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정치의 블랙홀 된
    한일 갈등 이슈와 정의당
    [기자수첩] 불편한 대변인 브리핑
        2019년 08월 07일 08: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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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의 최대이슈다. 일본의 수출규제 등 경제보복 조치는 모든 이슈를 집어 삼키고 있다. 정치권 역시 마찬가지다. 여야는 둘로 갈라져 매일같이 서로에게 침을 튀기며 친일 공방을 벌이며 비난을 퍼붓는다.

    그 와중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한국 경제를 뒤흔들 만한 일본의 경제보복을 ‘한일전’에 비유하며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에 열중하는 한편, 한일 갈등이 총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한가한 일을 벌이고 있다. 집권여당에서 현 사태를 돌파할 만한 아이디어가 나온 적은 없다.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 경제보복에 나선 일본에 대한 비판보단, 정부의 대응에 칼질하기 바쁘다. 한국과 일본의 갈등마저도 정부의 대북친화정책 탓으로 몰아세우며,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경제위기를 앞세워 장시간 노동과 안전 관련 규제 완화 등 재계의 숙원과제를 대신 해결해고자 앞장서고 있다.

    현재의 한일 문제와는 거의 무관해 보이는 친일 논쟁까지 벌어진다. 상대 당에 친일 후손이 더 많다는 등의 ‘초딩 화법’까지 등장했다. 거대양당이 중심이 된 국회 안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 꼴사나운 모습이다.

    합리적인 비판과 대책이 오가는 국회를 바란다.

    심상정 대표가 가장 먼저 제안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검토’는 협정 파기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많은 국민들이 해당 협정의 문제점을 환기할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부가 재계와 자유한국당의 요구를 받아 안고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하고 화학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며 노동자와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세력도 원내정당 중엔 정의당이 유일하다. 정치개혁을 외쳤던 소수정당이 양당의 영양가 없는 패권 싸움 가운데서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의당의 일부 논평 내용은 양당의 패권싸움에 뒤섞여 난데없는 친일 논쟁에 뛰어든 모습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은 완전히 일본에 투항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위에서 ‘우리 일본’이 7월에 수출 규제를 실시한 뒤, 정부에서는 추경 탓과 지소미아 파기로만 대응했다고 비난했다. 지금 시국에서 자유한국당의 주적은 청와대가 된 것이다.…(중략)…특히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을 통해, 자유한국당의 동맹은 ‘우리 일본’이라는 점이 명확해졌다. 아베 총리가 미소짓고, 일본 극우세력들이 신나게 퍼다 나를 만한 이야기다.…(중략)…자유한국당이 계속 국민 뜻을 거스른다면, 국회를 떠나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와 함께 일본으로 가길 바란다” (7일 정의당 대변인 국회 브리핑 ‘자유한국당 주적은 청와대인가’)

    ‘우리 일본’이라는 표현을 가장 큰 문제라고 본 것 같다. 정의당 대변인의 이런 문제제기가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식사 중에 일본 술인 사케를 마셨다는 이유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민주당을 비난하는 것과 어떤 지점에서 다른지 모르겠다. ‘우리’라는 표현이 애정이 있는 대상을 언급할 때 종종 따라 붙는 말이기는 하지만, 의미 없이 사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도 이날 낸 입장문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쓴 ‘우리’라는 표현에 대해 “의미 없이 때로는 연결어처럼 덧붙여진 것”이라며 “‘말버릇’이자 단순한 ‘습관’”이라고 해명했다. 일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은 때에 나온 논란이라 이런 해명까지 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친일주의자이건 친미주의자이건 나 원내대표의 정체성 문제가 현 시국을 돌파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우리 일본’이란 표현에 이렇게 노발대발하며 당 대변인이 브리핑까지 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해당 브리핑이 말꼬투리 잡아 상황을 더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 거대양당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자유한국당의 주적은 청와대”라는 발언에서 비춰 봤을 때, 정의당 대변인은 나 원내대표의 정부의 정책 비판도 적절치 못하다고 본 것 같다. “7월에 수출 규제를 실시한 뒤, 정부에서는 추경 탓과 지소미아 파기로만 대응했다”는 나 원내대표의 주장을 ‘비판’이 아닌 ‘비난’이라고 표현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간 정부와 집권여당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정부에서는 추경 탓과 지소미아 파기로만 대응했다”는 나 원내대표의 발언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대법원 판결 이후 다가올 위기를 몰랐을 리 없다는 것이 중론이고, 그럼에도 사전 대책은 없었다는 것은 비판을 받을 만한 일이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본격화된 후에도 집권여당은 ‘한일전’ 운운하며 추경에 동의하지 않는 자유한국당 탓만 해온 것이 사실이고, 정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에 대해 하루 만에 입장 번복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치단결해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야 할 때에 정부 탓해서 뭐하냐는 말이 나올 수 있지만, 정부의 실책을 비판하는 것에 “자유한국당의 주적은 청와대”라는 비난은 과연 정당한지 의문이다. 물론 그가 청와대나 민주당 대변인이었다면 이런 논평을 낼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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