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업자본의 인수합병
    [지구화시대 자본주의-‘후기 국독자’] 3장 지구화시대 금융업자본①
        2019년 07월 17일 10: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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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당시의 자본주의에 대해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개념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이 같은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우리는 그간 이 문제를 별반 고려하지 않은 채 행동해 왔다. 하지만 변혁운동의 전진을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자본주의가 어떤 단계인지를 분명히 해야 하리라고 본다. 본 글의 연구주제는 간단하다. 즉, 지구화시대인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도대체 어떤 자본주의인가, 여전히 국가독점자본주의인가, 아니면 새로운 국제독점자본주의 단계에 진입하였는가?

    이를 위해 설정된 본 글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제1장 신자유주의의 본질(3회 게재), 제2장 국제독점자본의 형성과 발전(2회 게재), 제3장 지구화시대 금융업자본(이번 회부터), 제4장 현대제국주의 ; 제5장 다극화와 신 국제질서이다.<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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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화시대 자본주의―‘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론’⑤] 제2장 국제독점자본 일반-2

    제3장 지구화시대 금융업자본

    앞서 제2장에서 두 차례에 걸쳐 ‘국제독점자본 일반’에 대해 살펴보았다. 본장에서는 ‘금융업자본’을 다룬다. ‘금융업자본’이라 함은 은행 및 기타 금융기관, 즉 보험회사 및 각종 투자펀드 등과 같이 금융업에 종사하는 자본을 말한다. 이는 통상 제조업과 상업영역에서 활동하는 산업자본과 구분되는 자본분파를 지칭한다. 한국 이론진영 일각에서는 이를 그냥 ‘금융자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양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구분될 필요가 있다.

    지구화시대 금융업자본 역시도 크게 보자면 국제독점자본의 범주 속에 포함된다. 이 점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다국적기업의 개념 속에 이 부류와 관련한 업무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예컨대 유엔의 관련기준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다국적기업이 포괄하는 업무는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①제품제조·광물채취와 판촉②상품의 수출입③특허·상표와 기술의 이전과 사용④국제금융영역의 금융대부⑤부동산업무 등.

    실제로 오늘날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에는 금융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본 장에서 별도로 금융업자본을 다루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지구화시대에 들어 이 분야의 자본 활동이 유난히 활발해졌으며, 그 규모가 크고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과거에 비해 훨씬 중요해졌다. 때문에 오늘날의 지구화경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금융업자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둘째, 이 부류의 자본운동은 본래 일반 산업자본 운동과는 다른 자기 나름의 특성을 갖고 있다.

    특히 지구화시대에 들어 ‘경제의제화’ 현상(Fictitious capital, 擬制資本, 본장 제3절에서 다룸)이 유례없이 진행됨으로 인해 산업자본과의 괴리가 한층 크게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이 부류의 자본운동을 지나치게 신비화하거나 과대평가하는 경향도 생겨난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금융업자본’의 논리와 연관해서 본다든지, 산업자본과 금융업자본의 이해가 마치 심각하게 대립하는 것 인양 치부하는 태도 등이 그것이다. 본장에서의 지구화시대 금융업자본과 관련된 논의는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수정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앞으로 3회 연재할 계획이며, 먼저 지구화시대 금융업자본이 출현하는 과정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1. 지구화시대 금융업자본의 집중

    • 경과 및 사례

    역사적으로 볼 때 활발한 산업자본 간의 인수합병은 동시에 상응하는 은행합병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양자 간에 긴밀한 연관이 있음을 의미한다. 산업자본의 규모 확대와 실력 강화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지원하는 은행과 다른 금융기관의 상응한 변화를 요구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제2장에서 다루었듯 1990년대 하반기 전 세계적인 기업 인수합병의 유례없는 규모와 열기는 선진 각국의 은행 및 기타 금융기관의 비슷한 현상을 동반하였다. 이하 그 과정을 소개하도록 한다.(1)

    금융기관 간의 인수합병은 사실상 제5차 인수합병 물결의 중요한 구성부분이었다. 그것은 거액의 거래규모, 국경을 넘는 국제적 성격, 그리고 서로 다른 업무의 금융기관 간 합병이라는 세 측면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준다.

