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부자와 가난한자 떨어져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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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7월 20일 10: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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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벨트라는 제도가 우리나라에 있다. 박정희가 만든 제도이다. 박정희가 좋은 사람인가 혹은 박정희의 유신 경제가 좋은 제도인가라는 논의와는 별도로 그린벨트라는 것이 좋은 것인가 혹은 적정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생각보다는 어려운 질문이다.

    현실적으로는 중요한 기능을 했던 제도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근대화의 역사를 그린벨트라는 눈으로만 본다면 박정희가 만들었고, 점차적으로 사라지게 될 제도의 하나이다. “그린벨트를 지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 자체가 바보 같은 질문이다.

    임대주택에 관한 최신 이론들

    박정희가 최고의 힘을 가지고 있을 때 만든 이 제도는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민주화된 사회가 합리적인 힘으로는 이러한 제도를 만들 수 없다는 데에 문제의 가지고 있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 지난 4월 13일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개발제한구역 주민생존권사수 결의대회. (과천=연합뉴스)
     

    임대주택이라는 제도 역시 좋은 제도이다. 부동산 투기라는 현실이 아니더라도 경제적 약자에게 임대라는 형식을 빌어서 공공이 주거권을 안정화시킨다는 것도 좋은 제도이다. 임대주택에도 자신의 논리와 이론들이 전개되고 있다.

    현재까지 제시된 이론들을 약간 투박하게 정리해보면, 프랑스 HLM(낮은 임대료주택)처럼 임대주택단지를 만들어서 가난한 사람들끼리만 서로 살게 한다면 이것이 할렘과 같은 ‘게토’가 될 것이므로 어려워도 가난한 사람과 부자들이 같이 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이론들이 비교적 최신 이론들이다.

    그리고 가난해서 임대주택에 살지만 이 사람들이 대중교통으로 너무 격리되고 그들의 일자리로부터 너무 원거리를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심으로부터 너무 먼 거리로 밀어내면 안 된다는 이론도 비교적 최신 이론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임대주택이 너무 조그만 평수로 만들어지면 진짜 가난한 사람들만 살고 중산층은 입주할 수 없기 때문에 평수를 늘여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이 있다. 노무현 시대에 새로 생긴 임대주택 이론이다. ‘고급 임대주택’이 가지고 있는 ‘주택가격 조절기능’이 판교의 임대주택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와 함께 30평형대의 임대주택이 필요하다는 주장 같은 것들이 최근에 나온 이론들이다.

    그린벨트 없애는 핑계가 된 임대주택

    임대주택은 좋은 제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린벨트를 없애는 장치로 활용이 되었다. 이미 5년 전의 논쟁이다. 환경단체도 활동가들만 보자면 도시빈민에 가까운 사람들인데, 이러한 환경단체가 도시빈민의 적으로 간주되던 순간이 바로 이 임대주택 문제였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빈민운동 단체와 환경단체 사이에 전선이 형성되었고, 이 사건 이후로 환경단체는 도시중산층들을 대변하는 단체라는 오해가 ‘단단’하게 형성되었다.

    더 근원을 따져보자면 고급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두어서 소위 ‘택스 리사이클링’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임대주택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되는 것이 정상적이지만, 6년 전에는 이러한 논의를 펼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소위 정부가 이야기하는 ‘보유세’는 일반세원으로 정부에 들어가 부동산과 토지에 대한 정책과는 별로 상관없는 곳으로 빠져나간다. 정상적이라면 비싼 집에서 거두어들인 세금이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을 안정시키는 곳으로 나가는 것이 맞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일이 그렇게 전개되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절대로 부자 동네에 임대주택을 만들어줄 수 없다는 거주민들이 반발이 부딪히고, 세원도 부족하기 때문에 더 싼 토지를 원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공유지’로 눈이 가게 마련이고, 도시의 가장 큰 공유지인 그린벨트로 임대주택이 향하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

    그린벨트는 풀리고 임대주택은 거부되고

    물론 그린벨트가 순수 공유지였다면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파헤치지는 않게 될 것인데, 그린벨트 내에는 오랫동안 자신의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한 눈물겨운 ‘지주’들이 존재하고, 그래서 6년 동안 서로 자신의 그린벨트를 먼저 풀자고 하는 로비 아닌 로비들이 진행되었다.

       
    ▲ 재건축 공사가 한창인 잠실 서울 아산병원 뒷편 성내천 주변 아파트 재건축 현장. (서울=연합뉴스)
     

    이 와중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나마 싼값에 그린벨트를 사들이는 일이고, 여기에 공공의 돈을 투입해서 임대주택이라도 짓게 해주는 일이다. 건교부에서는 그린벨트를 풀어서 만드는 공공 택지개발의 절반 이상은 임대주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정도의 장치를 만들었다.

    이 와중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눈물나는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그린벨트를 풀기를 원하는 지자체는 임대주택으로 그린벨트를 풀겠다고 저마다 “저요, 저요”를 외쳤는데, 막상 “누가 들어와서 살지?”라는 질문에 당면해서는 조금이라도 임대주택을 줄이겠다고 아우성을 치게 되었다. 그린벨트를 푸는 일에 대해서는 적극 찬성이지만, 임대주택을 받아들이는 데에 대해서는 아무도 원치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북한산 줄기를 파고 올라가는 은평구의 뉴타운 사업이 이 딱 한 가운데에 있다. 북한산의 그린벨트를 임대주택을 위해서 풀었는가 아니면 뉴타운을 위해서 풀었는가? 애매하기는 하다. 이 해석이 은평구의 뉴타운이 고급주택단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임대주택 절반을 포함한 서민 주택단지가 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북한산 그린벨트 해제, 임대아파트용인가 뉴타운용인가

