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수출규제 반도체 관련
    국산화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허용?
    민주노총 “수출규제 품목 늘어나면 전 노동자에게 특별연장근로 허용할 거냐”
        2019년 07월 23일 06: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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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일본이 수출 규제한 반도체 핵심소재 ‘플루오린 플리이미드’, ‘리지스트’, ‘에칭 가스’ 등 3개 품목의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R&D) 등에 나선 기업에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기로 했다. 우리 산업의 대일 의존도를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부는 특별연장근로로 인한 노동자 건강권 위협 문제에 대한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핵심소재 개발이 단기간에 가능하지 않은 만큼 특별연장근로 허용이 실효성이 있느냐는 의문과 함께, 위기 때마다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제하는 정책 외엔 내놓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잇따른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일본의 수출 규제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대응할 계획”이라며 “수출 규제 품목 국산화를 위한 R&D, 제3국 대체 조달 관련 테스트 등 관련 연구 및 연구 지원 필수 인력에 대해 근로기준법에 따른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별연장근로는 천재지변이나 그에 준하는 재해·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수습하기 위한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제도로, 이 기간엔 현행 근로기준법상 주당 연장근로 한도인 12시간 이상 일해도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

    기업이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해 노동부 장관이 인가하면 해당 업종 노동자는 3개월간 하루 12시간 이상의 연장근로가 가능해진다. 기업은 인가 받은 3개월의 특별연장근로 기간이 끝나면 재신청도 할 수 있다. 한일경제 갈등의 장기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무제한 연장근로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이재갑 장관은 “(기업이 특별연장근로 인가 신청서를 제출하면) 지방고용노동관서에서 필요성 등을 확인해 최장 3개월의 범위에서 허용할 것”이라면서도 “불가피한 경우 3개월 단위로 재신청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기업이 장기간 특별연장근로를 쓸 경우 문제가 되는 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해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 장관은 “(특별연장근로는) 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인 만큼, 필요 한도에서 운용하게 될 것”이라며 “노동자 보호를 위한 사항은 필요할 경우 추가할 것”이라고만 했다.

    정부의 이번 방침은 기업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계 인사 간담회에서는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R&D에 어려움이 있다며 이러한 요구가 나왔다고 한다.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이 늘어나면 특별연장근로 허용 범위도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장관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면 이와 관련해 이런 물질(수출 규제 대상 품목)이 또 있나 봐야 한다”고 했다. 특별연장근로 허용 범위를 넓히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핵심소재 개발을 위해 3개월 특별연장근로가 적합한 대책이 될 수 있냐는 지적이다.

    “정부는 노동자 희생 강요하고 여론 잠재우는 재주 말고는 없는지 의심스러워”

    민주노총은 같은 날 낸 논평에서 “이런 식이라면 아베 정권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며 1천 개가 넘는 품목에 대한 무역보복조치에 나설 때는 한국 전체 노동자에게 특별 연장 노동을 강제하겠다는 얘기”라며 “도대체 이 나라 정부들은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 희생을 강요하고 여론을 잠재우는 재주 말고는 없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우리 산업 대일 의존도를 완화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은 노동시간 확대 등으로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제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산업 근본 경쟁력은 기껏 중소업체가 개발한 기술을 재벌회사가 강탈해가는 산업구조를 바꾸는 것이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 관료들 인식수준으로는 지금이 노동집약 산업을 일으키는 산업화 시대나 연구원들 연구실에 몇 달씩 처박아 결과를 짜내는 개발도상국 시대냐”며 “일본이 수출 규제로 삼은 세 개 품목과 관련한 업체 규모나 연구․개발 방향을 파악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정부는 민족주의로 흐르는 여론에 급급해 만만한 노동자 상대로 언 발에 오줌누기식 정책 남발 말고, 냉정하고 치밀한 외교 전략과 공정한 중장기 산업정책 수립에 애쓰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도 23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일본의 부당한 무역보복으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도록 기업을 지원하는 것을 누가 반대하겠느냐”며 “하지만 특별연장근로는 천재지변의 상황 등 재난관리법을 엄격히 해석해 시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당한 무역 보복을 생명 안전 규제의 부당한 훼손으로 대응해서는 문제는 더 커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 의원은 “주 최장 52시간은 올해 갓 태어난 제도”라며 “반도체 소재산업의 기술력 차이가 마치 1-2년 사이에 이 제도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면,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노동자의 건강권을 소재 산업의 경쟁력과 대립되는 것으로 보는 경제 기득권의 시각을 수용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연구개발 지원, 안전시설과 인원에 대한 지원 등 생명 안전을 지키면서 반도체 소재 국산화를 지원할 방법은 많다. 예외를 확대하는 조치는 지원이 아니며 결국 산업재해 증가와 같은 다른 문제를 낳게 될 뿐”이라며 “정부는 위험천만한 규제 완화 방침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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