    (1) 우선 규모면에서 보자면, 당시 대형은행 간의 인수합병은 산업부문과 서비스업종 기업의 인수합병과 마찬가지로 그 액수가 매우 컸다. 예컨대 1996년 1월 미국 웨이얼스파커은행은 123억 달러에 미국 퍼스트인터스테이트은행(First Interstate Bank)을 인수하였다. 1997년 8월 미국 국민은행은 155억 달러에 바니터은행을 인수하였으며, 같은 해 3월 미국 트래블러스그룹(Travelers Group)은 90억 달러에 솔로몬형제(Salomon Brothers Inc.)를 인수하였다. 같은 해 11월 제일연합은행(First Union Corp)과 커스타이츠금융회사가 합병을 선언하였는데 그 금액은 166억 달러에 달했다.

    1998년에 들어서 은행 인수합병의 물결은 더욱 거세어졌다. 그해 4월 13일 미국 국민은행(National Bank)과 미주은행(Bank of America)의 합병이 선언되었을 때 그 금액은 600억 달러에 이르렀으며, 합병 후의 자산은 5700억 달러나 되었다. 같은 날 미국제일은행(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과 제일시카고은행(Bank One Corporation)이 합병을 선언하였는데, 금액은 300억 달러로 합병 후에는 총자산 2300억 달러를 가진 미국의 제5대 은행이 되었다. 같은 시기 미국 은행계의 거두 시티은행과 트래블러집단은 820억 달러의 거액합병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서비스 회사를 만들어 주식거래에서 담보대출에 이르는 일체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일주일 사이에 이처럼 연이어 대규모로 발생한 금융업계의 인수합병은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경제평론가들은 이는 미국 금융업계의 대규모 재편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세계 금융업계가 새로운 재편 시기에 들어섰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금융업계의 대규모 인수합병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99년 들어 전 세계적으로 은행 및 금융기관의 인수합병 물결이 다시 일어났다. 그 해 상반기 미국 내 가장 큰 인수합병인 230억 달러 규모의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에 의한 미국 GE보험회사의 인수합병이 발생하였으며, 제일연합은행이 와코비아(Wachovia)를, 시티은행이 125억 달러로 멕시코 제2은행인 멕시코국민은행을 인수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2000년에 들어선 후 기업 인수합병 물결이 점차 쇠퇴하는 것과 함께 은행과 금융기관의 인수합병 열기도 조금씩 식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대규모 인수합병은 여전히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는데, 이 해에 미국 체이스뱅크집단은 J.P모건그룹을 인수함으로써 합병 후 회사명을 JP모건체이스뱅크(JPMorgan Chase & Co)로 개명한 총자산 6600억 달러의 초대형 은행을 탄생시켰다.

    이상은 주로 미국에 관한 사례들을 소개하였는데, 당시 대형은행 간의 인수합병은 미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유럽과 일본 및 세계 기타 지역에도 파급되었으며 규모면에 있어서도 미국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예컨대 1999년 상반기 독일의 알리안츠 보험그룹(Allianz SE.)은 210억 달러에 둘리은행을, 같은 해 8월 파리국민은행은 파리은행을 합병하여 총자산 8020억 달러의 초대형 금융계 항공모함을 만들어 냈다. 일본에선 2000년 9월 제일권업은행(Dailchi Kangyo Bank)과 후지은행 및 흥업은행 3개 사가 합병하여 미즈호홀딩스(Mizuho Holdings Inc.)를 설립하였으며 그 총자산은 1.3조 달러나 되었다. 2001년4월 일본 사쿠라은행과 스미도모은행 및 동양신탁은행이 합쳐서 ‘일본연합 금융지주그룹’을 설립하였다. 또 동경미쓰비시 은행, 미쓰비시 신탁은행,일본신탁은행 3사가 합쳐 ‘미쓰비시 동경금융그룹’을 설립하였다.

