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당 5만원 노동자라면 438년 감옥살이형"
        2006년 07월 21일 11: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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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6억원 횡령죄를 인정해놓고도 국익에 기여한다고 집행유예 선고한다는 게 말이나 되능교? 일반 국민들은 국가발전에 기여 안해서 징역 살린단 말이냐고?” 두산중공업 해고노동자인 전대동(44)씨는 재판결과를 보고 울분을 참지 못했다.

    7월 21일 오전 9시 50분. 서울고법 형사 303호 법정은 재판 시작 전부터 두산그룹 직원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심지어 피고인들까지 법정에 들어가지 못해 선고 순서를 뒤바꿔 두산중공업 횡령 사건을 먼저 선고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두산중공업 노동자 6명은 사람들을 밀치고 간신히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 7월 21일 오전 9시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두산중공업 김창근 해고자가 "박용성 전 회장 처벌"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 금속노조)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이인재)는 두산그룹 박용오 박용성 전 회장에 대한 검찰과 피고의 항소심을 모두 기각했다. 법원은 “286억원이라는 거액을 횡령해 경제 전반의 도덕성을 크게 훼손했다”면서도 “국익에 기여한 바가 크다”며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이 끝나자 100여명이 두산그룹 직원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며 기쁨의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두산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은 절망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고자 김창근(51)씨는 “예상은 했지만 재판부에 너무나 실망스럽다”고 말했고, 또 다른 노동자는 거친 욕을 쏟아냈다.

    새벽에 창원에서 올라온 두산중공업지회 김명호 쟁의부장(35)은 “역시 재벌 앞에서는 약해지는 법원 아니겠습니꺼? 대한민국에서 돈으로 안되는 게 어딨능교”라며 절망했다.

    노동자 일당 5만원 회장님은 1천만원

    이날 재판부는 박용오 박용성 전 회장에게 벌금 80억원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하는 경우 1천만원씩을 1일로 환산한 기간 노역장에 유치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박용성 회장이 벌금을 내지 않으면 800일(26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법원이 노동자들처럼 일당 5만원으로 계산하면 박용성 회장은 16만일, 즉 438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

    2000년 12월 두산그룹이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이후 5년 동안 20여명의 노동자가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구속됐다. 노동자들은 불법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시키고, 286억을 횡령하고 3천억에 가까운 분식회계를 조성한 재벌에 대해서는 국익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이 한국의 법원이었다.

    두산 노동자 1년 동안 1인 시위도 허사로

    두산중공업 해고자들은 두산그룹 비리사태가 터진 2005년 7월부터 지금까지 만 1년 동안 법원과 청와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해왔다. 이들은 월요일 창원에서 올라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점심 저녁 법원 앞에서 “박용성 회장을 구속하라”며 시위를 벌였고, 구속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김춘백 부지부장은 “두산그룹의 악랄한 노조탄압으로 배달호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도 법원은 박용성 일가를 처벌하지 않았었다”며 “이번 판결로 박용성 일가가 다시 그룹에 복귀해 노사관계가 더욱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 서울고등법원이 전 박용오 박용성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후 해고자들이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사진 금속노조)
     

    마흔 넘은 노동자들이 쓸쓸이 피씨방으로

    박용성 전 회장의 항소심 공판에서조차 집행유예가 선고되고 두산 직원들은 환호성을 지르던 날, 두산중공업에서 쫓겨난 해고자 4명은 쓸쓸히 법원 앞 피씨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10대 아이들이 게임을 즐기는 그곳에서 마흔을 훌쩍 넘긴 그들은 “돈 앞에 재벌 앞에 무릎 꿇은 사법부”라는 성명서를 작성해 인터넷 이곳저곳으로 퍼날랐다.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감옥에 4번을 갔다 온 김창근 씨를 비롯해 강웅표(3회) 전대동(1회) 김춘백(1회) 해고자들은 박용성 전 회장의 집행유예 선고 앞에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법원은 이들에게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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