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소동파와 정약용
[풀소리의 한시산책] 8월, 바람결에 꽃잎으로 다가온 여인의 향기
    2019년 07월 15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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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소망 / 오광수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반가운 8월엔 
소나기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얼굴이 되고 
만나면 시원한 대화에 흠뻑 젖어버리는 
우리의 모습이면 얼마나 좋으랴? 

푸름이 하늘까지 차고 넘치는 8월에 
호젓이 붉은 나무 백일홍 밑에 누우면 
바람이 와서 나를 간지럽게 하는가 
아님 꽃잎으로 다가온 여인의 향기인가 
붉은 입술의 키스는 얼마나 달콤하랴? 

8월엔 꿈이어도 좋다. 
아리온의 하프소리를 듣고 찾아온 돌고래같이 
그리워 부르는 노래를 듣고 
보고픈 그 님이 백조를 타고 
먼먼 밤하늘을 가로질러 찾아왔으면,

8월의 칡꽃. 향도 좋고 맛도 좋다.

8월은 더위가 최고조로 달했다가 꺾이는 철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더위는 내내 계속되기에 시원한 한줄기 소나기는 반가운 존재입니다. 그런 소나기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붉은 목백일홍 밑에 누운 내게 바람결에 꽃잎으로 다가온 향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저는 여름과 향기가 겹쳐지면 늘 칡꽃이 떠오릅니다. 한여름날 산길을 걷다보면 문득 코끝을 스치는 향기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농염한 여인의 달콤하면서도 몽롱한 향기를 닮았습니다. 바로 칡꽃향입니다.

칡꽃의 향기를 제대로 맡으려면 불같은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2시쯤이 제격입니다. 이때쯤이면 작열하는 태양에 광합성은 최고로 왕성해지죠. 광합성이 얼마나 왕성한지 뿌리와 줄기가 미쳐 땅속 물기를 충분히 대주지 못할 정도입니다. 헐떡이며 거친 숨을 토해내는 잎새들은 축축 늘어집니다. 거친 숨결에도 향기가 있어 칡꽃뿐만 아니라 칡 잎새와 줄기 모두에서 칡꽃향이 나옵니다. 여름에 차를 타고 산길 숲길을 지난다면 에어콘을 끄고 차창을 열어 보세요. 문득 문득 알 수없는 향기가 스친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칡꽃 향기일 것입니다.

그나저나 저도 오광수 시인처럼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보고픈 그 님이 백조를 타고 먼먼 밤하늘을 가로질러 찾아왔으면 하는 소망이요.

소동파 – 중국 『尋夢新聞(심몽신문)』에서 인용

제가 얼마 전에 중국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기행이었습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상해에서 가흥을 거처 항주까지의 임시정부 여정만 함께 했습니다.

항주에는 유명한 서호(西湖)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손꼽히는 절경이니만큼 수많은 시인들이 이곳에 와 시를 썼습니다. 북송(北宋)의 유명한 시인이자 문장가인 소동파(蘇東坡)도 그중 한 명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시는 소동파의 「六月二十七日望湖樓醉書(육월이십칠일망호루취서)」입니다. 이번 중국 역사기행의 해설자인 이명필 선생이 서호를 안내하면서 나눠주고 낭독했던 시이기도 합니다.

六月二十七日望湖樓醉書(육월이십칠일망호루취서)
6월 27일 망호루에서 취해 쓰다

– 蘇軾(소식)솟

黑雲飜墨未遮山(흑운번묵미차산)
白雨跳珠亂入船(백우도주난입선)
卷地風來忽吹散(권지풍래홀취산)
望湖樓下水如天(망호루하수여천)

검은 구름 피어올라 산을 채 덮기도 전에
소나기 구슬처럼 튀어 뱃전으로 들이치네
땅을 쓸어버릴 듯한 바람에 홀연 훝어지고
망호루 누각 밑 물빛은 다시 파란 하늘빛

서호 서산에 있는 뇌봉탑. 소동파는 저 산으로부터 들이치는 소나기를 그렸나봅니다.

소식(蘇軾, 1036년~1101년)은 송나라 시대의 문인으로 자는 자담(子膽), 호는 동파(東坡)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소동파(蘇東坡)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하죠. 학문뿐만 아니라 시(詩), 사(詞), 서예(書藝)에도 능했으며 당(唐)나라 송(宋)나라의 8명의 문장(文章) 대가(大家)를 일컫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의 한 사람입니다.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도 모두 문장에 능해 함께 당송팔대가로 꼽히기도 합니다.