    2001년 3월 즉 일본 미즈호홀딩스가 성립되어 세계 최대의 은행그룹이 된 반 년 후에, 독일의 도이치은행은 300억불을 투자해서 경쟁상대인 드래스튼은행을 매입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만약 이 합병이 성사된다면 그 자산은 1.2조 달러에 이르게 되는데, 본래 그 의도는 미즈호홀딩스를 넘어서서 세계 최대 은행 자리를 되찾겠다는 것이었지만 이 합병은 실제 성사되지는 않았다.

    당시 세계 금융업계의 대대적인 인수합병 바람은 은행부문에만 그치지 않았으며, 비(非)은행금융기관들도 그 인수합병 열풍에 적극 참여하였다. 예컨대 당시 생명보험사의 인수합병 수자와 규모가 비교적 크게 증가하였는데, 스위스 재(再)보험사가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1996년 이전에는 생명보험사의 인수합병액수가 50억 달러를 넘어선 적은 한 건도 없었다. 그러나 1998년 미국 최대의 재보험사인 링컨금융그룹이 같은 미국 시그나사의 개인생명보험과 연금업무 및 애트나(Aetna)사의 국내 개인생명보험 업무를 인수할 무렵에는 그 총액은 이미 50억 달러를 크게 초과하였다. 1999년 3분기까지 주인이 바뀐 생명보험사의 인수합병 총액은 530억 달러에 이르렀으며, 그중 50억 달러 이상은 4건으로 총 액수는 270억 달러를 초과하였다.

    (2) 다음으로, 금번 금융업계의 인수합병은 국내에만 한정되지 않고 국경을 넘는 국제적 인수합병도 적지 않게 발생했다. 각국의 문화적 차이, 지불방식, 은행관련 세금제도 등의 차이 때문에 은행의 국제적 인수합병과 관련된 문제는 산업분야 대기업 간의 인수합병에 비해 더욱 복잡하다. 때문에 이번 인수합병 물결 초기에는 은행 인수합병이 주로 각국 내부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전자교역 수단의 광범위한 응용과 금융지구화 추세의 강화에 발맞추어 국제적 인수합병은 차츰 거스를 수 없는 추세를 형성하였다.

    1998년 이래 미국의 많은 투자은행(증권회사)이 유럽대륙의 독일과 스위스 등의 은행에 합병되었다. 예컨대 스위스 제2의 대형 은행그룹인 크레디트은행은 2000년 115억 달러를 출자해서 관리자산이 12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대형투자은행 도날드슨-루프킨-젠레트은행을 인수한다고 선언하였다. 같은 해 11월6일 스위스연합은행(UBS)은 118억 달러에 미국 페인 웨버 투자자문회사를 인수하였다. 크레디트은행은 스위스의 주요 은행 가운데 하나로 전 세계 금융서비스 업무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2000년대 초 당시 주로 유럽 금융기관을 위해 대략 1조 달러의 자산관리를 하고 있었다. 페인 웨버는 미국의 제4위 투자자문회사로 미국 내에 385개 지점과 2만 명의 고용직원을 거느리고 있는데, 270만 명의 개인과 기관투자자를 고객으로 보유하고 있고 그 관리자산만 4500억 달러에 달하였다. 이 인수거래의 성사로 양자는 3만9천 명의 직원을 가진 세계 최대의 투자서비스회사를 탄생시켰다. 스위스연합은행은 이 합병 덕택으로 향후 미국의 부유층 고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선진국 금융기관들의 국제적 인수합병물결은 일부 개발도상국가에도 파급되어 특히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영향을 미쳤다. 19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여파로 라틴아메리카계 은행들도 상당수가 곤경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위기탈출의 방편으로 이들 은행들은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주동적으로 자국은행을 외국자본에 매각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처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실행한 사유화와 금융부문의 대외개방은 미국과 유럽계 은행들이 이 지역에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1997년 1월~2000년 5월 사이에 선진국 금융기관들은 라틴아메리카에 총 64.8억 달러를 투자하여 현지 금융자산을 인수하는데 사용하였다. 그중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국가는 스페인과 미국이며, 이들 자본들은 집중적으로 브라질,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 등 국가에 투자하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999년 미국의 시티은행은 멕시코국민은행을 인수하였는데, 이는 신흥공업국가의 역사상 가장 큰 인수거래에 속하였다. 그 결과로 서구선진국 은행이 라틴아메리카 은행자산 중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확대되었다. 2000년 현재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에서 이들 외국계 은행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45%이며, 멕시코에선 40%, 브라질과 칠레에서는 각각 22.5%와 22.4%에 이른다.

