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대문교회,
    남문밖정신 구현하는 교회
    [그림 한국교회] '제중원'에서 시작
        2019년 08월 08일 05: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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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 연재코너 링크 

    대학시절에 본 영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고향을 떠나 무작정 상경한 영자의 눈에 보인 석조예배당의 첨탑 십자가는 서울역 정면에 서 있는 남대문교회였습니다.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생이별이 많던 시절, 이 교회는 “경성역 앞 남문밖교회에서 만나자.”고 했던 가슴 아픈 약속장소였습니다. 지금은 서울스퀘어 등 고층빌딩 숲에 가려져 찾기도 힘들지만, 남대문 밖으로 밀려난 가난한 이들을 섬기려고 애쓴 교회입니다.

    한국에 두 부류의 목회자들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과 대형교회를 꿈꾸는 목회자들! 그만큼 대형교회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몇몇 대형교회의 폐해는 갈수록 심각합니다. 지금도 존경을 받고 있는 임택진 목사님(1916-2007)은 총회장을 지내셨지만, 청량리중앙교회에서 바르게 목회하시며 소박하고 검소하게 사셨던 진정한 지도자여서 목회자의 귀감이셨습니다.

    2001년 1월, 제가 소장으로 사역하던 ‘한민족선교정책연구소’에서 고문으로 위촉한 임 목사님과 홍성현 목사님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임 목사님은 총회장 시절을 돌이켜볼 때 가장 후회스런 일은 ‘교인상한제’를 만들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인이 일정수(예, 3천명이나 5천명)가 넘으면 분가해야 한다는 법을 만들고자 하셨던 혜안이, 대형교회의 불법행태가 한국교회를 나락으로 밀어 넣는 현실에서 더욱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남대문교회는 대형교회를 꿈꾸지 않고, 빈민들이 살았고 매매춘도 이루어지던 양동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970년대 강남 개발이 한창일 때 내부에서 교회 이전이 거론되었고, 1980년대에는 어느 재벌이 강남 이전을 권했을 때, 목회자들이 ‘남문밖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하고 중심을 잡았다고 합니다.

    이 남문밖정신에 대해서는 <남대문교회 소개서>에 나와 있습니다. 1890년 7월 무더운 여름, 선교사 가족들이 남한산성으로 피서휴가를 떠났을 때, 헤론(John W. Heron) 선교사는 전염병환자를 치료하다가 이질에 걸려 34세의 이른 나이에 별세한 사건을 전합니다. 휴가도 가지 않고 남문밖의 가난한 백성을 온몸으로 돌본 헌신은 ‘남문밖정신’으로 이는 성문밖에서 전인구원을 실천하신 예수님 사역의 재현이었습니다. 이 남문밖정신으로 1997년 IMF 사태 직후, 서울역 근처에 쏟아진 노숙인들에게 하루 4,000-5,000인분의 무료급식을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때에, 최종원 교수가 펴낸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비아도르, 2019)에서, 스스로 낮추어 공공선을 추구한 남대문교회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근대세계의 도전 앞에 반동적인 모습을 보였던 제1차 바티칸공의회 당시의 가톨릭과 오늘 대형교회의 모습이 유사하다면, 대형교회도 결국 가톨릭교회가 걸어갔던 길과 다르지 않은 길을 갈 것이라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굳이 신령한 예언이 필요치 않다. 역사를 조금만 반추해 보아도 답은 명확하다. 더불어 가톨릭이 맞닥뜨린 위기의 순간에 극적으로 그들을 구원해준 것은 교리가 아니었음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스스로 낮춰 세상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적응하고 세상의 공공선을 찾아가는 노력이 그들을 구원했다.”( 161쪽)

    미국공사관 소속의사 알렌(Horace Newton Allen) 선교사가 세운 ‘제중원’이 남대문교회 뿌리입니다. 1884년 9월 20일, 한국에 도착한 그는 갑신정변 때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던 명성왕후의 조카 민영익을 완쾌시킨 공에 힘입어 왕실의사 겸 고종의 정치고문이 된 덕에,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을 설립할 수 있었고(1885.4.9), 1885년 6월부터 병원에서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1887년 11월 21일부터 공식적으로 ‘제중원교회’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시작한 것을 ‘남대문교회’의 창립으로 여깁니다.

