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리아재비’ 이름의 유래
    [푸른솔의 식물생태] 전통지식과 근대식물학의 연결
        2019년 07월 23일 10: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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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리아재비란?

    1. 미나리아재비의 개요

    미나리아재비<Ranunculus japonicus Thunb.(1794)>는 미나리아재비과 미나리아재비속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전국 각지에서 야생하고 일본, 중국, 대만 등지에도 분포한다. 산과 들에 흔하게 자란다. 전체에 흰 털이 난다. 잎은 깊게 3~5갈래로 갈라지지만 홑잎(단엽)이다. 꽃은 5~6월에 줄기 끝에서 취산꽃차례를 이루며 노란색으로 핀다. 열매는 수과로 모여서 열매덩이를 이룬다.

    <사진1> 미나리아재비의 잎과 줄기

    <사진2> 미나리아재비의 전초

    <사진3> 미나리아재비의 꽃

    미나리아재비에 대한 중국명 毛茛(mao gen)는 독초인 풀(茛)인데 식물체에 털이 많은 것에서 유래했고, 일본명 キンポウゲ(金鳳花)는 노란색의 봉황과 같은 꽃이 피는 식물이라는 뜻으로 꽃의 모양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면 우리말 이름인 미나리아재비는 어떤 뜻에서 유래했을까? 미나리아재비는 ‘미나리’라는 이름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먼저 미나리를 알아 보자.

    2. 미나리와 미나리아재비의 유사성?

    <사진4> 미나리의 새싹

    <사진5> 미나리의 꽃(사진촬영자 : SOKEY님)

    미나리<Oenanthe javanica (Blume) DC.(1830)>는 산형과 미나리속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미나리아재비와는 과(family)가 서로 다른 식물이다. 미나리와 미나리아재비를 형태, 생태 그리고 쓰임새라는 측면에서 둘을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사진6> 미나리와 미나리아재비의 형태, 생태 및 쓰임새의 비교

    ​3. 미나리아재비라는 이름의 유래?

    식물명에서 붙는 ‘아재비’는 아저씨의 낮춤말로 호명된 식물과 닮았다는 뜻이므로, 미나리아재비는 미나리와 닮았다고 하여 유래한 것으로 흔히 설명된다. 그러나 미나리와 미나리아재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둘은 어느 점에서도 닮거나 유사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미나리아재비의 유래에 대해서 이우철의 『한국 식물명의 유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미나리와 유사하다는 뜻이나 미나리와는 거리가 멀다[이우철,『한국 식물명의 유래』, 일조각(2005), 241쪽]

    ‘유사하다는 뜻이나 거리가 있다’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난해한 언명으로 인하여 미나리아재비라는 이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고 있다. 미나리아재비의 ‘아재비’를 아저씨의 의미가 아니라 아이를 잡다는 뜻의 ‘아잽이’가 변한 것으로 독성이 있는 식물인 미나리아재비를 잘못 먹어 아이들 생명을 잃었다는 뜻으로 보거나, ‘아재비’를 ‘비슷하지만 거리는 멀다’라고 문맥대로 보아 서로 닮지도 않은 식물에 아재비라는 명칭을 넣은 온당치 않은 처사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견해는 미나리와 미나리아재비의 형태와 생태를 고찰한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 그러나 미나리아재비라는 이름이 등장한 시대 그리고 그 시대적 상황과 그 이후 근대 식물분류학에 따라 종(species)을 분류의 단위로 재편할 때 식물명이 정착되는 과정을 살펴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제와 맞지 않다. 역사에 대한 고찰이 실종되고 현재의 관점에서 명칭의 유래를 살핀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민간어원설이다.

    ​Ⅱ 미나리아재비라는 이름의 기록과 쓰임새(용도)

    ​1. 옛 문헌에 기록된 미나리아재비

    미나리아재비 또는 그에 가르키는 다른이름을 기록한 문헌과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 물명고(1824) : 毛茛/털잇ᄂᆞᆫ초약/毛芹
    – 녹효방(1873) : 芹菽/미나리아ᄌᆡ비
    – 의방합편(19세기) : 毛建草/미나리아쟈비

    이 중에서 미나리아재비(미나리아 ㅈ.ㅣ비)라는 한글 이름이 최초로 보이는 조선 후기 한의서 『녹효방』(1873)의 기록을 먼저 살펴보자.

