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40대의 덕담 "이런 양반들이 빨리 돼야 돼"
        2006년 07월 23일 09: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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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면 그릇을 내려놓자마자, 길음3동 가파른 골목길을 올랐다. 운동화를 신고도 쫓기가 만만치 않다.

    “제가 체력으로만 치면 대선 후보감이죠.”
    5.31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성북구청장 후보로 나서고, 지금은 다시 성북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후보로 뛰고 있는 박창완의 열정은 지난 토요일의 삼복 더위도 무색케 했다. 거의 반 년 내내 선거운동하며 몸고생 마음고생 했을 사람 치고는 너무 생생하다.

       
     

    그의 걸음이 잰 것은 성격 탓도 있을 듯 싶다. 민주노동당에서 일한 몇 년 동안 그는 언제나 곧고 빠르게 가려 했다. 좋은 게 좋다며 얼렁뚱땅 이루어지던 당 회계에 딴지를 걸며 그나마 구멍가게 수준이라도 만들어 놓은 것은 예결산위원장 박창완의 ‘곧음’ 에 힘입은 바 크고, ‘자주’, ‘통일’ 이외의 상상을 불온시하던 당에서 불과 몇 년만에 ‘평화’가 이야기되는 것도 평화군축운동본부장 박창완의 ‘빠름’ 덕택이다. 그래서 그에게 학을 뗀 몇몇 사람들은 “그 사람 참 급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길음3동 아주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말하는 품을 보니 성격 급하다던 박창완은 온 데 간 데 없고, 찬찬하고 수더분한 지역 활동가만이 눈에 띈다.

    아이 안은 여인네에게는 ‘6세 미만 아동 무상의료’와 민주노동당 활동을 함께 이야기하고, 길가에 앉아 있는 할머니들에게는 틀니가 왜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지 보수정당들을 도매금으로 넘기며 설명한다. 옆에서 귀동냥하던 이들도 고개를 주억거릴만큼 그의 이야기는 솔깃하다.

    “평생 1번 2번 3번 다 찍어봤지만, 불량품 아닙니까. 이제 4번 찍어주십시오. 서민들 큰 ‘빽’이 되겠습니다.”
    “이런 양반들이 빨리 돼야 돼. 그래야지 우리처럼 애새끼 셋 키우는 사람들도 무상교육 덕 좀 보지.”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인조잔디 축구장에서 만난 40대 사내는 빈말일지언정 박창완의 설득을 수긍했고, 보통사람들이 품음직한 희망 한 조각을 내보였다.

    그런데 그의 풍부하고 대중적인 정책 설명 능력은 빛을 발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비서가 공천 수뢰로 구속돼 있는 한나라당의 최수영 후보와 공천희망자 없는 열린우리당에서 ‘공천(?)’된 조재희 후보가 TV 토론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창완은 어쩔 수 없이, 김종필에 버금가는 5선의 조순형과 김빠진 토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조순형 진영에는 이인제, 장기표 같이 ‘흘러간 옛노래’들이 죄 모여 있다 한다. 너무 잘 나가는 게 두려운 한나라당, 어차피 질 것이 뻔한 열린우리당은 이번 재보선이 비밀선거이기를 바라고 있는 모양이다.

    박창완 후보와 함께 서너 시간 둘러본 길음3동이 전형적 의미에서의 ‘산동네’는 아니었다. 깨끗한 아파트들이 제법 있었고, 다세대 주택들도 그리 곤궁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 가는 곳마다 과연 장사 될까 의심스러운 밥집이나 강남에서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구멍가게, 꾀죄죄한 옷수선집이 있다. 경기가 나쁘고,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취직은 안 되고, 특별한 기술도 큰 자본도 없는 서민들이 결국 선택한다는 게 이런 영세 자영업밖에 더 있겠는가.

       
     

    미용실 주인과 이야기하던 박창완 후보는 밖에 있던 당원들을 불러 들여, 작은 가게들이 왜 이리 많이 생기는지, 미용료가 왜 5년 전보다 더 내려 앉았는지를 설명해준다. 박창완을 거드는 미용실 주인은 손님 머리가 아니라 가내부업 삼은 신발 장식품을 매만지고 있었다.

    이 성북을 다른 후보들이 되살리지는 못할 것 같다. ‘서민경제 전문가’를 자임하는 열린우리당 후보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던 김대중 노무현 집권기 동안 서민경제는 말 그대로 급전직하했다. 조재희 후보는 “청와대에서 서민경제를 거덜낸 공로”로 황조근정훈장이라는 거창한 이름 훈장을 받았다.

    서울시정을 맡은 한나라당의 뉴타운 정책에 의해 성북구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성북구의 뉴타운에 재정착한 구민은 10%밖에 안 된다. 나머지 90%의 성북구민이 더 궁벽한 어느 곳으로 쫓겨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수영 후보 공약대로 뉴타운을 확대한다면 나머지 성북구민들도 “아메리카 인디언 쫓겨나듯 쫓겨날 것”이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1968년에 쓰여진 김광섭의 시는 오히려 2006년에 더 새롭다.

    박창완 후보는 뉴타운 정책에 반대한다. 물론 그도 재개발의 필요성을 제기하지만, 지금과 같이 거주자들을 쫓아내는 뉴타운 정책이 아니라 분양원가 공개·공공임대주택 확대·1가구1주택 법제화 등을 통해 재정착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재개발 방식을 공약하고 있다.

    성북이 낙후되었다고들 말한다. 글쎄? 박창완은 성북을 “서울 부자의 절반이 사는 곳, 움막 같은 집에서 겨우 밥이나 끓여 먹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성북을 서울의 낙후 지역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말하는 게 더 타당할 듯 싶다.

    2000만 원짜리 지하 전세방과 삼성래미안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성북이다. 공존하나 소통하지 않는 곳. 소통하지 않으나 갈등하지도 않는 곳. 갈등하지 않으나 폭발이 잠자고 있는 곳.

       
     

    어느 가게를 나설 때 30대 여성의 착 가라앉았지만 분노를 감춘 목소리가 뒤따랐다. “솔직히, 좋은 소리들 해봤자 소용 없어요. 국회의원 되는 사람들이 어려운 생활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혹시 당선되시더라도 초심을 잃지 마세요.”

    그런 그곳으로 박창완이 돌아왔다. 20년 남짓 은행원 생활을 마치고. 박창완은 경남은행 같이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중졸의 공사장 잡부로, 한의원과 양복점의 점원으로, 작은 공장의 일용공으로, 군대보다 더 무서운 직업훈련원과 야간고등학교의 학생으로 살았다. 자수성가형 인물을 양산하는 한국 자본주의 미덕에 따라 그는 석사 학위를 가진 은행원이 되었고, 역시 한국 자본주의의 도덕율에 따라 ‘명예퇴직’했다.

    그래서 그가 돌아온 곳은 성북구가 아니다. 삶이 곧 투쟁인 야만의 자본주의, 몸부림치며 투쟁해온 삶이 그에게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초심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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