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철이 담금질로 단련되듯 굴하지 않는다"
    By tathata
        2006년 07월 24일 02: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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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건설노조의 포스코 점거가 조합원들의 자진해산으로 일단락됐지만, 노조가 짊어야 할 생채기는 너무도 크다. 정부는 포항건설노조, 민주노총 경북본부 지도부와 간부 58명에게 무더기 구속영장이 발부돼 지난 10여년간 가장 많은 노동자가 한꺼번에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포스코의 손배가압류 ‘후폭풍’도 노조가 극복해야 할 난제다. 포스코는 2천억원대의 손해를 입었다며 노조가 감당하기 어려운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으로 보여 노조로서는 지도부 공백과 함께 이중의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 포항건설노조가 경찰의 폭력으로 뇌사상태에 빠진 하중근 조합원의 쾌유를 비는 촛불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
     

    포항건설노조는 지난 1988년에 설립되었으며, 건설노조 가운데 조직력이 탄탄한 곳으로 평가되고 있다. 포항건설노조의 기계, 배관 전기 분회 등은 ‘채용 시 조합원 우선권 부여’를 단체협약으로 체결하고 있어, 노조는 건설업체와 인력 공급 계약을 맺고 있다. 또 노조 자체적으로 건설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노조의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는 노조가 정한 정규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지갑렬 포항건설노조 부위원장(현 위원장 직무대행)은 “포항건설노조는 건설업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선도적인 투쟁을 해왔으며 강고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다른 지역 건설노조에도 모범이 되어 왔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 관행처럼 여겨져온 하루 8시간 이상의 초과근무, 주5일제 미적용 등을 건설노조 가운데 사실상 처음으로 단체협약 요구안으로 제기하고 나온 것도 포항건설노조의 이같은 역사가 배경이 됐다.

    포스코는 포항지역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으로, 포스코가 맺고 있는 하청 건설업체와 포항제철과 원하청 계약관계에 놓여있는 납품하청 업체도 수두룩하다. 포항지역의 한 노동운동가는 “이번 투쟁이 포항노동운동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며 “이번 싸움에서 지게 되면 투쟁력을 복원하는데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포항건설노조의 투쟁은 포항지역의 금속노조 등 다른 업종의 노사관계에도 변화를 예고한다는 말이다.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포스코가 대화에 나서서 사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80만 조합원과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번 싸움이 포항은 물론 전국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로 이어지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포항건설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안은 포항지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물론 나아가 주5일제를 앞두고 유급휴가를 쟁취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지경 위원장은 “주 5일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하청업체나 일용직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여전히 남의 나라 얘기”라고 말했다. 이번 싸움이 건설일용직 노동자는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확보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는 말이다.

    황우찬 민주노총 포항시협의장도 “주 5일제 등 근로기준법 적용의 바깥에 있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절대다수인 현실에서 원청인 포스코가 책임성을 가지고 대화하자는 것이 우리의 요구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스코는 끝까지 대화를 거부했고, 단전과 단수의 고통으로 조합원들은 점거 9일만에 자진해산이라는 힘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준비되지 못한 ‘우발적인’ 점거였지만, 조합원들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9일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조합원들의 요구가 절박했고 정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조합원들의 공통된 말이다.

    청와대의 “모든 수단을 동원한 해산”이라는 ‘초강수’에 조합원들은 농성장을 이탈했지만, 포스코 점거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보라는 문제를 현안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역시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자성해야 할 점이 많다는 목소리가 높다. 황 의장은 “민주노총의 한 간부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며 “비정규직 투쟁에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싸움이 정리된다면 앞으로도 비정규 운동의 전망과 희망이 없다”고 뼈아프게 말했다.

    포항건설노조는 지난 23일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지갑렬 부위원장을 위원장 직무대리로 임명하는 등 지도력을 신속하게 구축하고 있다. 노조는 이날 조합원 대량 구속으로 공석이 된 교섭위원직을 새로운 사람으로 임명하고 전문건설업체 측에 교섭을 요청하는 한편 조직력을 하루빨리 복원하여 교섭과 투쟁을 병행키로 결의했다. 또 뇌사상태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하중근 조합원을 쾌유를 빌며 경찰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도 매주 월, 수, 금요일 저녁에 개최하기로 했다.

    24일에는 파업결의대회가 조합원 3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포항건설노조의 한 관계자는 “정권과 자본의 의도대로 노조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강철이 담금질에 의해 단련되듯 이번 싸움도 노동운동의 투쟁의 역사 속에서 단련되어 승리로 얻게 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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