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시행유예 법안 발의
    ‘주 52시간제’ 유명무실?
    심상정 “경제 위기 틈타 재계의 민원 해결에 나선 것 의구심 들어”
        2019년 08월 12일 01:56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던 ‘주52시간제’가 사실상 파기 국면에 접어들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일 일자리 축소와 범법자 양산을 이유로 주52시간제 도입을 유예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원욱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주52시간제를 사업장 규모별로 1~3년간 유예하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엔 민주당 의원 22명이 동참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은 내년부터, 5명 이상 50명 미만 사업장은 내후년 7월부터 주52시간제를 전면 도입하도록 했다. 300명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지난해 7월부터 주52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다.

    민주당이 발의한 개정안은 사업장 규모를 4단계로 나눠 주52시간제 도입을 최대 3년까지 유예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20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은 2021년, ‘100명 이상 200명 미만’ 사업장은 2022년, ‘50명 이상 100명 미만’ 사업장은 2023년, ‘4명 이상 50명 미만’ 사업장은 2024년으로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원내수석부대표는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이 유예된 지 1년 가까이 되어 가지만 일선에선 아직 혼선이 빚어지고 있고, 실제 산업계의 시장 상황과 맞지 않는 법 적용으로 정책 보완이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자리 축소와 범법자 양산 등 내년 전면 시행을 놓고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고 법안 발의의 배경을 밝혔다.

    장시간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주52시간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가장 대표적인 노동공약 중 하나다. 당초 정부여당은 주52시간제 시행 초기부터 6개월 처벌유예 규정을 두고, 특정 업종에 한해 1년 유예를 하는 등 강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유일한 정책이었던 최저임금 1만원 실현 공약 파기 선언과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놓고 ‘가짜 정규직화’라는 비판이 잇따르는 가운데, 당 지도부의 도입 유예 법안을 발의함에 따라 주52시간제 공약도 사실상 파기한 셈이 됐다.

    주52시간제 도입 유예 방침은 일본의 수출규제가 가장 큰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고용노동부 또한 소재·부품 국산화가 필요하다며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또한 주52시간제 특례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했었다. 일본의 경제보복 사태가 터지자 장시간노동 합법화라는 재계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민주당의 주52시간제 도입 유예 법안도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는 것으로 읽힌다.

    방송화면

    정의당, 주52시간제 유예 추진하는 민주당에 “파렴치한 본색 드러내”
    “국난 극복 핑계로 재벌과 대기업의 숙원 풀어주는 정부‧여당 강력 규탄”

    노동계는 물론, 일부 야당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는 이날 논평에서 “‘주52시간제’가 도입된 지 1년이 넘었고 계도기간도 3개월이나 연장했음에도 또 다시 준비 부족을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구차한 변명”이라고 지적했다.

    정책위는 “최근 일본의 경제전쟁 도발을 계기로 정부‧여당은 여러 차례 노동시간 유연화 입장을 밝혀온 바 있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여당의 몰지각한 행태이자, 국난 극복을 핑계로 노동자를 제물로 삼으려는 것”이라며 “일본과의 경제전쟁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고자 했던 지난 7월 민주연구원 보고서의 파렴치한 본색을 다시 드러낸 것”이라고 질타했다.

    더 나아가 “그런 짓은 전쟁을 위해 우리 민족을 일본의 민간기업에 강제 동원시켰던 일본의 군국주의 행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온 국민의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국에 자기 잇속만 채우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치졸한 이적행위”이라며 “국난을 기회로 삼아 재벌과 대기업의 숙원을 풀어주려는 정부‧여당을 강력히 규탄하며, 노동자를 희생시키려는 모든 계획을 당장 멈출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오전 상무위 회의에서 “주52시간제는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과로사 공화국’에서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바꾸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다”며 “그런데 납득할 만한 설명도 사과도 없이 공약을 파기하는 것을 보면 경제 위기를 틈타 재계의 민원 해결에 나선 것뿐이라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환위기 때 노동자들에게 고통분담을 들이밀며 모든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했던 과거가 떠오른다”며 “참으로 유감스럽다”고 했다.

    심 대표는 “2004년 주52시간제가 주말 노동을 포함하면 68시간까지 가능하다는 희한한 논리로 무력화된 바 있다. 이를 정상화하자는 합의에 이르는 데 무려 15년이 걸렸다”며 “그런데 이를 또 미루자는 것이 이번 민주당의 법안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선진국의 기준이라는 ‘3050클럽’에 들어가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준비가 부족하고 여전히 시기상조라면 우리 노동자와 시민들은 도대체 언제 선진국과 같은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여당에 법안 철회를 강력히 촉구했다.

    민주노총도 지난 6일 낸 논평에서 “주 최대 52시간 노동 제한은 구시대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에 더는 기대지 말고 우리 경제규모와 수준에 걸맞은 노동과 경제 체제를 만들자는 사회적 합의였다”며 “일본 무역규제를 핑계 삼아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노동자 안전을 팔아 얻을 수 있는 것은 재벌의 값싼 환심뿐”이라고 지적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