    (3) 금번 금융기관 인수합병의 또 다른 특징은 서로 다른 업무 기관 간의 인수합병이 빈번하다는 점이다. 이는 은행과 다른 금융기관의 합병 내지는 기타 각종 서로 다른 금융기관 간의 합병을 포함하였다. 앞서 열거한 인수합병 중에서도 서로 다른 업무 기관 간의 인수합병은 적지 않았다.

    몇 가지 실례를 들어보면, 1998년 4월 미국 금융서비스회사 메인랜드사와 그린트리 금융회사는 76억 달러 거래액의 합병을 선언하였다. 합병 후 회사는 생명보험과 의료보험 및 소비자신용업무에 전문 종사하는 최대 기업이 되었다. 1999년 독일 알리안츠 보험회사(이 회사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주요업무로 한다)는 거액을 투자하여 미국의 고정금리투자에 종사하는 피모커 자산관리회사를 합병하였고, 2000년에는 미국 니콜라스‧알프레이트 금융관리회사를, 2001년 초에는 다시 독일에 1150개 지사를 둔 드래스덴 은행을 합병하여 그 산하인 독일투자신탁회사의 계열사로 만들었다. 이 같은 합병을 통해 알리안츠는 자산관리업무와 공공분야투자펀드를 확장하면서 자신의 전통적인 연금분야의 실력을 강화하고, 고객을 위한 인터넷은행 서비스를 제공하여 금융서비스 기능을 더 한층 높일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은행과 기타 금융기관의 인수합병이 왕성한 기세로 진행되는 동시에 국제 증권시장 간에도 합병준비에 박차를 가하여 일부는 실제 실행에 옮겨지기도 하였다는 사실이다. 1999년 11월 미국 증권거래자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Securities Dealers, 약칭NASD)는 런던에서 그 산하 하이테크주식 거래 위주인 나스닥을 일본소프트뱅크사와 손잡고 나스닥일본 증권거래소를 성립한다고 선언하였다. 런던금융가의 증권전문가들은 이는 나스닥 증권거래소가 24시간 거래를 하는 ‘범 유럽증권시장’ 계획을 착수한 것으로써, 유럽증권업계에 대한 엄중한 도전일 뿐 아니라 또한 당시 런던과 프랑크푸르트 거래소가 자신들이 주축이 된 범 유럽증권거래소의 건립을 위해 기울이고 있던 노력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하였다.

    유럽증권업계는 이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았는데, 2000년 3월 20일 브뤼셀과 암스테르담 그리고 파리 3개 증권시장이 합병하여 통일적인 ‘신유럽증권거래소’를 성립하였다. 이 새로운 거래소는 총 가치가 2.4조 유로에 달하며, 1300여 종의 증권을 포괄하였다. 이어서 5월 3일에는 유럽 최대의 양대 증권시장인 런던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가 ‘국제거래소’라고 명명되는 유럽 최대의 증권거래소를 성립할 것이라는 합병계획을 발표하였다. 업계 추정에 따르면 이 ‘국제거래소’는 유럽 증권거래 총 거래량의 53%와 하이테크주식 거래량의 83%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 합병은 “유럽증권업계가 범 유럽증권시장의 성립을 향한, 더 나아가 전 지구적 증권시장의 성립을 향해 내 딛는 견고한 일보”로 간주되었다(신화사, 2000년5월8일).

    그러나 이 합병계획을 선언한 지 5개월 후, 양자는 기능과 경영범위 및 기구 중복 등의 난제들을 해결치 못함으로써 합병계획은 결국 유산되고 말았다. 비록 그러할 지라도 첨단 전자거래수단의 기초위에서 장차 범 유럽자본시장이 설립되는 것은 대세이며, 때문에 유럽증권시장 일체화의 실현은 다만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점에 대해 당시 금융전문가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하였다.

