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노조와 시민사회 연계가 중요한가
    [책소개] 『노동-시민 연대는 언제 작동하는가』(이철승(지은이),박광호 (옮긴이)/ 후마니타스)
        2019년 07월 27일 09: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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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노동 및 시민단체의 지도자들이 사회정책과 관련된 의제를 통해 어떻게 다양한 내용의 사회적 연대를 동원하고, 제도화하는지 또한 그 정책 의제들을 위협과 설득의 정치를 통해 어떻게 국가 제도로 전환시키는지를 탐구한다. 요컨대, 이 책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복지국가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설명하는 모델을 개발하고, 그 모델을 통해 노동-시민 연대와 노동-정당 동맹이 복지국가를 확대 또는 축소하는 과정을 설명한다”(32쪽).

    왜 여전히 노동조합이, 또한 왜 노조와 시민사회 사이의 연계가 중요한가

    한국은 현대사에서 가장 급속한 경제 발전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 가운데에서도 가장 강력한 노동운동 및 시민사회를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제도화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이 전성기 시절에 발휘한 힘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는데, 1987년 노동자 대투쟁, 그리고 1996~97년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 투쟁 등은 민주화 이행(1987년) 및 헌정 사상 최초로 여야 간의 평화로운 정권교체(1997년)를 추동한 눈부신 사례였다. 이를 발판으로 진보 개혁 정부였던 김대중 정부 하에서 1990년대 말 나타난 한국의 노동-시민 연대는 그 포괄성 측면에서, 개발도상국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보편적이며 통합적인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일구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그 역시 매우 짧은 시간 동안에, 그것도 ‘진보’ ‘개혁’ 정부를 자임하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사회정책 및 노동시장 정책이 극적으로 변화하며,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혁을 도입해 나갔던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부정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소위 ‘진보 정권’이라 불리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노동-시민 연대에 부응하여 보편적 복지국가를 향한 주요 제도들을 입안했지만, 동시에 시장주의적 요소들이 복지 체계에 도입될 수 있는 문을 열어 주기도 했다. 특히 이 시기 도입된 비정규직 법안들은 노동시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으며, 한국 사회의 ‘불평등’ 역시 극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집권했던 2000년대에 나타난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실로 충격적이고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신자유주의적 전환의 과정에서도 복지 정책별로, 그리고 또 노동운동 진영 내에서도 흥미로운 차이가 존재한다. 예컨대, 연금제도 및 노동시장 규제와 관련해서는, 국가와 자본 측이 추진한 축소 공세가 관철되었지만, 1990년대의 눈부신 연대를 통해 만들어진 국민건강보험 제도는 지속적인 노동-시민 연대를 통해 잘 방어되었기 때문이다.

    “4장에서는 한국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 권위주의 시기부터 민주주의 공고화 시기까지 ― 어떻게 배태성과 응집성을 구축했는지를 서술했다. 5장에서는 한국에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시민 연대가 출현하고, 이후 개혁 정부들에서 보편 사회정책 개혁을 성공적으로 개시・시행하는 과정을 제시했다. 6장에서는 개혁 성향의 노무현 정부와 이후 보수 정부들이 수행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검토했고, 특히 노동-시민 연대가 1990년대 말에 형성된 사회정책들을 어떻게 계속해서 지켜 냈는지 또는 그러지 못했는지에 집중했다. 이 같은 연구는, 한국이 이 연구의 가설들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는 경험적인 자료일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복지국가, 좀 더 일반적으로는 비교 정치・경제 분야의 학자들에게 충분한 이론적・실용적 함의를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422쪽).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노동운동 진영과 시민사회 사이의 연대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어떻게 1990년대 중후반에 복지국가의 확대라는 눈부신 성과를 이뤄 낼 수 있었는지,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강화된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혁의 압력 속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은 어떻게 분화되었는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어떤 복지 정책들은 방어할 수 있었던 반면, 어떤 복지 정책들은 방어할 수 없었는지, 왜 어떤 노동조합들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추진하며, 왜 어떤 노동조합들은 자신들의 이해에만 집중하는 ‘선별적’ 복지국가에 만족하는지 살핀다. 특히, 이 책은 오늘날 외면 받고 있는 노동조합의 사회적 중요성이 왜 여전히 유효한지에서 출발에, 노동조합이 시민사회단체들과 어떤 형태의 연대를 결성하는지, 나아가 이를 토대로 국가 및 주요 정당들과 어떤 협상을 벌이는지에 주목한다.

