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고 점점 자라난다
    [그림책 이야기] 「삶」(신시아 라일런트 글. 브랜던 웬젤 그림/ 북극곰)
        2019년 07월 29일 02: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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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밖에 출생

    저는 삼형제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형들이 저보다 여섯 살과 일곱 살이 더 많았습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전혀 계획에 없던 아이가 저였습니다. 다행이 부모님 주변에서 저를 분명히 딸이라고 오해하고 격려해주신 분들 덕분에 저는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아들을 갖게 된 부모님은 꽤 상심이 크셨다고 합니다. 제 위의 형들이 꽤나 장난꾸러기였던 모양입니다. 그때 이웃에 딸들만 있고 아들이 없는 분들이 계셨답니다. 그 분들은 제 부모님의 사정을 알고 저를 입양하길 원했고 흔쾌히 부모님은 저를 그 댁에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형들이 동생 찾아내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안 그래도 자식을 남의 집에 보내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부모님은 그 분들에게 다시 사정을 말씀드리고 일주일 만에 저를 데려왔다고 합니다.

    삶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코끼리도 태어날 때는 아주 작습니다./
    그리고 점점 자라납니다./햇빛을 받으며/달빛을 받으며/모두모두 자라납니다.

    동물들에게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지 물어볼까요?/매는 하늘이라고 할 겁니다./
    낙타는 모래라고 하겠지요./뱀은 풀이라며 쉭쉭거릴 겁니다./거북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지 모릅니다./수백 년을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보았거든요./하지만 거북이도 삶을 사랑합니다./등에 쏟아지는 소나기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산다는 게 늘 쉽지는 않습니다./가끔은 길을 잃기도 하지요./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간도/언젠가는 지나갑니다./그리고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이것만은 꼭 기억하세요./세상에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주 많다는 것과/
    누군가는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삶에서 아름다운 것이 모두 사라진 것 같을 때에도/잊지 마세요,/들에 사는 토끼와/산책길에 마주치는 사슴이 있다는 걸요./집으로 돌아가는 늑대와/기러기도요.

    동물들은 삶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모든 삶은 변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매일 아침/부푼 마음으로 눈을 뜨세요./
    삶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지만/점점 자라날 테니까요.

    -신시아 라일란트 「삶」 전문

    그림책 「삶」은 브랜던 웬젤의 예술

    그림책 「삶」은 신시아 라일란트의 시를 브랜던 웬젤이 그림책으로 만든 것입니다. 위에 신시아 라일란트의 시 전문을 옮겨 적었습니다. 시를 옮겨 적다가, 적다가… 제가 울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시를 읽다가 눈물을 훔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사실 이 그림책은 신시아 라일란트의 시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감동을 줍니다.

    그런데 그림을 보는 순간, 또 다른 감동이 밀려옵니다. 저는 이 책을 프랑크푸르트의 서점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미국 작가들의 그림책을 독일의 한 서점에서 독일어판으로 처음 발견한 것입니다. 표지를 보는 순간 저는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누가 쓰고 누가 그린 건지 살펴볼 틈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냥 이 그림책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달려갔습니다. 사실 그림책은 글을 읽는 문학 작품이 아닙니다. 눈으로 그림을 보는 시각예술입니다.

    판권계약을 맺고 이순영 대표가 보내준 번역본을 보고서야 신시아 라일란트의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를 읽기 전에 이미 브랜던 웬젤의 그림만으로 충분한 웃음과 눈물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브랜던 웬젤의 그림은 신시아 라일란트의 시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과 감동을 선사합니다. 물론 그가 만든 다양한 캐릭터들과 그림 속 이야기들은 신시아 라일란트의 시에 뼈와 살과 피와 집과 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놀라운 그림 속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입니다. 그림책 「삶」은 그야말로 브랜던 웬젤의 예술입니다.

    내 삶은 나의 예술

    앞서 말씀드렸듯이 부모님은 제가 딸인 줄 알고 저를 낳으셨습니다. 형들은 다른 집에서 자랄 뻔한 저를 다시 집으로 데려 놓았습니다. 이런 제 삶을 그림책 제작자의 눈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낳으셨으니 원작자입니다. 형들은 저를 남의 집에서 데려와서 제 삶의 진로를 바꾸었으니 각색자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제가 선택한 삶이었으니 제가 바로 제 삶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저는 아주 작게 태어났지만 햇빛을 받으며, 달빛을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산다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얻어맞기도 하고, 남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아프기도 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죽을 고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희망과 사랑과 꿈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살아있다는 것을, 사람과 사랑은 모두 아주 작게 태어나지만 점점 더 자라난다는 것을.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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