    유럽 양대 증권거래소의 합병이 잠시 좌절을 겪었다고 한다면, 세계 각국의 증권거래소들이 광범위한 연맹을 건립하는 일은 비교적 쉽게 실현되었다. 2000년 6월 세계적으로 가장 큰 10대 주식거래소들은 24시간 영업을 실시하고 20조 달러의 시가총액과 전 세계 60% 주식을 관장하는 전 지구적 주식시장 설립계획을 선포하였다. 이들 10대 증권거래소는 뉴욕증권거래소와 동경증권거래소를 비롯하여 호주, 파리, 부르쉘, 암스테르담, 토론토, 홍콩, 멕시코, 상파울루 거래소를 포함한다. 이 전 지구적 증권거래소는 앞으로 아시아태평양과 유럽, 그리고 중동, 아프리카, 북남미 등 각 지역의 거래소를 연결하게 되는데, 일단 이 주식시장의 연합 계획이 실현되면 증권시장의 지구화 진전은 크게 앞당겨 지게 될 전망이다.

    • 배경 및 원인

    1990년대 말 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금융업자본의 전 지구적 집중운동의 기본 동인은 무엇보다 동 시기 국제적인 산업자본 집중과의 관련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 산업자본의 규모 확대와 실력 강화는 이에 상응하는 은행과 기타 금융기관의 규모 확대와 실력 강화를 요구하였다. 이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레닌은 일찍이 금융자본의 탄생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생산의 집적과 집중, 즉 산업방면의 ‘독점’의 형성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였다. 이런 분석방법론은 매우 타당하였는데, 생산의 집중은 필연적으로 생산자본과 갖가지 대부관계를 맺고 있던 은행자본의 집중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인 ‘금융자본’이 탄생하였다.

    역사적으로 18~19세기 들어 자본주의에서 산업자본의 지배적 지위가 확고히 정립된 이래, 은행 등 대부자본의 주요한 이윤 원천은 산업자본운동에 기초하게 되었다. 이 같은 사정은 지구화시대인 오늘날에 와서도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국제 산업자본은 앞장에서 서술한 것처럼 1980~90년대에 급속한 지구화과정에 직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 적응키 위해 이들은 우선 자신의 덩치를 키워야만 했으며, 이를 위해 상호간 인수합병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렇듯 지구적 범위에서의 자본축적운동을 본격화한 산업자본에 발맞추어, 기존의 다국적은행과 여타 금융기관들도 필히 최소한 그에 상응할 만큼의 국제화를 진전시키고 규모를 확대시킬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면, 다국적기업들은 해외에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거액의 설비자본을 필요로 한다. 또 공장이 설립된 이후에는 계속해서 기계 설비를 갱신하고 확대키 위한 중장기 외부자금이 필요하다. 물론 거대 다국적기업의 경우 자체 사내유보금 규모가 상당하긴 하지만, 그러나 오늘날 설비투자에 소요되는 거액의 자금수요에 비하면 기업의 내부조달금만으로는 충분히 감당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미국 다국적기업의 경우 40% 이상, 일본 80%, 서독 70%정도의 자금이 외부차입자금이라는 통계가 있다.(2) 러한 장기자금수요 외에, 단기금융에 있어서도 거대 다국적기업은 현대 금융업자본에 있어 중요한 고객이 된다. 서구 선진공업국들의 기업재무관리에 있어 중요한 원리 중의 하나가 ‘금융 레버리지(지렛대)’를 충분히 이용하는 것인데, 다국적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적극적인 부채경영을 통해 이윤 극대화를 도모한다. 그런데 이 경우 단기적인 유동성 부족은 이들 기업들이 항상 대비해야 하는 리스크가 된다. 이 때문에 다국적기업들은 일상적으로 금융기관을 통해 단기자금을 차입하여 만기가 도래한 단기채무(외상매입금·어음‧급료‧이자‧세금 등)를 상환한다. 이 외에 필히 일정 액수의 유동자금을 항시적으로 확보함으로써 원료구매와 재고확충 및 일상적인 기업경영을 유지하는 운전자금으로 활용할 필요성 때문에 금융기관과의 원활한 관계유지가 필수적이다.