    “시민사회 내에서 그리고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 모두에서 노조가 점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조직적 위치와 자원 덕분에, 노조는 그 어떤 조직보다도 시민사회 공동체의 힘을 늘릴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노조는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을 통해 다른 사회운동 조직에 지도부와 회원 등을 제공할 수 있고, 평등주의적 정책 의제의 개발과 공유를 통해 정책 자원을 제공할 수도 있다. 노조와 다른 사회운동 조직이 정치적・구조적 개혁을 위해 장기적으로 연대하거나, 특정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연대할 경우, 시위나 가두 행진 등에 소요되는 동원 비용이 크게 줄고, 이는 결국 시민사회가 투표와 로비를 통해 개혁 성향의 정당들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강화하게 된다. 요컨대 노조는 다른 사회운동 및 지역공동체 조직과 연결될 때 사회운동 네트워크 전반의 권력을 신장할 수 있다.”(34쪽)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제도화되었는지 여부를 설명하는 데 있어 관건은 노동계급이 좀 더 광범위한 시민단체 네트워크 및 개혁 정당들과 연결되어 있는지 여부다. 노조와 다른 시민단체 사이의 견고한 연대는 국가 엘리트와 자본가의 포섭 전략을 막아 주고, 이와 동시에 노조가 [여타의 시민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이후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로 경도되는 것을 예방한다. 지금까지 논의한 노조의 역할은 이 연구의 핵심 개념인 ‘배태된 응집성’으로 이어진다.”(38쪽)

    배태된 응집성 vs 탈구된 응집성

    《노동-시민 연대는 언제 작동하는가》는 노동운동과 시민사회단체 사이의 연계(배태성)를 한 축으로, 또한 노동운동과 정당 사이의 동맹(응집성)을 다른 축으로 삼아, ‘배태된 응집성’과 ‘탈구된 응집성’이라는 개념을 분석에 도입한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배태된 응집성”이 있는 경우로, 이때 노조는 보편적 사회정책 개혁을 달성할 수 있는 공산이 가장 큰데, 광범위한 시민사회 파트너들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나아가 축소 시기에도, 배태된 응집성이 있는 노조는 로비 및 징벌 역량을 통해 국가의 개혁을 온건한 수준으로 제한할 공산이 가장 크다. 1990년대 중후반에 보건의료노조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의료보험조합 통합 운동이 바로 이 같은 배태된 응집성의 사례로, 노조는 연대의 정신에 기반을 둔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복지 정책이 입안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반면, 탈구된 응집성의 경우 노조는 국가와 강한 동맹 관계에 있지만, 시민사회와의 약한 배태성 관계에 있기에, 국가의 엘리트들(특히 관료들)이 시민사회의 제도적 제약에서 풀려나 복지국가의 급진적 축소 또는 확대 개혁을 개시할 여지를 제공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노조는 약한 배태성으로 말미암아 시민사회를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없기에 국가의 이 같은 개혁을 가로막을 역량이 없을뿐더러, 국가와의 강력한 응집성을 토대로 자신들의 조합주의적 이해를 관철시켜 ‘선별적 복지 개혁’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사례연구들과 현장 연구에서 얻은 증거는 다음과 같은 이 글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① 응집적 연계도 배태된 연계도 없는 노조는 기존의 재분배 제도를 방어하지 못하고 사회정책을 확대하는 새로운 개혁도 추진할 수 없다. ② 응집적 연계는 있지만 시민단체 및 공동체 조직에 배태되지 못한 노조는 국가의 지지를 받아 자신의 협애한 이익을 위한 선별적 개혁을 추구할 공산이 큰데, 이는 노조가 조직화되지 못한 시민사회 세력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축소의 시기에 그런 노조는 정부와 유착하고, 그에 따라 국가의 급진 개혁 추진을 수용할 공산이 크다. ③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혁 시기에, [시민사회에] 배태된 노조는, 집권당과의 응집적 연계가 없을 경우, 정부가 급진적 축소 개혁을 추진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아예 처음부터) 양보를 이끌어 내거나, 강한 동원 및 위협 역량들을 발휘해 온건한 개혁을 유도할 것이다. 또한 배태된 노조는 배태성의 수준이 가장 높을 때 보편 개혁을 수용하도록 국가를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④ 마지막으로 집권당과 (보통 수준의) 응집적 연계가 있으며 시민사회에도 배태된 노조는 보편적 사회정책 개혁을 이룰 공산이 가장 큰데, 광범위한 시민사회 파트너들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축소 시기 동안, 배태된 응집성이 있는 노조는 로비 및 징벌 역량을 통해 국가의 개혁을 온건한 수준으로 제한할 공산이 가장 크다”(420쪽).

    한편으로 이 책은 한국 사례를 통해 획득한 이론적 성찰과 ‘배태된 응집성’이라는 분석틀을 아르헨티나, 브라질, 대만으로 확대, 이들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어떻게 노동-시민 연대와 노동-정당 동맹이라는 두 축이 다양한 복지국가 후퇴와 확장의 사례들을 설명하는지를 보여 준다.

