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터의 개혁정신이
    살아있는 모범교회
    [그림 한국교회] 중앙루터교회
        2019년 07월 29일 02: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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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 9월 12일, 장로교단이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조선장로호’라는 이름의 전투기까지 헌납했던 시기, 신사참배에 반대했던 그는 교회에서 쫓겨난 것은 물론 교단에서 출교처분까지 받았습니다. 산골짜기에 들어가 그 암흑의 시절을 보낸 이후에… 여운형 선생은 물론 정치인들이 앞 다투어 그를 찾았으나. 그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신사참배로 무너진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이원영 목사)

    흰 두루마기를 차림으로 전국을 순례하며 교단을 재건하고자 했고, 그렇다고 신사참배를 강행한 교단 지도부를 공격하지도 않았던 종교인의 품격… 그는 한국 개신교의 자부심으로 기억됩니다.

    등록된 신자만 10만 명이라는 교회… 퇴임하고 2년 후에 아들이 자리에 앉았으니 세습이 아니라고 버티는, 이 대형교회의 억지식 교회법 논란은 오래 이어질 것 같습니다.”

    (JTBC 7월 17일, 손석희 앵커브리핑에서)

    지난 7월 16일, 교회는 물론 우리 사회와 전 언론의 관심을 끈 예장(통합) 재판국은 명성교회의 세습사건의 재심판결을 또 미루었습니다. 작년 제103회 총회에서 총대들이 세습금지를 규정한 총회헌법의 취지에 맞게 다시 재판하라고 결의하여 넘겼음에도 이런 상황까지 이른 것입니다. 1938년에 자행된 교회의 신사참배는 일제가 강압한 산물이라면, 지금은 명성교회의 금권력이 작동하는 수치스런 사건입니다. 올해 다시 ‘명성교회 불법세습 총대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실무준비위원장을 맡은 저는 참담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지난해의 총회 결의를 이행하지 못하는 총회임원회를 탄핵해야 한다는 절규를 들으면서, 최주훈 목사님이 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를 바로 잡기 위해 2018년 12월에 발표한 ‘신학소견서’가 떠올랐습니다. 교단의 최고 책임자인 총회장 역시 교단 전체 총의가 모이는 정기총회에서 선출되어 ‘계약된 직무’로 위임되었을 뿐이라고 밝히면서, 부정과 불법을 저지른 죄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일갈하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2016년 10월 30일, 종교개혁 499주년 기념주일에 중앙루터교회 당회는 “김철환 총회장 불신임 결의에 대하여”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6월 30일, 중앙루터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정면에 자리한 커다란 십자가를 바라보며 제 마음은 숙연해졌고, 말없이 응시하는 것만으로 주님을 떠올렸습니다. 십자가 아래에 거룩한 양식인 성찬이 새하얀 면보자기에 덮여 있었습니다.

    성가대 입장으로 예배를 시작할 때, 찬양대 입장의 동선에 따라 회중이 선 채로 몸과 시선으로 응시하며, 성가대와 회중이 연결된 느낌을 얻으며 마음이 더욱 푸근해졌습니다.

    150여명이 드리는 예배에 성찬식이 시작되자물결처럼 교인들이 일어났습니다. 저에게 성찬의 순서가 다가오자 약간 설레였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몸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최주훈 목사님의 눈동자가 아직도 선명합니다. 주시는 빵은 보이지 않고, 넣어주시는 사제의 검은 눈망울이 깊은 호수처럼 크고 깊어 보여서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아멘”

    빵을 입에 넣고 기도하면서 놀란 정신을 다독였습니다. 아무래도 예수님을 만난 것 같습니다. 저의 죄가 떠올라 부끄럽고, 신선한 힘을 얻어서 기뻤습니다. 예배당에 거룩하고 기쁨 가득한 기운이 뭉게뭉게 가득했습니다.”

    (너른들교회 유희정 집사의 글에서)

    저는 7월 14일, 중앙루터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오면서, “루터의 신학을 목회현장에서 구현하는 바른 교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이 점심식사를 나누고 헤어질 때, 최 목사님이 “이걸 꼭 봐야 한다.”는 말뜻을 ‘지원상목사 기념기도실’에 들어가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과 깊이 교감할 수 있는 작은 성소였습니다.

    3년 과정으로 진행하는 ‘목회자 기독교고전읽기’의 2년차인 올해는 마르틴 루터의 저서로 시작하였는데, 강사가 최주훈 목사와 강치원 목사였습니다. 최 목사님은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에서 루터를 전공하였고, 강 목사님은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종교개혁과 경건주의를 연구하였습니다. 두 강사는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독일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 교회의 바빌론포로에 대한 서주, 그리스도의 자유)의 발제에서, 복음과 교회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핵심적으로 강의하였습니다. 발제의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가장 관심이 큰 ‘만인사제직’에 대해 루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영적 신분에 속하며 그들 가운데는 직무상 구별 외에는 아무 차이도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선언하며 성직자와 평신도의 차별을 철폐하고, 성경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창하였습니다. 자기를 위한 직업은 성직이 아니고 이웃을 섬기고 세상을 건강하게 만드는 직업이 성직이라는 루터의 ‘직업소명론’은 거룩의 영역을 일상과 노동의 현장으로 확장하여 세속직업에 영적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는 루터가 말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안에 살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이웃 안에서 산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신칭의’(以信稱義,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를 믿기만 하면 된다는 단순한 개인구원의 선포로 받아들여 루터의 핵심사상을 왜곡하는데, 다른 발제자인 강치원 목사는 루터의 말을 인용하며 분명하게 정리하였습니다.

