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교회 떠나는 이유
[청년기자] 개신교 청년들의 교회관
    2019년 07월 24일 09:56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한국의 개신교는 뭇 종교 중 유독 두드러진 종교이다. 좋게 말하면 신도들의 열정이 뜨겁고 사회적인 영향력도 높지만, 나쁘게 말하면 요란하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개신교는 정치와 사회, 진보와 보수를 둘러싼 담론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왔던 종교이다. 이러한 개신교가 이제 ‘다음세대(Next Generation)’, 즉 청년세대와 청소년세대의 신뢰상실이라는 큰 위기를 마주하고 변화를 꾀하고 있다.

개신교의 위기

“열방에 복음을 전파하자!” 교회가 구호를 내걸고 청년들에게 적극적으로 전도를 장려하던 자신만만한 시기가 있었다. 불과 10년여 전 일이다. 모든 것이 자신만만했다. 도전, 열정, 긍정을 강조하는 성공 열풍에 젖어있던 그 시기의 유행과 맞물려서,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 세속적으로도 성공하자는 분위기가 넘쳐흘렀다.

전체 신자 대비 20대 신자의 비율이 줄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개신교는 유례없는 위축감을 느끼고 있다. 기성세대 교역자들 사이에서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우려가 끊이질 않는다. 2015년 발표된 한국갤럽의 「한국인의 종교」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23%였던 20대 청년층의 개신교 인구가 2014년에 18%로 5% 가량 감소했다.

청년층의 이탈만이 문제가 아니다. 비신자들의 개신교에 대한 반감 역시 거센 상황이다. 2017년 12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하여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에 대한 비신자의 호감도는 9%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40.6%의 불교와 37.6%의 가톨릭에 비해 대단히 낮은 수치이다.

개신교는 대중에게 가장 낮은 호감도 보이는 종교

이처럼 개신교에 대한 호감도가 낮은 상황에서 더 이상 청년들에게 신앙을 호소할 만한 동력도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한국 교회를 뒤덮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 속에서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본 기사는 부산 북구에 소재한 모 교회(예장 합동) 소속 서〇〇 교육목사와의 인터뷰 및 일부 개신교 신도 청년들의 응답을 중심으로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부패한 대형교회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은 개신교에 성공과 번영의 가치를 접목시켜 한 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제 청년들은 이러한 메시지에 다소 냉소적이다.

청년들은 왜 개신교에 반감을 느끼고 이탈하고 있을까. 당장 청년들이 지적하는 부분은 대형교회의 지나친 물질주의와 성장주의, 그리고 부패였다. 한때 교세 확장과 대형화, 그리고 물질적 성공이 종교적 은총과 축복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예컨대 이 시기의 대표적 기독교 베스트셀러인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에서 이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의 저자소개란에 따르면 “(아버지의 교회를 물려받은) 조엘은 레이크우드 교회를 네 배로 키워 냈다. (…) 레이크우드 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빨리 성장하는 교회다.” 한국의 청년들 역시 이처럼 양적으로 성공을 이룬 이들을 모델로 삼아 열정을 품고 도전하여 성공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하지만 도전과 열정을 추구하는 성공 열풍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지고 말았다. 성공 열풍이 사그라지면서 대형교회의 물질주의와 성장주의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더 나아가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도덕적 타락, 세습 등이 청년들에게 커다란 분노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이들이 교회를 이탈하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교회에 남은 청년들 역시 더 이상 이러한 대형교회의 행태를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청년은 대형교회의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모습은 고대의 바벨탑을 쌓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답했다. 예수를 닮고자 하면 외형적 화려함과 물질적 충족을 추구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실용주의와 성장열풍에 취한 개신교

개신교는 시대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며 시대의 주류 담론과 비슷한 색채를 띠곤 했다. 문제는 한국 개신교가 개발독재 시절의 담론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실용주의적 성장을 중심으로 한 ‘번영신학’이 개신교 교회와 세속사회 간의 구분을 희미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개신교 교회는 간간히 ‘부흥회’라는 행사를 연다. 하지만 서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개신교의 부흥 행사는 개발독재 시절의 경험을 재현하려는 듯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즉 외면적인 부흥에 집착하는 것이다. 신자들을 더 많이 끌어 모으고, 더 규모가 큰 교회를 세우는 등, 담임목사가 유능하고 실적 좋은 목사가 되는 데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청년들은 이처럼 세속사회와 다를 바 없는 교회에 굳이 기대를 걸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이미 청년들의 삶은 고단하다. 경쟁에 지쳐있고 자기계발에 지쳐있다. 그런데 그런 노릇을 또 종교에서마저 반복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기에 떠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남은 개신교 신자 청년들 역시도 더 이상 외면적인 성장에 치중하는 신앙에 흥미를 갖지 않는다. 그게 교회의 외면적 성장이든, 자기 자신의 외면적 성장이든 말이다.

