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는 떠들어라, 우리는 삽질한다"
        2008년 01월 29일 12: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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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년간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 가운데 하나였던 경부운하가 결국 특별법 제정을 통해 공사가 강행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병박 정부 인수위원회에서는 최근 대운하 공사를 위해 상반기 중으로 특별법으로 제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운하 관련 특별법 제정이 논란이 되면서 이에 대한 다양한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사실 일각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사업 계획부터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은 메모 수준의 정책에 대해 특별법 제정부터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일종의 희극이라 할 수 있다.

       
      ▲대운하 예정 지역에서 설명을 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사진=뉴시스)
     

    환경영향평가와 대운하

    이와 관련하여 25일 환경영향평가제도를 연구하고 수행하는 전문가 집단이라 할 수 있는 한국환경영향평가학회(회장 이종호 청주대 교수)는 25일 대운하 공사와 관련한 특별법 제정과 조속한 사업 추진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환경영향평가학회는 “대운하관련 특볍법 제정으로 대운하 사업을 조급하게 진행하지 않도록 촉구하며, 과학적 전문성을 토대로 정확하고 공정하게 절차에 따라 사전환경성검토와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할 것을 촉구하였다.

    사실 환경영향평가학회의 입장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지는 모를 일이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의 모습은 말 그대로 ‘너희가 떠들어도 우리는 삽질한다’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적인 절차와 규정에 따라 원칙대로 진행하게 될 경우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는 삽질조차 할 가능성이 극히 낮은 사업에 대해 법과 원칙을 준수하여 절차대로 시행하라는 것은 정책 추진을 그만두라는 말과 동일하기에, 인수위원회로서는 귀를 닫고 싶을 것이다.

    환경영향평가학회의 입장도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지금은 경부운하를 비롯한 대운하 사업 혹은 개발사업과 관련하여 종종 등장하는 특별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환경권과 특별법

    1970년대 이후 세계 각국은 헌법에 환경권을 명문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경우 환경권은 1980년 10월 27일 시행된 제8차 개정헌법 제33조에서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라고 하여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로 명문화하였고, 1987년 12월 29일 제9차 개정헌번 제35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구체화하였다.

    이러한 헌법상 규정된 환경권을 실질적인 권리로 만들기 위해 개별화된 구체적인 환경법률이 필요하며, 이에 따라 환경정책기본법, 환경영향평가법, 대기환경보전법 및 수질환경보전법 등의 제・개정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와 관련하여 참여정부 시기의 환경관련 법률의 제・개정을 살펴보면, 2007년 8월까지 환경부 소관 법률로 총 39여개의 주요한 법률이 제개정 되었다. 이러한 환경법률의 제개정 이외에 참여정부 시기의 환경법 관련된 변화의 특징은 특별법의 난립이라 할 수 있다.

    참여정부 이후 지역 개발과 관련된 다수의 특별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으며, 익히 알다시피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지역 개발 혹은 지역 기반 특정 사업과 관련된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시도가 붐을 이루었다.

    참여정부 이전 시기의 정부에서 특정 지역의 개발 혹은 특정 지역 사업의 추진을 목적으로 제정된 특별법은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1996년 제정), 즉 강원랜드 개발 사업과 관련된 특별법이 거의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참여정부 시기에는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 특례법, 기업도시개발 특별법,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 신행정수도 후속 대책을 위한 연기 공주 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연안권개발 특별법, 새만금종합개발 특별법이 제정됐다.

       
      ▲대통령직 인수위 건물 앞에서 ‘대운하 TF 해체 등’을 촉구하는 시민환경 단체 인사들.(사진=뉴시스)
     

    또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특별법, 제주도 특별법, 주한미군 공여 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 서남권등낙후지역발전 및 투자촉진 특별법안, F1 국제자동차경주대회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 충청권 발전 특별법, 경주 역사 문화도시 특별법, 군부대 이전 지역 개발 특별법, 아시안 게임 지원 특별법, 동계 올림픽 지원 특별법, 사비 역사 도시 지원 특별법, 전주 전통 문화 도시 특별법, 과천 지원 특별법, 태권도 공원 특별법 등 특정 지역 개발 및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여러 법안의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사실 특별법은 일반법 중에서 특수한 사항을 골라내어 특별히 다루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제한된 사람, 사물, 행위 지역에 국한해 적용하며 대상과 범위 및 시한도 한정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제정을 추진 중에 있는 개발 특별 법안이 이런 일반적인 의미에 부합하는가를 판단해야만 한다.

    또한 특별법 자체가 경향적으로 강화되어가는 환경법규와 달리 사실상 환경규제의 완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퇴행적 입법이라 할 수 있다.