    다른 한편으로, ‘배태된 응집성’ 접근법은 노조와 시민사회, 노조와 정당 사이의 연계와 동맹이라는 사회 중심적, 사회운동론적 시각에 입각해 설명하며, 기존의 국가 중심적 이론들(자원 동원론, 정책 유산론, 책임 회피의 정치 이론 등등)을 보완 반박하며, 복지국가의 발전과 후퇴에 대한 연구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오늘날 학계에서 간과되고 있던 사회운동론적 관점을 다시 복원하며, 사회운동이 왜 여전히 복지국가의 발전에 중요한지, 아래로부터의 연대와 동원이 없는 개혁은 어떤 한계가 있는지, 민주적 거버넌스와 공공 정책을 형성함에 있어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심이 있는 학자, 시민운동가, 정책 입안자에게 유용한 이론적 도구와 경험적 자료를 제시할 것이다. 나아가 이 책에서 저자가 새롭게 개발・제시하고 있는 배태된 응집성이란 개념은 한국 사회를 비롯한 개발도상 세계에서 복지국가가 어떻게 형성되고, 쇠퇴해 왔는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보여 주며, 이는 다시 서구 중심부 사회들에서 나타났던 사회정책의 발전 과정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제기할 것이다. 나아가, 복지국가 연구는 물론, 정치학과 사회학 연구 방법론에서도 중요한 공헌이 될 것이다.

    “종합하면 이 연구는 사회운동 과정이 복지국가의 축소와 팽창이라는 동학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 준다. 중범위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연대 형성’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이 글은 복지국가의 발전(과 후퇴)와 관련해, 사회적 네트워크에 기초한 사회 중심적 이론, 즉 노조 지도자들의 구체적인 조직 전략 및 시민사회 내의 다른 사회집단과 연대하는 그들의 역량에 초점을 맞춘 이론을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배태성의 차원을 고려함으로써, 전통적인 권력 자원 이론의 축인 ‘노조-좌파 정당 동맹’이 좀 더 광범위한 시민사회 또는 지역공동체 동원의 맥락에서 재평가되어야 함을 밝혔다. 나아가 시민사회에 대한 노조의 배태성을 이해함으로써, 사용자에 대한 노조의 코포라티즘적 배태성에 의지하지 않고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대안적 경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보편적 사회정책(선별적 혹은 배타적 사회정책이 아닌)을 추진하는 사회운동 과정에서 사회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창의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순간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복지국가에 관한 오늘날의 연구들은 대체로 그런 순간들을 무시한 채, 복지국가의 제도화된 결과에만 주목한다. ‘시장에 대항하는 정치’와 ‘시장을 위한 정치’ 사이의 해묵은 논쟁에서 길을 잃은 복지국가 연구자들은 이제 ‘시민사회에 배태된 정치’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452쪽).

    배태된 응집성과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

    이 책에서 개진하고 있는 입장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상식처럼 자리 잡고 있는 지배적인 담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늘날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노동운동은 중소 사업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나 영세 소상공, 자영업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보다는 대기업 남성 귀족 노조들의 안정적 일자리와 높은 임금만을 추구하는 기득권 세력으로, 그리하여 보편적 복지보다는 자신들만의 선별적 복지 체제에 안주하고 있다는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이 책을 기반을 출간된 논문을 통해, 한국의 노동운동은 산별노조가 입금교섭을 하기 어려운 구조(예컨대, 포괄성 등의 측면에서)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산별노조 등의 역할을 유럽 등 선진국보다는 남미와 비교해야 하며, 나아가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에 대한 배태성을 강화해서 전체 노동자의 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2000년 대 이후 민주노총은 기업 내 임금 극대화 전략을 추구하고 있어서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그간 한국의 복지국가 발전과 노동조합의 역할 등을 서구 선진 사회와 비교했을 때 간과해 왔던 한계들이었다.

    마찬가지로, 보건의료노조가 주도했던 단일하고 보편적인 국민건강보험 개혁과 이에 대한 성공적인 방어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잘 알 수 있듯이, 사회개혁의 기반과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연대 노조가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들에 대한 지원과 조직 등의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2000년대 초반 잠시 국내에서 논의가 되었단 사회운동론적 노동조합주의의 관점이 다시 복원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최근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 등 노동운동 진영에 제기되고 있는 목소리, 곧 ‘경제적 노동조합주의’에서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은, 지역사회 및 다양한 사회운동 집단과 동맹을 맺는 일이 노조의 성공은 물론이고, 좀 더 광범위한 공동체들의 발전에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36쪽).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 안에서, 노조와 다른 시민사회 조직 사이의 연계[연대]는, 지역사회의 강력한 지지와 더 많은 운동 자원을 노조에 제공할 수 있다. 그런 환경 안에서, 노동권은 시민권으로까지 확대될 것이고, 그에 따라 중산층, 농민, 도시 빈민, 소상공인, 그리고 은퇴자, 전업 주부 등과 같은 비취업 인구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범주의 노동자의 이익이 ‘노동의 권리’로 인정될 것이다. 최근 민주화된 개발도상국들 가운데, 강력한 노조와 시민사회 조직이 잘 연계된 일부 사회는 민주주의를 더욱 효율적으로 공고화해 왔다. 민주화 운동 시기에 시민사회 집단과 연대했던 노조는, 이후에도 그 동맹으로부터 더 유효한 지지를 얻을 공산이 크고, 이를 통해 시장 개혁에 맞서 더욱 광범위한 연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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