    이 건과 관련해서 규모에 대해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의심해도 좋지만, 임대주택 건에 관해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의심하기가 좀 애매하다. 하여간 이 사건은 누군가 앞뒤 사정을 살펴보고 행정소송을 내기 이전까지는 애매한 상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의 집값 안정 대책으로 송파신도시에 대한 정부 발표가 있었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문무대를 포함한 이 그린벨트를 해소한다는 데에 대해서 서울이라는 거대한 공간은 이미 모두가 그린벨트를 푼다는 데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점도 느끼고 있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의 마지막에 서 있는 것이 며칠 전에 발표된 세곡동과 내곡동을 포함한 건교부의 그린벨트 대거 해체안에 대한 발표이다. 구로구의 천왕동은 생태적으로도 상당히 우수지역이지만, 환경영향평가까지 실질적으로 종료한 상태라서, 지금에 와서는 누구도 이 그린벨트를 지켜야 한다고 나서기가 어렵다.

    전체적으로 조망한다면, 박정희가 만들었던 그린벨트라는 제도는 이제 유명무실해졌다는 한 가지 점이 있고,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가난한 사람과 부자들이 어떻게 서로를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하면서 조화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서로 헤어져서 사는 편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는 것이 이 발표의 철학이다.

    덜 가난한 사람이 진짜 가난한 사람 밀어내는 제도

    그 간의 남은 논쟁이 이 발표에 약간 ‘애교스럽게’ 반영된 점이 있다면, 가까운 지하철역이 앞으로 생길 것이라는 사항들이 같이 발표된 점이다. 환경단체나 도시빈민 운동을 주로 했던 주거권 관련 단체들은 사실 모두 속았다. 지하철이 아주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지하철을 타시라! 가난한 사람들을 도심에서 먼 곳에서 격리시킨다는 그런 엉뚱한 주장들은 이제 하지 마시라!

    남은 질문들이 몇 가지가 있기는 하다. 실제로 이 허울만 좋은 국민임대주택도 아파트처럼 분양할 것인가, 그리고 분양한다면 가격은 얼마나 할 것인가? 물론 분양한다. 판교에서 본 것처럼 분양한다. 그리고 가격은? 상당할 것이다.

       
    ▲ 서울 상도동 철거지의 막바지 작업이 진행되자 망루 위의 철거민이 아이를 안고 나와 진행상황을 살피고 있다. 2004.1.7 (서울=연합뉴스)
     

    한 가지 슬픈 일들은 이곳에는 도시빈민들이 심하면 비닐하우스에 필지도 없고 주소도 없이 살고 있고, 조금 사정이 나으면 무허가 주택이나 쪽방 같은 것을 형성하면서 살고 있는 곳이다. 살기가 어려워서 그린벨트 안의 공간을 점유하면서 살고 있던 사람들은 실제로는 생태조건을 열악하게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서까지 따지고자 하는 환경단체는 사실상 없다.

    그런데 이렇게 임대주택을 만들면서 진짜 도시빈민들은 갈 곳이 없어지게 되고, 그렇게 생긴 임대주택은 사실상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는 터무니없이 비싼 ‘그림의 떡’이 될 것이다. 그런 임대주택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물론 그렇기는 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등급이 있기 때문에 이런 거라도 있으면 좀 낫기는 할 것이다.

    덜 가난한 사람이 진짜 가난한 사람을 밀어내게 되는,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등급제 같은 제도가 되었고, 정부는 임대주택 ‘몇 만 호’를 건설했다고 의기양양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되면 다행인데, 정책 이행단계에서 실제로는 지자체의 반대에 직면해서 사실상 위에서 말한 수 천호의 임대주택마저도 건설단계에서는 줄어들게 되고, 소위 ‘일반 분양’이 늘어나게 된다.

    물 만난 고기가 된 건설 회사들

    잘 한 제도인가 못 한 제도인가, 딱 그렇게 답을 내기에는 이제는 너무나 복잡하고 복합적인 사건이다. 그린벨트에 대한 논의는 이미 수 년 전에 물 건너갔고, 기왕 임대주택으로 지을 거면 어떻게 제대로 가난한 사람들이 약간이라도 편의를 느낄 수 있고, 이 안에서라도 소외되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없는 사람들을 몰아넣고 혹시라도 차별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는 셈이다.

    프랑스가 안고 있는 빈민촌의 고민들의 첫 출발이 우리에게도 지금 제도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자본주의 내에서 이 문제를 지혜롭게 푼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린벨트가 풀려서 드디어 가난한 사람들도 집을 가지게 되었다고 기분 좋게만 바라볼 일만은 아니다.

    한 가지는 확실한 것이 건설 회사들은 또 한 번 물 만났다. 그리고 이게 경기부양책이 아니라고? 위의 사업들은 거의 모든 제도절차가 끝났기 때문에 그 유명한 ‘토지수용’이 되면서 지주들에게 돈을 풀어준다. 경기부양책 맞고, 재정정책 맞다.

    또 한 번 ‘주거권 보장’을 요구하면서 철거 용역회사 앞에서 싸우는 진짜 도시빈민들의 눈물나는 싸움이 눈앞에 있고, 이러거나 저러거나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아파트만 세우면 되는 건설 회사들의 즐거움이 또 한 번 눈앞에 있다. 이놈의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1977년에 발표된 윤흥길의 중편소설 : 편집자) 의 쫓겨나는 역사와 국민들만 기만하는 국민주택의 역사는 끝나지도 않고 다시 한 번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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