지적 성찰을 잊은 교회의 분위기

지적인 성찰을 잃은 감성주의는 종교의 본질을 흐릴 뿐 아니라, 외부와의 소통도 단절시킬 수 있다. @getty image

서 목사는 신앙에 지적·의지적·감정적 요소라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올바르게 갖춰져야 제대로 된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주로 발견되는 요소는 감정적 요소뿐이다. 교회는 신비 체험과 내면적인 희열에 몰입하고 있다. 때때로 의지적 요소와 결합하여 대중운동에 가까운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지적 요소, 즉 교리에 대한 관심은 심각하게 약화되어 있다.

감정적 요소, 즉 감성과 내적 도취에 치중하는 공동체는 개신교의 올바른 모델이 아니다. 신앙의 차원을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체험을 고백하는 차원으로 축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성찰 없이 몇 가지 교리만 구호화하여 외치며 자신들끼리의 결속만 추구하는 모습은 외부 사람들에게 적대감만 부추긴다. 개신교에 회의감을 느껴 몇 년 간 교회에는 나가지 않는다고 밝힌 한 청년은, 구체적인 교리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저 감정에 도취되어 자기들끼리 끌어안고 외부에 대해선 무조건적인 적대감만 보인다고 답했다. 그래서 이들에게 더 이상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와 사회의 대화

보통 개신교 교회는 진보의 입장에서 정반대에 있는 적대적인 진영, 수구적인 메시지만 가득 끌어안고 있는 집단, 그래서 진보적이고 반수구적인 청년들이 기피하게 되는 집단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의 개신교 신자들은 사회의 다른 기득권자들에게 분노하는 만큼 대형교회의 권위와 부패에 분노하고 있다. 더 이상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서 목사는 개신교가 이제는 사회와의 무조건적인 대립 전선을 형성하는 게 아니라 대화와 소통을 추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것이 교회의 사회·윤리적 책임이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여러 의제에 대해서도 개신교의 젊은 세대는 더 개방적인 자세를 보이고자 한다. 예컨대 동성애와 같은 이슈에서도 기성세대처럼 무조건적인 적대감을 보이며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경우 못지않게, 좀 더 인간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서 목사는 교회가 가진 특수성을 존중해야 하지만, 동성애자들을 사회적 보호의 테두리 밖으로 쫓아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서로 적대시해선 안 되며,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현명하게 교집합을 찾아가야 한다. 서로를 ‘사탄’처럼 대하지 말고 성숙한 의견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신교는 긴 역사 속에 풍부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청년들이 바라는 변화에 기여할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예컨대 개신교 신자들은 본인의 소신에 따라 음주를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 경우가 많다. 이런 태도는 종교라는 강력한 신념 덕분에 권위적인 문화가 서슬 퍼렇게 남아있던 시절에도 꿋꿋이 유지되었고, 결국 오늘날 술 강요 문화가 완화되는 데에도 일정 수준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개신교를 포함한 기성 종교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아야 할 이유에 대해 세속적인 가치를 초월한 방법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청년들 사이에서 약자들에 대한 혐오감이 커져가고, 언더도그마에 대한 반감 역시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에게 사회적·경제적 논리만으로 약자들을 돌보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는 것 역시 호소력이 떨어지고 있다. 종교의 메시지는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청년들에게 약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개신교는 정치적·사회적 논리가 접근하는 방식과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사회에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집단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정치적 진영논리에 따라 개신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거부하기보다, 이들 또한 중요한 대화의 상대자로서 배려할 필요가 있겠다.

* 청년기자단의 기사는 정의정책연구소와 오재영추모사업회의 도움으로 게재한다. 

필자소개
정의정책연구소 청년기자. 부산대 철학과 졸업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