이 시는 소동파가 항주 지방을 책임지는 항주자사(杭州刺使)라는 벼슬살이 할 때 쓴 시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서호 주변은 남쪽 시가지를 빼고 동, 서, 북쪽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망호루(望湖樓)는 서호 동북쪽에 있었다니 소동파는 그곳에서 뇌봉탑이 있는 서산을 바라보며 쓴 시일 것입니다.

시를 쓴 날인 음력 6월 27일은 양력으로 치면 7월 말이나 8월 초쯤 됩니다. 모처럼 시간을 내 망호루에 유람 왔는데 서산에 먹구름이 일더니 순식간에 소나기는 호수를 건너 망호루까지 덮쳤나봅니다. 소나기는 늘 그렇듯 또 다시 순식간에 사라지죠. 언제 그랬냐싶게 맑은 하늘이 돌아오고, 하늘빛을 닮는 물빛은 다시 파란 하늘빛으로 돌아왔음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소동파에 대한 일화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가 22세 되던 1057년 과거에 응시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당시 시험관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 구양수(歐陽修)였습니다. 그도 당송팔대가 중 한 명입니다. 채점을 하던 중 소동파의 답안지를 보니 너무 뛰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장원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다 잠시 뒤 그 답안지를 차석으로 옮깁니다. 당시 시험은 누구 답안지인지 시험관이 알 수 없게 했습니다. 글씨도 관리들이 옮겨서 응시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었는데, 구양수가 봤을 때 그 답안지는 자신의 수제자인 증공(曾鞏)의 답안지일 것만 같았습니다. 구양수는 제자를 장원으로 뽑으면 구설이 있을까봐 걱정이 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소동파는 장원을 놓쳤지만, 구양수는 머지않아 문장으로는 소동파가 자신을 넘어서 사람들이 소동파만 기억할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장원을 놓친 소동파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순전히 저의 추측이지만 호방한 성품의 그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고려의 문장가 김부식(金富軾)은 그 아버지 김근(金覲)이 소식(蘇軾)을 너무 좋아해 그를 닮으라고 지어준 이름입니다. 참고로 김부식의 동생은 김부철(金富轍)인데 역시 소동파의 동생인 대문장가 소철(蘇轍)을 닮으라고 지어준 이름이라고 합니다. 암튼 고려에서도 소동파의 문장이 대유행을 했다고 합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도 비슷한 시를 썼습니다. 실학을 집대성하고, 많은 책을 쓴 다산 선생을 사람들은 학자로만 알지만 사실 당대를 주름잡던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다산 선생의 시를 볼까요?

七月三日寫景(칠월삼일사경) 칠월 삼일 풍경

–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龍氣吹腥過釣臺(용기취성과조대)
紫筠簾戶黑成堆(자균렴호흑성퇴)
二三點滴蛙先聒(이삼점적와선괄)
西北風兼犢亂回(서북풍겸독난회)
已看百谷噴飛溜(이간백곡분비류)
忽有孤雲曳斷雷(홀유고운예단뢰)
薄晩溪橋虹彩歇(박만계교홍채헐)
夕陽紅處數峯來(석양홍처수봉래)

용의 기운인가 비린내 낚시터 스치더니
문에 걸린 보랏빛 대발 어두컴컴해지네
두세 방울 비 떨어지자 개구리 먼저 울고
서북풍이 몰려오니 송아지 날뛰는구나
이미 온 산 계곡마다 소나기 들이치고
홀연히 구름 하나 천둥번개 몰고 오네
해질녘 계곡다리에 무지개빛 걷히더니
불그레한 석양에 몇 봉우리 드러나네

다산 선생 생가가 있는 능내 앞 한강 풍경

음력 7월 3일이면 양력으로는 8월 초, 중순입니다. 철도 그렇고 소나기를 소재로 한 것도 소동파의 시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서로 비슷한 듯 다르죠. 동파의 시가 일필휘지로 그린 그림처럼 활달하게 느껴진다면 다산의 시는 섬세한 수채화와 같습니다. 아마도 두 사람의 기질 차이 때문이겠죠.

여름도 이제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더위에 지치고 습한 날씨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겠지만 때로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사랑하는 마음을 나눠보세요. 들깻잎에 초승달을 싸고, 상추잎에 별을 싸서 서로에게 건네 보세요.

끝으로 정호승의 「여름 밤」을 보면서 한시산책을 마치려 합니다.

여름 밤

– 정호승

들깻잎에 초승달을 싸서
어머님께 드린다
어머니는 맛있다고 자꾸 잡수신다
내일 밤엔
상추잎에 별을 싸서 드려야지

필자소개
최경순
민주노총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과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에서 일했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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