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바람이 되고 싶고
구름이 되고 싶다···
[풀소리의 한시산책] 고죽 최경창의 시 「증별(贈別)」 2수
    2019년 08월 14일 04: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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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일기2
– 이해인

사계절 중에
여름이 제일 좋다는
젊은 벗이여
나는 오늘 달고 맛있는
초록 수박 한 덩이
그대에게 보내며
시원한 여름을 가져 봅니다.

한창 진행중이라는
그대의 첫 사랑도
이 수박처럼
물기 많고
싱싱하고
어떤 시련 중에도
모나지 않은 둥근 힘으로
끝까지 아름다울 수 있기를
해 아래 웃으며 기도합니다.

저는 종교인의 시를 일단 제쳐놓는 습관이 있습니다. 정서에 잘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해인 수녀의 이 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바람과 이런 기도라면 저도 함께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랑받았던 기억은 사랑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합니다. 물기 많고 싱싱하고 둥그런 사랑을 주고 또 받는다면…. 어떠한 시련이 와도 모나지 않게 헤쳐 나가는 힘이 되겠죠. 수박 한 덩이 주고받으며 남은 여름 시원하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한시산책을 계절에 맞게 써왔었습니다. 이번에는 계절 대신 사랑을 주제로 써보려 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시(詩)는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 1539년(중종 34) ∼ 1583년(선조 16))의 시 「증별(贈別)」 2수입니다.

고죽 유고

고죽은 문장이 뛰어나 이이, 최립 등과 함께 8문장으로 일컬어졌습니다. 시서화(詩書畵)에 두루 뛰어났는데, 특히 격조 높은 당(唐)나라 시대의 시(詩)인 당시(唐詩) 풍 시를 잘 썼다고 합니다. 백광훈(白光勳), 이달(李達)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렸습니다. 고죽의 시를 보기 전에 꼭 봐야 할 시조가 있습니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 곧 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1)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시죠. 옛날 국어책에도 나왔던 시입니다. 최경창과 운명적인 사랑을 했던 기생 홍랑(洪娘)의 시조입니다.

최경창은 1573년(선조 6) 35세 때 북도평사(北道評事)가 되어 함경도 경성(慶城)으로 부임했습니다. 당시에 조선의 최전방은 여진족과 국경분쟁이 많던 함경도였습니다. 북도평사는 이곳 군 사령관인 함경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의 부관입니다. 최경창처럼 활을 잘 쏘는 문관(文官)이 주로 맡았습니다.

관리가 새로 부임했으니 당연히 환영 연회가 있었겠죠. 고죽과 홍랑은 연회 자리에서 운명적으로 만납니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1년 만에 끝납니다. 임기를 마친 최경창이 서울로 귀환해야했기 때문입니다. 둘의 사랑이 얼마나 애틋했는지 홍랑은 강원도와 가까운 쌍성(雙城, 영흥)까지 배웅합니다. 경성에서 쌍성까지는 천리 먼 길입니다. 천리를 왔지만 더 이상 갈 수 없습니다. 홍랑이 관기(官妓) 신분이고, 관기는 도(道) 경계를 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임을 보내고 홀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외롭고 서글펐을까요. 함흥을 지나 홍랑의 고향인 홍원(洪原)으로 넘어가는 함관령(咸關嶺)을 지나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우수에 젖은 홍랑은 임이 그리워 노래를 부릅니다. 그게 위의 묏버들로 시작하는 시조입니다. 예부터 이별할 때는 버드나무 한 가지를 꺾어 정표로 줬다고 합니다. 버들 류(柳)와 머무를 류(留)가 발음이 같아서 더 머물러 달라는 뜻이 있답니다.

버드나무

서울로 돌아온 최경창은 예조(禮曹)와 병조(兵曹)의 좌랑(佐郞)을 거쳐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이 되었습니다. 직위는 낮지만 출세가 보장된 청요직(淸要職)입니다. 그러다 이내 병이 났습니다. 이 소식은 먼 변방에 있는 홍랑에게도 전해졌습니다. 홍랑은 곧바로 길을 나섰습니다. 7일 밤낮을 걸어서 최경창을 찾아옵니다. 3년 만입니다. 비록 한 사람은 환자였으나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기쁨도 잠깐, 둘의 만남이 빌미가 되어 최경창은 탄핵을 당합니다. 아무리 병간호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중앙관청의 관리가 외방의 관비와 함께 사는 것은 법을 위반한 것입니다. 더욱이 당시는 명종(明宗)의 왕비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상중이었습니다. 결국 둘은 어쩔 수 없이 다시 헤어집니다. 이번에는 최경창이 이별노래를 부릅니다. 그것도 두 수(首)를요. 「증별(贈別)」이라는 시인데 두 번째 시부터 보겠습니다.