    <사진7> 이종진, 『녹효방(錄效方)-소초초략』,1873년 저술

    입과 눈이 돌아가는 구안와사(口眼喎斜)라는 병에 미나리아재비의 잎을 붙여 치료한다는 내용으로 한글명으로 ‘미나리아ㅈ.ㅣ비’를 기록하고, 한자로 ‘芹菽'(근숙)을 병기했다. ‘芹'(근)은 미나리를 뜻하고, ‘菽'(숙)은 콩을 뜻하지만 때로 아재비 ‘叔’과 동자(同字)로 사용하므로(예컨대, 媤菽), ‘芹菽'(근숙)은 미나리의 아저씨(아재비)라는 말 그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미나리아재비의 ‘아재비’를 아이를 잡는다는 뜻의 ‘아잽이’로 해석하는 것은 문헌의 기록과 배치되는 것으로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2. 미나리아재비에 대한 전통적 쓰음새(용도)

    조선 후기에 저술된 녹효방(1873)과 의방합편(19세기)은 한의약 서적이다. 1820년대 저술된 실학자 유희의 『물명고(物名考)』(1824)에서 毛茛(모랑 또는 모간)은, 중국의 의학서인 『본초강목』(1596)에서 ‘毛茛’을 한약재로 기록했고 물명고에 기록된 한글명 ‘털잇ᄂᆞᆫ초약 ‘이라는 이름은 털이 있는 초본성 식물로 약으로 사용한다는 뜻이므로 약재로 사용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생약명 毛茛(모랑 또는 모간)은 17세기에서 저술된 『동의보감』(1613)이나 18세기에 저술된 『제중신편』(1799)에는 그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즉, 19세기 무렵부터 약재로서 문헌에 발견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나리아재비는 독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새싹을 삶아서 데치는 방법을 사용하여 독을 빼고 식용으로 사용했다. 미나리아재비를 식용한 것에서 대해서 정태현·林泰治 공저의 『조선산 야생 식용식물』(1942)은 어린 잎(嫩葉)을 식용하는 것으로 기록했고, 국립수목원에서 발간한 『한국의 민속식물: 전통지식과 이용』(2017)은 주로 어린 잎을 전국적으로 식용한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정태현·林泰治 공저의 『조선산 야생 식용식물』, 임업시험장(1942), 121쪽; 국립수목원, 『한국의 민속식물: 전통지식과 이용』, 국립수목원간(2017), 397쪽 참조].

    ​그런데 미나리아재비를 언제부터 식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조선 후기의 식용 식물에 대한 상세한 조사 기록이 없어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19세를 경과하면서 한반도에는 지속적인 인구 증가가 있었고, 정치적 혼란에 따른 탐관오리 등에 의한 수탈이 일상화되면서 구황 목적의 식용 식물이 대폭적으로 증가하였으며, 『물명고』(1824)에 미나리아재비에 대한 별칭으로, 현재 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널리 식용한, 미나리를 빗댄 毛芹(모근: 털이 있는 미나리라는 뜻)이 있는 것에 비추어 그 즈음에는 이미 식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나리아재비에 대한 전통적 인식방법과 과학의 결합

    1. 문제점

    현재의 미나리아재비<Ranunculus japonicus Thunb.(1794)>와 위 녹효방에 기록된 ‘미나리아재비(미나리아ㅈ.ㅣ비)’가 같은 식물을 가르키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 둘 사이에는 ‘근대 식물분류학’과 ‘전통적 인식방법’이라는 전혀 서로 다른 인식 방법과 틀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2. 근대 식물분류학(taxonomy)과 전통적 식물인식 방법의 차이

    칼 폰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에 의해 기초된 식물분류학(taxonomy)은 공통의 선조로부터 진화해 나온 하나의 진화선(evolutionary line)을 대표하는 분류학적 단위로서 분류군(taxon)을 설정하고, 분류군의 기본적 단위를 식물 자체의 공통적 형질을 가진 종(species)으로 보고 있다. 식물 자체의 공통된 형질을 기초로 하여 종을 분류의 최소 단위로 설정하는 것은 근대 식물분류학의 고유한 방법론이다.

    반면에 근대 식물분류학이 ​확립되기 이전의 식물에 대한 종래의 전통적 인식방법은 식물 자체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식물을 사용하는 용도에 따른 것이었다. 약용, 식용, 화훼, 목재이용, 종교 등의 목적으로 식물을 인식하고 명칭을 부여하였다. 이러한 결과 식물 자체 형질로는 서로 다른 종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식물을 사용하는 용도가 같은 경우에는 같은 식물로 인식되어 명칭이 부여되기도 하였다.