    그밖에도 수출입업무는 전통적으로 은행 등 대부자본에 있어 주요한 이윤원천 중의 하나이다. 지구화경제 시대의 국제무역은 과거에 비해 더욱 급속하게 확장되는 추세를 보인다. 그런 가운데 수출입무역에 있어서 수입상이든 수출상이든 간에 신용장 발급이나 무역대금 융자 그리고 국제 간 자금결재서비스 등과 같은 관련 업무에 있어 어느 것 하나 은행 등 각종 금융기관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거대 다국적기업이 오늘날 국제무역에 있어 차지하는 절대적인 비중을 고려한다면, 이들과 관련한 무역융자는 현대 금융업자본의 대출업무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3)

    이 밖에도 다국적기업의 대외확장 시 즐겨 사용하는 수단인 현지기업에 대한 인수합병의 경우, 이 같은 인수합병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도 많은 경우 다국적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을 통해 조달해야 한다. 그리고 외환결재나 환율변동의 방비 등 다른 많은 업무와 관련해서도 다국적기업들은 필히 과거보다 더욱 현대 금융업자본과의 관계를 긴밀히 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이 같은 막대한 이윤원천을 제공하는 지구화경제의 주체인 다국적기업은 현대 금융업자본이 놓칠 수 없는 중요한 고객이며, 1990년대 들어 전자의 자본집중과 국제화의 진전에 발맞춘 후자의 상응한 변화 역시 불가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선진국 금융기관의 대규모 인수합병의 동인은 이상의 국제 산업자본과 현대 금융업자본의 기본적 관계 이외에도, 각국 간의 그리고 금융업자본 내 분파간의 경쟁적 요인 또한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이러한 요인들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4)

    첫째, 비 금융기업의 대규모 인수합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제지구화와 정보인터넷화의 부단한 강화와 경쟁으로 인해 은행과 여타 금융기관들로서도 더 큰 우위와 더욱 강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최대한의 규모와 업무범위를 확대하고 통폐합과 조직개편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특히 미국계 은행들이 먼저 인수합병을 통해 이 같은 변화를 선도하였는데, 이는 다른 나라의 금융업계에도 자극이 되었다. 여기서 미국의 은행계가 먼저 인수합병을 시작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1990년대에 미국경제가 빠른 성장력을 회복하고 다국적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대외확장에 나서는데 비해, 당시까지 소규모로 분산된 미국 은행들은 시대에 더욱 걸맞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금융기관들이 날로 다양화하고 각종 전문 금융기관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시중은행의 지위가 지속적으로 약화되었다. 당시 메릴린치, 골드만 삭스, 찰스 슈왑 등 차세대 투자은행들의 흥성으로, 이들이 기존 시중은행들로부터 대량의 저축과 고객을 빼앗아 감으로써 이름난 시중은행들의 예금액이 대폭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또 1970년대 이후 빈번히 출현하기 시작한 세계 각지의 경제위기, 예컨대 석유위기(1970년대)와 남미 부채위기(1980년대) 그리고 아시아 금융위기(1990년대) 등은 매번 시중은행에 큰 손실을 가져왔다. 이 때문에 투자은행이나 자산관리회사를 인수하여 이윤이 풍부한 이들 새로운 업무분야에 참여하는 것은 전통적인 시중은행들의 인수합병에 있어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새롭게 부상한 투자은행의 입장에서도, 비록 자신의 영역이 현재 이윤이 풍부하긴 해도 그것은 필경 불안정한 것이었으며, 또 시중은행과 보험회사에 비해 자신들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각종 위험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치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많은 투자은행들은 주동적으로 독립적인 지위를 포기하고 실력 있고 규모가 큰 시중은행에 합병되기를 원했다. 이 같은 서로 다른 금융업종 간 상호필요성 때문에 금융업계의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추진될 수 있었다.

    셋째, 금융업의 발전을 추진함으로써 오늘날 세계경제가 진입한 지구화와 개방화 시기의 요구에 부응키 위해, 미국과 유럽을 선두로 각국 정부는 모두 금융체제에 대한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그 발전에 불리한 통제를 풀거나 취소하였는데, 이 또한 업종과 국경의 벽을 뛰어넘는 금융기관 간의 인수합병의 촉진제가 되었다.