    처음에는 구리개(현 을지로 1가)에 있다가 1904년 남대문밖 복숭아골(현 세브란스빌딩 지역)로 이전하여 교회명을 남문밖교회로 바꾸었고, 1912년에 초대 담임목사로 박정찬 목사가 부임하여 유흥렬 장로와 에비슨 협동장로와 함께 당회를 조직합니다. 1919년에는 3·1만세운동에서 집사 이갑성, 조사 함태영 등이 적극 참여하여 3년 이상의 옥고를 치렀는데, 특히 이갑성 집사는 청년대표로 민족대표 33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924년, 제3대 목사로 취임한 김익두 목사는 유명한 부흥사로서 교회 발전에 기여했지만 이단시비로 물의를 빚기도 합니다. 1934년에 부임한 김영주 목사는 ‘창세기 모세 저작설 부인사건’을 일으켜 총회에서 이단 여부를 조사받기도 하였으나, 일제강점기 말기에 교회가 신사참배를 하고 총독부 지시로 어용적인 조선혁신교단이 설립되자, 한국교회의 위기를 감지하고 혁신교단의 의장인 전필순 목사의 제명을 요구하는 등 강력히 저항하였습니다.

    1944년, 김치선 목사가 부임하여 ‘삼백만 부흥운동’을 전개하였고, 현 대한신학교의 전신인 야간신학원도 설립했습니다. 6·25전쟁 때에는 교회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수복 후 재건하였는데, 당시 집사이던 박태선의 신앙노선에 문제가 제기되어 이단 시비를 불러일으켰고 결국 신앙촌으로 상징되는 박태선 천부교가 세워졌습니다. 1954년, 미국에서 독립운동과 한인교회활동을 벌이던 김태묵 목사가 부임하여 교회당 건축에 힘을 기울였고, 1957년부터 배명준 목사가 부임하여 교회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1972년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으로 에큐메니칼운동에 헌신하였습니다.

    그후 분열의 아픔도 겪지만 조유택 목사에 이어 현 손윤탁 목사에 이르기까지 13명의 한국인 목사들이 이끌어 온 남대문교회는 대형화를 추구하지 않고 교회개척에 심혈을 기울여 공덕·행화정·삼판통·청량리중앙교회·해방촌교회, 맹인교회인 애능중앙교회 등 26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전 세계 40여국의 선교사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림=이근복

    빌딩숲 사이로 보이는 석조예배당은 오른쪽 숲과 어울려 참 우아합니다. 1955년 영락교회를 설계한 건축가 박동진에 의해 고딕양식으로 건축이 시작되어 14년 만에 준공합니다. 네 번째 예배당을 위해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 입은 여집사들이 망태기로 자재를 날랐고, “예배당을 지으면서 빚지면 안 된다.”는 배명준 목사의 뜻에 장로와 교인들이 호응하여 마침내 완성하였습니다.

    남대문교회는 1950년대 석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아름다운 외관과 장방형의 단순한 내부 평면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어서 보존가치가 높은 서울미래유산입니다. 총회 청년운동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왕보현 장로가 제공한 사진을 가지고 교회를 그리다보니, 외벽의 화강암 모양이 다양하여 다소 애를 먹었지만 그릴수록 수려한 건축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신일중고 시절, 교목이셨던 남대문교회의 조유택 원로목사님은 교회 창립 120주년이던 2007년,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대문교회는 한국 현대사의 증인이라고 할 만 합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부흥과 변화 또한 지켜본 교회기도 하지요. 그리고 물론 한국 기독교의 뿌리교회라는 측면에서 앞으로 ‘교회의 역할’을 제시할 책임도 있고요.(중략) 저 역시 한국교회가 변화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변화란 이젠 교회가 ‘성장’이 아닌 ‘성숙’이라는 방향을 잡아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2010년 3월에 부임한 손윤탁 담임목사는 작년에 『교회다운 교회』(예영커뮤니케이션, 2018) 출간했습니다. 며칠 전 방문 때 받은 이 책을 읽어보니,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이 회복해야 할 과제가 잘 담겨있었습니다. 전임자와 후임자의 이런 입장은 계속 남문밖정신을 구현하는 남대문교회로 나아가는데 밑거름이 될 것입니

    필자소개
    이근복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역임.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교회활력화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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