    예컨대, 한약명 하수오(何首烏)는 마디풀과의 하수오<Fallopia multiflora (Thunb.) Haraldson(1978)를 의미하지만 때로는 약성이 비슷한 박주가리과의 큰조롱<Cynanchum wilfordii (Maxim.) Hemsl.(1889)>을 의미하기도 했다. 또한 동의보감(1613)에 기록된 羊蹄根/솔옷불휘는 하나의 종이 아니라 비슷한 성분를 가진 소리쟁이속(Rumex) 식물을 통칭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3. 미나리아재비에 대한 전통적 인식방법

    미나리아재비는 19세기경부터 약용과 식용으로 사용했는데 미나리아재비와 그 근연식물을 전통적 인식방법에서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알려주는 단서가 있다. 19세기 초엽 실학자 유희가 저술한 『물명고』(1824)가 그것이다.

    <사진8> 유희, 『물명고(物名考)』(1824년 저술 추정) 중 無情類 草下 부분

    위에서 보여지듯이,『물명고(物名考)』(1824)는 현재의 미나리아재비속(Ranunculus) 식물을 크게 毛茛(모랑/모간)과 石龍芮(석용예)로 대별했다. 毛茛(모랑/모간)은 전체 및 잎에 털이 있기 때문에 ‘털 있는 초약(털잇ㄴ.ㄴ초약)’, 石龍芮(석용예)는 잎에 빛(光)이 돌며 전체 및 잎에 털이 없기 때문에 ‘털 없는 초약(털업ㄴ.ㄴ초약)’이라고 한다고 기록했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당시에는 식물분류학에 근거한 종(species)의 개념이 없었으므로, 식물에 대한 전통적 인식방법에 따라 위 毛茛(모랑/모간)과 石龍芮(석용예)는 유사한 식물을 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대별하였고 이러한 방식으로 식물을 인식한 것이었다.

    <사진9>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따른 미나리아재비속(Ranunculus) 식물의 종 분류

    ​『물명고(物名考)』(1824)에 기록한 毛茛(모랑/모간)과 石龍芮(석용예)를 국가표준식물목록(2018)에 기록된 현재의 종 분류에 대비하면 아래와 같이 대응시킬 수 있다.

    – 毛茛(모랑/모간) : 미나리아재비<R. japonicus>, 왜젓가락나물<R. quelpaertensis>, 젓가락나물<R. chinensis>, 털개구리미나리<R. cantoniensis>(상대적으로 털이 있음)

    – 石龍芮(석용예) : 개구리자리<R. sceleratus>(잎에 윤기가 있으며 털이 없음)

    이와 같이 구별하여 이해하면 전통적 인식방법에 따른 毛茛(모랑/모간=미나리아ㅈ.ㅣ비)이라는 범주에 비로소 어린 잎이 겹잎(복엽)이고 물이 많은 곳에서 미나리와 함께 자라는 식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가에 만들어진 미나리꽝에 쉽게 들어와 함께 자라면서 독이 있어 쉽게 먹을 수는 없으나 그래도 식용할 수 있었고, 잎이 조금 더 크고 털이 있지만 그래도 어린 잎은 미나리와 비슷한 식물. 그래서 미나리를 닮은 식물. 아래 사진에서 확인되듯이 젓가락나물<R. chinensis>과 털개구리미나리<R. cantoniensis> 등이 바로 그들이다.

    <사진10> 털개구리미나리의 어린 잎

    <사진11> 젓가락나물의 어린잎

    <사진12> 개구리자리의 어린잎

    젓가락나물<R. chinensis>과 털개구리미나리<R. cantoniensis> 등은 종래 전통적 인식방법에서 미나리아재비<R. japonicus>와 분리하여 인식되지 않았고 미나리아재비<R. japonicus>와 더불어 毛茛(모랑/모간=미나리아ㅈ.ㅣ비)이라고 통칭되어 불리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나리아재비(미나리아ㅈ.ㅣ비)라는 전통적 명칭은 미나리와 함께 자라면서 어린잎을 식용했던 것으로 생김새가 미나리와 닮았지만 털이 많아 다른 것으로 구별된 식물이었다. 그리고 물가라는 분포지를 벗어나 그 식물과 유사하고 비슷하게 약용과 식용하는 식물 전체를 아울러 함께 부르던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4. 전통적 지식과 과학의 결합 그리고 미나리아재비

    <사진13> 정태현·도봉섭·이덕봉·이휘재, 『조선식물향명집』, 조선박물연구회(1937), 69쪽

    毛茛(모랑/모간=미나리아ㅈ.ㅣ비)으로 통칭되던 식물 명칭을 식물분류학(taxonomy)에 근거하여 Ranunculus japonicus Thunb.라는 종(species)의 명칭으로 정착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조선 식물을 연구한 조선박물연구회 소속 식물학자 정태현, 도봉섭, 이덕봉 및 이휘재 4인이 공저한 『조선식물향명집』에서 비롯되었다.

