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LO 협약 핑계 노동 개악,
    국제노동계 등 강한 우려
    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도 입장 “심각한 우려···정부안 수정보완해야”
        2019년 08월 01일 10: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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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단체행동권 강화 등 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이유로 노동법 개악에 나선 것에 대해 국제 노동계도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1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부터 2일까지 피지 난디에서 진행하는 국제노총 아태지역본부(ITUC-AP) 17차 일반이사회는 “대한민국의 법 개악 없는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아태지역본부는 국제노총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조직으로 2007년 9월 결성됐다. 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의 34개 국가 및 지역에 59개의 노총이 가입한 2천 3백만 명의 조합원을 대표하는 조직이다.

    아태지역본부는 결의문에서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의 대가로 단체교섭권과 파업권 행사에 추가적인 제약을 가하라는 사용자단체의 용납할 수 없는 요구를 반영하여 비준절차와 병행해 현행법 개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는 사실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전날인 31일 정부는 미비준 ILO 핵심협약 4개 중 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87호와 98호, 강제노동 금지 관련 29호에 대한 비준과 동시에,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겠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실업자·해고자 노조 가입 인정, 사용자의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규정 삭제와 제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사업장 점거금지, 단체협약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등을 골자로 한다.

    이 가운데 사업장 점거 금지와 단협 연장은 재계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사실상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크게 제약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태지역본부는 사업장 점거 금지와 단협 연장이 관련 법 개정 내용에 포함된 것에 대해 ILO 헌장에 명시된 ‘역진 금지 원칙’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아태지역본부는 “한국 정부가 ILO 미비준 핵심협약을 온전히 비준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완료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동시에 ILO 헌장 19조 8항에 명시된 ‘역진 금지 원칙’을 상기하며 노조 할 권리를 침해하는 추가적인 제약을 가하는 법개정안을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를 향해서도 “조건 없이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한다”며 “노조법 개정은 현행법 개악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되고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의 권고를 바탕으로 협약을 온전히 이행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양대노총 역시 법 개악 없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한 바 있다.

    국제노총 아태지역본부(ITUC-AP) 17차 일반이사회(사진=민주노총)

    노동계 뿐 아니라 정치권 내에서도 정부의 관련 법 개정안이 “개악안”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특히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정부 개정안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함께 “온전하고 제대로 된 핵심협약 비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는 31일 ‘누구를 위한 ILO 협약 비준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고용노동부의 발표를 살펴보면, 과연 이 정부가 진정 협약 비준을 위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 심지어 핵심협약의 목적을 정확히 파악하고는 있는 것인지 심각한 우려를 감출 수 없다”고 질타했다.

    노동위는 단협 연장과 사업장 점거 금지에 관해 “노동조합의 정당한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며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그대로 반영한 조항이며, 당연히 ILO 핵심협약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조의 조합원과 임원 자격 제안, 노조 전임자 활동 및 근로시간면제한도 법적 규정 등과 관련해선 “오히려 노사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여지가 다분하고 노조법을 되레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짚었다.

    노동위는 “여·야 동의를 염두에 두고 미리 마사지 한 입법안과 사용자에 대한 보상으로 넣은 듯한 기본협약과 관계없는 일부 항목 등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며 “우리 당은 노동계의 우려를 겸허히 받아들여 정부의 입법안을 수정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최저임금을 비롯한 노동정책의 후퇴로 노동계의 민심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ILO 핵심협약으로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다시 기로에 섰다.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현명한 접근이 필요한 엄중한 시점”이라며 “노동존중을 내세우는 우리 당이 적극적으로 나서 단순히 비준만을 위한 협약이 아닌 국제기준에 맞는 온전하고 제대로 된 핵심협약 비준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당도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1일 오전 상무위 회의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선다며 재계의 숙원이던 규제 완화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나, ILO 비준에 조건을 붙여 협약의 취지 자체를 누더기로 만드는 걸 보면 이 정부가 누구의 편이고, 어느 길로 가고자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진즉에 비준했어야 할 국제협약을 국제적 망신을 당한 후에야 허겁지겁 추진하게 된 점 매우 유감”이라며 “더구나 내용을 보니 심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ILO 핵심협약은 모든 노동자가 누려야 할 가장 보편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며 “그런데 정부는 이를 마치 조정 가능한 사안처럼 경사노위에 공을 떠넘기면서 오히려 갈등만 커지고 시간만 지체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심 대표는 당초 공익위원안에 포함됐던 특수고용노동자의 단결권 보장과 노조설립신고제 폐지가 이번 정부 법 개정안엔 포함되지 않은 점에 대해 “이는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핵심적인 조치여서 알맹이가 빠진 것이나 다름없다”며 “법안 심사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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