증별(贈別) 2

相看脉脉贈幽蘭(상간맥맥증유란)
此去天涯幾日還(차거천애기일환)
莫唱咸關舊時曲(막창함관구시곡)
至今雲雨暗靑山(지금운우암청산)

애달피 얼굴 바라보며 난초 건네주노니
하늘 끝 먼 곳으로 가면 언제 오시려나
함관령의 옛 노래 다시는 부르지 마오
지금도 구름비는 가득 청산에 머무나니

참 애절하지요. ‘유란(幽蘭)’은 ‘그윽한 난초’ 쯤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둘만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쓰이지 않았나 합니다.

공자(孔子)는 자신의 이상을 정치로 실현하고자 13년 동안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합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공자를 등용하지 않습니다. 공자는 쓸쓸하게 고국인 노나라로 귀국합니다. 귀국길에 어느 깊은 숲속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난초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어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이후 공자는 정치에 연연하지 않고 교육과 저술에 전념합니다. 논어의 첫 구절에 나오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라는 구절 또한 이러한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 고사를 ‘공곡유란(空谷幽蘭)’이라고 합니다. 위 시의 ‘유란’이라는 시어는 여기서 나왔겠지요.

함관령의 옛 노래는 말할 것도 없이 홍랑의 묏버들 시조입니다. ‘운우(雲雨)’는 ‘구름과 비’지만 남녀의 사랑을 뜻하는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말하기도 합니다. 최경창은 홍랑에게 우리의 사랑은 이미 당신이 건네 준 버드나무뿐만 아니라 숲을 덮고 있으니 ‘나를 기억해 달라’는 ‘함관령 노래’는 더 이상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럼 이제 「증별(贈別) 1」을 마저 볼까요.

증별(贈別) 1

玉頰雙啼出鳳城(옥협쌍제출봉성)
曉鸎千囀爲離情(효앵천전위리정)
羅衫寶馬汀關外(나빈보마정관외)
草色迢迢送獨行(초색초초송독행)

고운 뺨 눈물지며 왕성을 나서누나
새벽부터 꾀꼬리 이별 설워 우는데
보마에 비단적삼 냇가 관문 밖으로
푸른빛 아득히 홀로 가는 임 보내네

사헌부의 탄핵을 받은 최경창은 어쩔 수 없이 홍랑과 헤어집니다. 헤어짐이 서러워 예쁜 뺨으로 눈물이 흐르고, 꾀꼬리는 새벽부터 웁니다. 천리 먼 길 떠나보내는 임을 위해 비단 옷을 입히고 아름다운 보마에 태워 보내지만 아득히 멀어지는 홀로 가는 임은 안쓰럽기만 합니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만나나….

고죽은 6년 뒤 영원히 못 만날 것 같던 임을 다시 만납니다. 44세 되던 해에 두만강 가에 있는 종성(鍾城)의 부사(府使)로 부임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홍랑과 함께 지냈겠지요. 그러나 벼슬길이 순탄치 않아 1년 만에 한양으로 귀환하라는 명을 받습니다. 게다가 병이 나 경성(慶城) 관아(官衙) 객관(客館)에서 사망합니다.

홍랑은 고죽의 상여를 따라 파주로 옵니다. 그리고 고죽의 묘에 시묘살이를 합니다. 몇 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 온 나라가 전란에 휩싸였습니다. 홍랑은 고죽의 시 원고를 싸들고 보다 안전한 고향 함경도로 피난을 갑니다. 전란이 끝나고 나서 안전해진 다음에야 원고를 후손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현재 고죽의 명시(名詩)를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홍랑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마움 때문인지 고죽 집안에서는 홍랑을 고죽 묘 바로 밑에 묻어주어 지금도 다정히 위아래 한 곳에 묻혀 있습니다.

며칠 전 장마가 끝난 다음 아침 산책길에 보니 먼 산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안개는 일교차가 큰 가을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웃집 담 밑으로 문득 상사화 꽃대도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보라색 맥문동꽃도 피어나고 있습니다. 하늘은 높아지고 그늘은 짙어집니다. 날마다 최고 기온을 갱신하는 한 여름이지만 가을은 벌써 우리 문 앞에 와 있나 봅니다. 계절은 늘 그렇듯이 한 발 앞서 전조를 보입니다. 사랑도 그럴까요?

맥문동꽃과 매미

홍랑의 묘

끝으로 나태주 시인의 사랑시 한편을 소개하면서 한시산책을 마치려 합니다. 바람 부는 날이 아니어도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를 걸어 보세요.

전화를 걸고 있는 중

– 나태주

바람 부는 날이면
전화를 걸고 싶다
하늘 맑고 구름 높이 뜬 날이면
더욱 전화를 걸고 싶다

– 중략 –

​아마도 나는 오늘
바람이 되고 싶고
구름이 되고 싶은가보다
가볍고 가벼운 전화 음성이 되고 싶은가보다

나는 지금 자전거를 끌고
개울 길을 따라가면서
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중이다.

<각주>

1. 이 시조의 원문은 ‘묏버들 갈ᄒᆡ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ᄃᆡ/자시ᄂᆞᆫ 창밧긔 심거두고 보소서/밤비에 새닙곳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소서’이다.

필자소개
최경순
민주노총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과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에서 일했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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