까요. 그는 이 산별 전환이 결코 노동자들이 실리적 이기주의를 극복했음을 뜻하지 않는다는 둥, 지금 진행 중인 말도 안 되는 파업이 곧 그것을 말해 준다는 둥, 심지어 지도부와 회사 간에 모종의 담합이 있었을 것으로 추론할 수도 있다는 둥, 횡설수설을 계속했습니다. 더 못 참고 한 마디 하긴 했습니다만, 돌연 맹렬하게 두통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결국 먼저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지요. 기록을 담당하던 후배 연구원이 따라 나왔는데, 식사도 못하고 가서 섭섭하다며 토론비를 드려야 하니 이름, 소속, 주소, 통장번호를 적고 서명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 우리 노동자들의 세금 수백만 원이 오늘 또 이렇게 사라지고 있군요. 두통은 머리끝까지 번지고 있었습니다.

글머리가 잘 잡히지 않아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글 형식으로 두서없이 이야기를 풀어 보았습니다. 저로서는 쓰기 편한 방법을 취한 것입니다만, 선생님께는 결례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부디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조만간 다시 뵐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그곳 주위 분들에게도 안부 부탁드립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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