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중 배역에 갇히지 않은 현실의 좌파
        2006년 07월 22일 02: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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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4월 대선 1차 투표에서 장-마리 르펜 국민전선(Front National) 후보가 2위를 차지하며 급부상한 것은 프랑스를 경악에 빠뜨렸다. 좌파와 우파를 대표하는 정당의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관행이 정착돼 온 프랑스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타나자 양식 있는 프랑스의 가수, 운동선수, 배우,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프랑스 유권자들에게 우익 국민전선에 투표하지 말 것을 홍보하는 영상물을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이 가운데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프랑스 영화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Gerard Depardieu)가 포함돼 있었다.

       
     

    <아스테릭스 : 미션 클레오파트라>, <비독>, <102 달마시안> 등에 출연한 프랑스의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는 이 영상물 출연에 이어 그해 6월 총선에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샹송가수 쥘리에트 그레코 등과 함께 대선 이후 자금난에 시달리던 공산당에 거액의 선거자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드파르디유는 1948년 12월27일 프랑스 중부 상트르주 샤토루에서 가난한 금속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는 12살때 학교를 중퇴하고 가출을 해 홍등가에서 매춘부들과 함께 살았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각국을 떠돌며 부랑아 생활을 하며 차를 훔치고 상점에서 물건을 슬쩍해 암시장에 팔아넘기는 등 전형적인 비행청소년 생활을 했던 드파르디유는 연극학원에 다니던 한 친구의 권유로 배우수업을 받게 되면서 인생의 행로가 바뀌었다.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드파르디유는 17살때인 1965년 단편영화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이후 그는 텔레비전 연속극에도 출연하고, 단역이지만 자주 영화에 출연도 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영화 연기는 1970년대 시작됐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1976년작인 <1900년>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소작농의 아들 올마역으로 열연한다. 20세기초 노동자, 농민의 저항이 폭발하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드파르디유는 사회주의에 눈을 뜬 후 파시스트와 봉건적 지주와 맞서 싸우는 배역을 수행했다. 드파르디유 특유의 강하고 정열적인 남성 캐릭터는 이 영화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으로 프랑스의 인기배우로 자리를 잡은 그는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마지막 지하철>(Le Dernier métro), <이웃집 여인>(La femme à côté)의 주연을 맡았고 <마지막 지하철>로 세자르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 영화 <마르탱 게르의 귀향> 포스터.
     

    1982년에는 중세 봉건제가 점차 무너져내리던 16세기 프랑스의 한 농촌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의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마르탱 게르의 귀향>에 출연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드파르디유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소재로 한 <당통>, <까미유 끌로델>, <시라노> 등에 주연으로 나와 호평을 받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몬트리올, 깐느, 베니스 영화제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전성기를 구가한 드파르디유는 1990년대 들어 헐리우드로 진출해 앤디 맥도웰과 함께 출연한 코미디 영화 <그린카드>, <1492 콜럼버스>, <아빠는 나의 영웅> 등으로 미국인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1993년에 드파르디유는 19세기 프랑스 탄광촌에서 사회주의 사상에 점차 눈을 떠가는 광산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제르미날>에서 파업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에밀 졸라의 원작을 클로드 베리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1860년대 불황에 휩싸인 프랑스 북부의 탄광촌에서 벌어지는 파업투쟁의 비극적 결말을 그리고 있다.

    이후 DD프로덕션이라는 영화사를 만들어 영화 연출, 제작에도 손을 댄 그는 지금까지 프랑스는 물론 영국,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지에서 1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거나 연출, 제작했다. "세계 영화계에 대한 프랑스의 선물", "프랑스의 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받은 드파르디유는 2005년 11월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가난하고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거친 드파르디유는 <1900년>, <당통>, <제르미날> 등 사회성 짙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이런 극중 캐릭터는 현실에서도 이어져 드파르디유는 프랑스공산당과 깊은 유대를 맺고 있다.

    그는 지난해 극우 정치인 르펜의 결선투표 진출에 대해 "프랑스의 수치"라며 "공화국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르펜을 찍지 말자"라고 프랑스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로베르 위 공산당 대표와도 친밀한 관계에 있는 드파르디유는 공산당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모터사이클과 포도주를 좋아하는 프랑스의 국민배우 드파르디유는 종종 이브 몽땅과도 비교되고 있다. 이브 몽땅 역시 국민배우로 불렸고 공산당의 당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민들이 이들을 사랑하는 것도 이들의 뚜렷한 정치적 신념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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