    루터는 “만일 믿음이 의롭게 만드는 것이고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면 왜 선행을 명령했는가?”, “하늘의 아버지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거저 도와준 것과 같이 우리도 몸과 행위를 통해 이웃을 거저 돕고, 각자는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우리로부터 하나님의 자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흘러가야 한다,”고 썼으며 『공동기금을 위한 조례』에서는 “궁핍한 사람을 돕고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사랑보다 더 큰 예배는 없다.”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개혁운동은 “침묵의 시간이 지나갔소. 말할 때가 되었습니다.”고 선언하고 온몸으로 저항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 종교개혁운동의 도화선이 된 95개조 반박문의 의미를 바르게 알 수 있었습니다. 최 목사님은 논제의 핵심은 1조에 있다고 하며, 루터가 “우리의 주요 선생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회개하라’ 명하실 때, 그 회개는 우리의 전 삶이 돌아서는 것이다.”라고 성서를 해석한 것이 중세교회가 보속의 개념과 연옥의 교리를 만든 교리시스템을 흔들었다는 것입니다. 중세교회가 1,000년 이상 불변의 진리로 내세운 라틴어성경 불가타는 마태복음 4장 17절을 “죗값을 치러라. 천국이 가까웠다.”로 번역하여, 보속교리를 만들고 악용하여 교회재산을 불리고 기득권을 수성했기 때문입니다.

    중앙루터교회(그림=이근복)

    우리나라에서는 루터교회가 매우 드물고(49개 교회) 생소하지만, 루터교인은 전 세계에 약 7,600만 명으로 장로교인 5,000만 명보다 많고, 세계교회연합과 일치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한국루터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가맹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루터교와 인연을 맺는 것은 독일인 방문선교사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utzlaff 1803~1851)가 1832년, 충남 보령시 고대도에 들러 한문성경과 전도지를 돌리고 감자와 포도나무 재배법을 가르쳐준 일입니다. 한국루터교는 미국 루터교회의 한 교단인 미조리 시노드(synod)가 1958년 1월 13일, 박덕인(Paul Bartling), 지원용 등 4명의 선교사를 한국에 파송함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다른 교단의 선교정책과는 달리 미국 루터교회 선교사들은 ‘교회를 섬기는 교회’라는 정책을 세우고 ‘루터란아위’로 방송선교를 하고, 통신강좌와 출판사인 컨콜디아사로 문서선교를 하였고, 베델성서로 성경공부를 보급하며 한국교회에 자양분을 제공하였습니다. 저도 신학교 시절, 유머가 넘치는 지원상 목사님이 이끈 ‘베델성서’에서 성서를 새롭게 이해하였습니다. 1986년에는 루터대학교가 학력인가를 받아 인재양성에 나섭니다. 첫 루터교회는 1959년에 서울 YMCA 회의실에서 시작한 임마누엘교회(도봉교회)입니다.

    중앙루터교회는 1967년 1월, ‘삼위일체교회’라는 이름으로 박덕인 선교사를 담임목사로 하여 창립하였습니다. 그해 5월에 지원상 목사가 2대 담임목사가 되었고, 1975년에 중앙교회로 바꾸고 루터교센터로 건축된 새 교회당에 입당합니다. 2010년에 5대 담임목사로 최주훈 준목이 청빙되어 이듬해 담임목사로 취임하였습니다.

    2017년 창립50주년을 맞이하여 펴낸 기념문집의 “희년을 맞는 우리의 다짐”에 중앙루터교회의 정신과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종교개혁 정신의 실천>의 2항은 “우리는 개혁자 루터의 정신을 따라 바른 신앙을 견지하며 교회개혁과 공의로운 세상을 도모한다.”고 하였고, <거룩한 사귐의 공동체>의 3항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각자 맡은 일에 성실하며 서로 연합하여 주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고 하며, <모범이 되는 신앙인>의 2항에서는 “우리는 복음으로 자유케 된 양심에 따라 재물, 명예, 권력 등 세속적 가치의 도전을 이겨낸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기념문집에 교인 91명이 참여한 설문조사를 분석한 내용도 나옵니다. 중앙교회의 장점은 은혜로운 설교라고 하고, 신앙생활에 대하여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며, 교회의 진정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과 헌신을 감당할 의향에 대해서도 70% 정도가 긍정하는 것을 볼 때, 중앙루터교회의 미래는 밝습니다.

    앞으로 중앙루터교회는 명성교회와 사랑의교회, 한기총 등으로 인하여 자존심이 무너지고 상처입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망의 그루터기가 될 것입니다.

    필자소개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역임.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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