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법에 명시된 건강보험 국고지원금 미납 등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그 부담이 모두 국민에게 돌아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는 생색만 내고 책임은 국민에게 전가하는 행태는 용납될 수 없다”며 “건강보험 재정 20%에 대한 국가책임을 준수하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국민건강보험노조는 7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 ‘건강보험 재정 국가책임 정상화 및 확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한 건강보험 국가책임 정상화”를 촉구했다.

사진=보건의료노조

지난 정권에서 흑자를 달렸던 건보 재정이 지난해 적자로 돌아섰다. 보장성 강화를 위한 문재인 케어의 시행 이후 지출이 늘어난 점도 있지만,노동·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건보 재정에 대한 국가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 재정 악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정부는 건보 재정 20%에 대한 국가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정부가 건강보험에 지급하지 않고 있는 국고지원금은 최근 13년간(2007년~2019년) 24조 5374억원에 이른다. 2007년부터 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에 따라 해당연도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에 상당하는 금액(14%는 국고지원, 6%는 담배부담금으로 조성된 건강증진기금)을 지원해야 하지만 이를 계속 미납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단체들은 “2007년부터 2019년까지 국민이 부담한 건강보험료의 20%에 해당하는 100조1,435억원을 지원해야 하지만 정부가 낸 국고지원금은 75조6,062억원로, 평균 15.3%”라고 짚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건보 재정의 국고지원은 크게 줄었다. 이명박 정부 16.4%, 박근혜 정부 15.3%였으나, 건보 보장성 강화를 공약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오히려 13.4%에 그쳤다.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보험 방식의 건강보험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의 국고지원 비중과 비교해도 우리 정부의 지원율은 한참 떨어진다. 네덜란드 55.0%, 프랑스 52.2%, 일본 38.8%, 벨기에 33.7%, 대만 22.9% 등 높은 비중으로 건강보험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의 국고지원금 미납이 국민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3년간 정부가 25조에 달하는 국고지원금을 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12년(2007년~2018년)간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들이 추가 납부한 연말정산 건강보험료는 약 21조 2000억 원이다.

이 단체들은 “정부는 국고부담금을 미납한 상황에서 가입자인 국민만 법적 책임을 다한 것”이라며 “정부에서 미지급한 국고지원금은 2018년 전 국민이 납부한 건강보험료(53조8,965억원)의 46% 수준이며, 이는 전 국민이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약 6개월 치의 건강보험료”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보장성을 늘리겠다는 욕심만 있고 규정을 준수하지도 않으면서, 그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고 국민의 동의도 없이 보험료를 인상하여 재정을 충당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노인 인구의 증가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상황에서 향후 의료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여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재정안정 지원방안이 제도적으로 정착돼야 한다”며 “사회안전망의 주축인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와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단체들은 ▲올해 미지급한 건강보험 국고지원금 3조7,031억원 즉각 지급 등 건강보험재정 20%에 대한 국가책임 준수 ▲국가지원 확대와 항구적 재정지원 법제화 ▲안정적인 국가지원을 기반으로 보장률 확대 등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