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 여성과 한국 사회,
    당신의 ‘우리’는 무엇을 의미하나
    [모멘텀의 목소리] 진정한 ‘우리’가 되는 날은 언제?
        2019년 07월 15일 09:4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우리가 이야기하는 ‘우리’란 과연 무엇인가. 가족인가? 같은 민족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인가? 현재 ‘우리’나라의 이주민 인구 비율은 약 4%에 달한다. 그런데도 이주민들, 그중에서도 특히 이주여성들은 온갖 차별과 불평등을 겪으며 ‘우리’라는 개념에서 완전히 배제되어있다.

    도표 : “우리도 먹고살기 힘든데, 왜 이주민인가?”라는 물음은 소외당하는 이들, 곧 4%에 대한 96%의 독재를 용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의 국제결혼 지원금

    지난 1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실상 ‘매매혼’이나 다름없는 농촌총각 국제결혼 지원을 폐지하라”는 글이 올라 3만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당시 청원으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의 국제결혼 지원금의 문제점에 대한 언론 기사가 나오는 등 곳곳에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난 지금, 정부에서는 여전히 국제결혼 지원금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정부 사이트 캡처 : 최종수정일이 지난 6월 28일. 여전히 큰 어려움 없이 국제결혼지원금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국제결혼 무엇이 문제인가?

    국제결혼에 중개업이 개입한 나라는 세계적으로 매우 보기 드물다. 대만과 한국 오직 두 나라 뿐이다. 중개업이 개입한 국제결혼 시스템은 다음과 같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의 남성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에 가서 브로커에게 비용을 주고 여성을 데려오는 방식이다.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만남 후 결혼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4.5일이다. 이런 구조와 통계를 보면 중개업과 결합한 국제결혼 시스템이 이주여성을 대상화하기란 아주 쉬운 일처럼 보인다.

    지금도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아무런 대안도 없이, 버젓이 국제결혼 지원금을 지급하는 행태를 보인다. 지자체는 이런 국제결혼 지원금이 필요한 이유로 ‘지방 소멸’과 ‘저출생’을 내세운다. 그러나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물건 취급하듯 사람을 데리고 오는 폭력적인 방식은 절대 해답이 될 수 없다. 먼저 지역 사회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해결해야 한다. 다음으로 문제시하는 저출생 문제는 젠더, 주거, 복지, 교육, 환경, 노동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현상이다. 지원금만을 쥐어주면서 변화를 바라니, 지나치게 안이한 태도로밖에 볼 수가 없다.

    현재 영업 중인 결혼중개 사이트 화면

    결혼이주여성의 현실과 정치 참여

    현재 이주 여성의 귀화 같은 경우 배우자 동의가 필수다. 만약 배우자가 사망 또는 이혼하게 될 시 자녀가 없으면 이주 여성은 더 이상의 한국 체류가 힘들어진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이주여성을 그저 저출생 시대에 인구를 늘리기 위한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인권 의식이 있는 사회라면 이주 여성도 한 사람의 동등한 인격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의 선주민의 경우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피해 등을 당했을 때 각 상담소와 쉼터가 분야별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이주 여성 같은 경우 피해의 구분 없이. 상담도 없이. 곧바로 쉼터로 향한다. 그나마도 체류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국내의 미투 운동의 영향에 힘입어 지난 6월 19일, 대구에 첫 ‘폭력피해이주여성상담소’가 개소되었다(앞으로 국내에 이주여성 상담소가 4개 더 신설될 예정). 그러나 가야 할 길이 멀다. 이주여성이 직면하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외 다양한 문제에 대한 전문 상담과 긴급보호시설이 아직 부족한 상태이며, 이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취업과 창업지원 체계 또한 미비하다.

    이주여성상담소 신규설치 확정까지의 과정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10년의 노력 -> 예산 부족 핑계(2018) -> 국내 미투 운동(2018) -> 이주여성상담소 5개 신규설치 예정(2019)

    근래의 이주여성상담센터의 신규 설치는 미투의 영향과 활동가들의 지난한 투쟁으로 이룩한 한국 페미니즘의 운동 성과다. 다만 이주여성의 존재감이 아직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사자들에 대한 사회 활동과 정치 참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도서 : 보수는 왜 다문화를 선택했는가(상상너머 출판사, 저자 강미옥)

    2008년 보수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의 보수세력은 ‘다문화’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 책에서 저자는 ”보수는 일제 강점기에 성장하고 성공한 과거사가 문제였고, 신자유주의(세계화) 시대에 민족주의를 내세워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한몫했다“라며 보수가 다문화를 선택한 요인을 밝혔다.

    보수가 원하는 자본의 이익, 민족 담론 해체를 노리는 다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 평등주의’에 입각해 이주여성을 위한 정책에 당사자성을 가지고 고민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주민 인구 비율이 4%가 넘어가는 상황이다. 이런 때일수록 진보정치가 기존의 부문활동을 더욱 확장하고, 국회로 보내 이들이 정치의 영역에서 자신을 대변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야 한다.

    먼저 국회 내 진보정당들의 의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 상황에서 당장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해야 한다. 1차적으로 이주여성을 포함한 사회이 소수자들을 위해 비례성을 확대한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이 절실하다. 그리고 제도권 내에서 이주여성의 정치 참여 및 교육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다문화’라는 말의 정의

    다문화는 사회 안에서 ‘취약계층’과 다름없는 의미가 되었다. 때문에 당사자들은 듣거나 사용하기 싫어하는 단어다. 다양성을 존중하라는 의도의 조어 같지만, ‘다문화’라는 단어의 법률적 정의 조항 범위는 협소하기만 하다.

    <‘다문화’의 정의 조항>

    한국인과 외국인이 결혼 -> 다문화가족
    외국인과 외국인이 결혼 -> 다문화가족 X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다문화라는 단어를 아예 사용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기존의 차별을 없애지 않고 단어만 바꾼다고 해서 차별이 없어지진 않는다.

    차별과 혐오 그리고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행위가 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주민이자 여성인, 소수자이며 또 다른 의미의 소수자인 이들을 한국 사회의 투명인간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진정한 ‘우리’로서 함께하는 날이 하루빨리 찾아오길 바란다.

    필자소개
    정의당 정책위원회 차장 asdf5998@gmail.com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