    대운하 사업과 관련하여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타당성조차 검토되지 않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는 차원의 문제를 넘어, 지역 보전을 위한 기존 특별법 상호간의 충돌 문제점도 발생한다. 우선 특별법 성격을 뛰고 있는 ‘백두대간보호에 관한 법률’뿐만이 아니라 ‘낙동강수계물관리 및 주민지원등에 관한 법률’ 등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상수원 보호에 관한 법률은 특별법 성격을 띠면서 한강 및 낙동강 등 국민의 식수원을 보전하기 위한 다양한 규제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진행되는 작은 규모의 사업이라 하여도 국민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전 규제 차원의 정책수단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운하 특별법은 이러한 지역에서 식수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삽질을 정당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사실 최근에 제정되는 특별법들은 사실 대부분 ‘낙후된 지역 발전’, ‘국가 균형 발전’, ‘국제 관광도시’ 등 화려한 명분과 수식어로 대단한 목적과 의미를 내포한 것처럼 포장된다. 최근 제정된 ‘연안발전 특별법’과 ‘새만금종합개발 특별법’에서 볼 수 있듯이 거의 맹목성에 가까울 정도의 개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법들은 우리나라 전 국토의 50%를 차지하는 지역을 특수한 목적 사업의 범위로 규정하고 있거나, 시간적으로 향후 20~30년 이후에나 개발 가능한 지역에 대해 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 간 개발경쟁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전 국토가 개발 경쟁과 과열로 갈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개발 특별법은 대부분 인허가 등 의제처리 사항의 적용 범위, 기반시설 비용 부담, 각종 조세와 부담금 감면 혜택 등 대부분의 내용들이 ‘국토 균형발전’의 명분 아래 추진된 기존의 법안들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우선, 예산의 안정적인 확보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이 있다. 다음으로 절차와 법규의 생략이다. 개발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는 이를 가로막고 있거나 혹시라도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법적 장치들을 특별법을 통해 무력화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수용되어야 할 법적 장치들이 특별법에는 적용받지 아니한다. 이러한 상황은 매우 이례적이고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적용되어야 하고 부분적이고 국지적이어야만 하지만, 급속도로 일반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법 정신은 무력화되고, 법 취지는 무색해지고 있다.

    기업이 아닌 국민이 감당해야 피해

       
      ▲사진=뉴시스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일반적인 환경정책도 경향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불충분한 요소를 갖고 있지만 국가의 환경정책은 해가 갈수록 그 비중이 높아져 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러나 개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이런 정책 자체가 통째로 무력화되고 있다.

    개발 특별법들이 이러한 환경제도의 강화를 피해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사전환경성 검토 등을 포함한 주요 규제법에 대한 의제처리를 통해 손쉽게 개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일환이기 때문이다.

    이는 개별 특별법을 통한 우선권과 특수지위의 보장 차원을 넘어서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특별법에 따라 사업자체의 타당성과 정당성뿐만 아니라 경제성의 측면에서도 계획의 충분한 검토를 사전에 봉쇄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관련 법규의 철저한 검증 없이 추진되는 개발 사업들은 그만큼의 부실성을 면키 어렵다.

    또한 환경오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예측된다. 막대한 국고지원(세금)으로 진행되는 사업이 부실하고, 결국에는 환경적인 피해로 돌아온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환경오염에 대한 기업의 책임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최근 해상국립공원지역에서 태안 유류오염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자연생태계는 인간의 행위에 극히 취약하며, 복구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행위자는 법과 제도에 의해 규정된 아주 적은 피해비용을 감당할 가능성이 높으며, 피해의 대부분은 항구적인 기간 동안 지역주민과 국민이 감당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대운하 특별법, 신개발독재의 시대

    대운하 사업은 정책적 차원에서 보면 아직 메모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업이 한창 추진되고 있다거나 혹은 계획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가 되고 검증된 것이 아니다. 정책 제안 수준의 논의 과정에서 특별법 제정이 추진되는 것이며,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은 정책에 대해 특별법 제정부터 하겠다는 것은 개발독재 시대라 평가되는 박정희 시대에나 가능하였던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과정이었던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는 이제 ‘효율성을 앞세운 일 잘하는 정부’라는 이름 앞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참여정부 하에서 고개 들기 시작한 신개발주의(신자유주의와 개발주의 결합)가 본격적인 정치세력화를 넘어 사회전반에 대한 ’신개발주의의 패권화‘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신개발독재‘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생태적 민주사회로의 이행을 가로막는 역사의 퇴행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조명래. 2008)”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든 아니든 이제 경부운하 등 대운하라는 유령과 생태환경진영의 대립은 본격화되고 있다. 국민의 식수원이자 국토 자연생태의 중요한 지역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이 맹목적적인 사업을 그대로 허용하게 될 경우, 우리는 향후 어디에서도 자연생태계 보전과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기 힘들 것이다.

    국민의 환경권과 각종 환경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규제가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중요한 지역조차 기업과 건설자본을 이윤을 보장하기 위한 개발계획이 허용된다면, 전국 어느 곳도 보전지역으로 온전히 남아날 수 없다.

    그렇기에 개발독재라는 낡은 패러다임과의 힘겨운 투쟁에 나서, 또다시 풍찬노숙의 길을 나서야 하는 전국 시민사회와 환경운동진영의 어깨가 무거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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