    넷째, 유럽연합과 일본 금융업계의 인수합병은 미국으로부터 자극을 받은 외에도 또한 각자의 특수한 원인이 존재하였다. 1999년 유럽연합은 내부 단일시장을 건설하였는데, 이로부터 자본과 상품 및 노동력이 자유롭게 유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기초위에서 유럽연합은 또 1999년 1월1일 11개국이 참여하는 유로존을 결성하였다. 이 때부터 유로존 각국의 은행과 기타 금융기관들은 더 이상 단일국가가 아닌 유로존 전체를 대상으로 한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유럽계 은행과 기타 금융기관들이 인수합병의 길에 나서는데 좋은 조건을 제공하였다. 각국 대형은행들이 앞 다투어 인수합병을 통해 유럽 금융시장에서의 더 많은 점유율을 위한 경쟁에 뛰어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초반부터 거품경제의 붕괴로 인한 경제 전반의 심각한 후유증이 영향을 미쳤다. 그로 인해 대량의 은행과 금융기관들이 산더미 같은 악성부채 누적으로 파산하거나 그와 비슷한 정도로 벼랑 끝에 내몰리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화와 개방화 바람에 힘입은 미국과 유럽 금융기관들의 일본 본토상륙은 일본 금융기관들의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일본의 금융기관들은 위기에서 벗어나 생존경쟁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합병을 통한 재편을 진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에는 지구화시대의 금융업자본이 그 이전 금융업자본과 비교할 때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다음 호에 계속)

    <본문 주석>

    1. 이하 1990년대 은행 및 금융기관 인수합병 관련 자료는 李琮,2002년, <당대 국제독점―거대 다국적기업>,pp.205-211,上海财经大学出版社 참조하였음.

    2. 张帆,1989년, <미국 다국적은행과 국제금융>,pp.153-154,中信出版社.

    3. 다음의 인용 글은 그 같은 사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수입상은 자신이 보유한 현금만으로 지불하기엔 보유자본수량과 자금회전속도의 제한을 받게 되어, 생산이나 수입과 판매업무의 중단을 초래할 수도 있다. 수출상은 만약 제때에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거나 또 무역대출자금을 융통받지 못하면 필히 생산자금이 적체되어 재생산이 중단되게 된다. 이 같은 불리한 결과를 피하기 위해 수출입상은 필히 은행이 국제무역신용을 줄 것을 요구(인용자 강조-주)하게 된다. 전통적인 상업신용은 분명 부분적으론 국제무역을 추진하긴 하지만, 그러나 전후 국제무역액의 방대함으로 인해 외상매출과 상업어음만으로는 대외무역의 수요를 만족할 수 없게 된다. 이외에도 전후 국제시장의 유례없이 넓고 다차원적이며 전 방위적인 상품유통은 수출입상 간의 상호이해와 신임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며, 이로써 상업신용은 불안전하거나 위험성이 커진다. 이리하여 은행신용이 날로 두드러지게 되었으며, 국제무역융자의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전후 국제무역 상품구조의 중요한 특징은 기초설비와 특정한 공사와 관련된 대형 설비세트의 수출입량의 현저한 증가(인용자 강조-주)이다. 이러한 수억 심지어는 수십억 달러의 거액무역은 여러 다국적은행의 융자가 없으면 성사될 수 없다. 이렇듯이 은행 국제무역 대부업무의 발전은 전후 국제무역의 확대된 결과이자, 동시에 국제무역 발전을 추동한 강력한 지렛대이다. ” (张帆, pp124-125). 2차 대전 이후 유로시장과 다국적은행 등 당시 금융시장과 금융업자본이 종전에 비해 크게 발달하게 된 배경에는, 이처럼 사실상 생산력발전이 가져온 국제 분업의 발전 및 이에 기초한 산업자본의 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 이하 관련 내용은 <당대 국제독점―거대 다국적기업>,pp.211-213 참조함.

    필자소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 ,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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