    왜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은 미나리아재비(미나리아ㅈ.ㅣ비)로 통칭되었던 Ranunculus속의 여러 식물 중에서 하필 미나리와 형태적으로 전혀 닮은 것이 보이지 않는 Ranunculus japonicus Thunb.라는 종에 ‘미나리아재비’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여기에는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이 식물분류학(taxonomy)이라는 과학의 토대 위에 조선명을 결합시키고자 한 고유한 ‘사정(査定)’의 원리가 있었다.

    <사진14> 정태현·도봉섭·이덕봉·이휘재, 『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 조선박물연구회(1937), 4쪽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은 조선에 분포하는 식물을 식물분류학이라는 과학의 토대 위에서 정리하는 과정에서 조선명을 명명(命名)하거나 부여(賦與)하는 과정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조선 사람들이 부르는 실제 조선명을 조사하여 어떤 이름이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조선명으로 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작업을 조사해서 정한다는 의미에서 ‘사정(査定)’이라 했고, 그 사정의 제1원칙을 “조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조선명은 그대로 채용함”으로 정하였다.

    이러한 『조선식물향명집』의 사정요지에 비추어 보면, Ranunculus japonicus Thunb.라는 종을 미나리아재비라고 한 것은 실제 당시 조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명칭이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조선의 다수 언중들은 최초 미나리의 분포지에서 함께 자라던 젓가락나물<R. chinensise>이나 털개구리미나리<R. cantoniensis DC.> 등이 아니었음에도, Ranunculus japonicus Thunb.라는 종을 미나리아재비로 인식하였고 그 인식을 반영한 것이 『조선식물향명집』에 기록된 이름이라는 것이다.

    왜 당시 언중들이 Ranunculus japonicus Thunb.라는 종을 ‘미나리아재비’로 인식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당시의 언어 사용의 실태를 조사한 기록들이 있지 않아 현재로서는 그 내막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미나리와는 형태적으로 차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나리아재비속(Ranunculus) 식물 중에 Ranunculus japonicus Thunb.라는 종이 전국적으로 보다 흔하게 분포했고, 꽃이 상대적으로 다른 종들에 비해 크므로 외형적으로 쉽게 눈에 띌 수 있었으며, 약용으로도 해당 종을 널리 사용했었던 것에 비추어 볼 때 언중 들 사이에서 명칭의 전이(轉移)가 일어났을 가능성은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생약명 毛茛은 Ranunculus japonicus Thunb.의 지상부를 의미한다는 것에서 대해서는 안덕균, 『본초도감』, 교학사(2014), 61쪽 참조].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나리아재비라는 이름은 실제로 미나리와 유사한 지역에서 자라고 형태도 유사하여 미나리와 닮았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었다. 최초 미나리아재비라는 이름은 유사한 여러 식물을 통칭하는 이름이었는데 이후 Ranunculus japonicus Thunb.라는 종을 주로 지칭하는 이름이 되어 형태적으로 미나리와는 차이를 가지게 된 것이다.

    Ⅴ 결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리아재비의 ‘아재비’가 아저씨의 뜻으로 호칭된 식물과 닮았다고 붙여진 것이라면, 가사 언중의 인식이 Ranunculus japonicus Thunb.라는 미나리와는 전혀 닮지 않은 식물을 일컫는 것으로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과학으로서 식물을 연구한 전문가로서 언중의 잘못된 인식을 교정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이 조선명을 정리하던 1937년의 조선인이 조선의 말과 글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제되었던 시기이었고,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조선인으로서 식민의 시대에 사라져가던 피지배민의 언어를 과학의 토대 위에서 살리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였다.

    “식물학의 보편어인 라틴어로 연구된 조선식물에, 향명 즉 한글 이름을 부여하여 조선의 전통 지식과 근대 식물학의 연결고리를 되살리는 작업이 이들의 첫 작업이었다. 피지배민의 언어와 전통을 복원함으로써, 근대적 연구로 대체되면서 사라져가던 조선 식물의 조선적 성격을 살려내려는 시도였다.”[이정, 『식민지 조선의 식물연구(1919~1945); 조일 연구자의 상호 작용을 통한 상이한 근대 식물학의 형성』(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250쪽 참조].

    그들에게 조선인이 부르는 조선명은 조선인을 조선인이 되게 하는 소중한 것이었으므로, 전문가로서의 위치는 조선인이 부르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서나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었다. 흔한 해석처럼 미나리아재비라는 이름은 미나리와 거리는 멀지만 미나리와 닮았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해설이 누군가에는 이해되지 못할 것이 될지라도, 선조들이 식물과 함께 삶을 영위하면서 만들어 사용하였던 이름이고 그것이 지켜져 우리에게 이어진 것이다. 미나리아재비라는 이름은 하나의 식물 종을 일컫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우리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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