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민족주의의 발흥?
[사회운동 포커스]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 결정과 정치적 책임
    2019년 07월 12일 10: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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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의 <사회운동 포커스>의 글 중 일부를 레디앙에 게재할 예정이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의 경제보복과 한국의 반발이라는 최근 현안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담은 글이다. 이후에 이번 한일 갈등의 국내, 국제적 배경과 전망 등을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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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경제화:
동아시아에서 무역제재가 민족주의의 무기가 되고 있는가

지난 7월 3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대한 수출규제 보복을 즉시 철회하라>는 사설을 발표했다. “경제교류에 정치대립을 끌어들이면, 한일관계에 헤아릴 수 없는 상처를 입힌다”는 것이 그 핵심적 근거였다. 중국은 센카쿠/다오위다오 분쟁을 계기로 희토류의 대일 수출을 중단했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안보를 근거로 중국에 대한 관세인상을 단행했다. 바야흐로 동아시아에서 무역제재가 민족주의의 무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각국은 ‘역사 문제’라는 폭발적인 이슈를 안고 있다. 어느 누구라도 상대국과 상대국민을 배척하는 민족주의적 정서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일 수 있다. 어느 한 편에서라도 불길이 타오르면 다른 편에서는 더 큰 맞불을 붙여야 한다는 정서가 들끓는다. 나아가 배타적 민족주의의 위험성은 자신에 동조하지 않는 국내 개인, 집단마저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곧장 ‘민족의 배신자’, ‘매국노’라는 딱지가 붙어버린다. 예를 들어 일본산 제품의 불매운동을 주창하는 논자라면, 이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배신자로 취급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주의가 한 번 폭발하여 정치적 분위기를 장악하게 되면, 누구도 이를 쉽게 제어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의 경제화, 곧 무역이 민족주의의 공격무기가 되어버린다면, 무역전쟁은 피할 수 없고, 그 결과는 상호파괴일 뿐이다. 즉 모두가 패배자가 된다는 뜻이다.

정치의 사법화:
사법부가 외교정책의 최종 결정 주체인가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의 판결이다. 대법원은 일본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첨예한 외교사안이 어떻게 대법원의 판결에 좌우되는 상황이 되었는가. 과연 사법부가 외교정책의 최종 결정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려진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 당시인 2005년 8월 26일에 개최된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 보도자료를 보면, 정부는 이해찬 국무총리 주재로 민관공동위원회를 개최하고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의 효력범위를 논의했다. 이때 정부는 “한일협상 당시 한국 정부는 고통받은 역사적 피해사실에 근거하여 정치적 차원에서 보상을 요구하였으며, 이러한 요구가 양국 간 무상자금산정에 반영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청구권협정을 통하여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 불은 개인재산권(보험, 예금 등), 조선총독부의 대일채권 등 한국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라고 정리한 바 있었다.

이를 해석해 보면, 한일청구권 협정에 대해 역사적으로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과, 한일청구권 협정을 외교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인정하는 측면이 있다. 즉 한일청구권 협정이라는 현실을 우리만의 주관적인 해석으로 부정할 수는 없고, 그 현실 토대 위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현 정부의 전신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노무현 정부 당시, 총리였던 이해찬 씨는 지금 여당의 당대표이고,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민관합동위 위원이기도 했던 문재인 씨는 지금 한국의 대통령이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에 그러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고 사태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여당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사법부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의 의도적 방기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공익과 관련된 재판인 경우,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고, 대법원도 제출을 요청할 수 있다. 미국도 외교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연방대법원이 국무부의 의견을 듣는 ‘법정조언자’ 제도가 존재한다. 고도로 정치적인 사안인 외교적 사안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이 정치적 판단에 비해 우월하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아니, 오히려 고도로 정치적인 사안일수록, 국민의 정치적 대표자들이 판단을 내리는 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한다. 외교적 사안마저 사법부의 판단에 의존한다는 것은, ‘정치의 사법화’의 극단적 형태이며, 실제로는 정치의 소멸이다.

여당이 나서서 반일 민족주의를 조장하는가?

이처럼 여당과 청와대의 책임이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수출제재가 단행되자, 더불어민주당의 <일본 경제 보복 대책 특위> 위원장, 최재성 의원은 “의병을 일으킬 만한 사안”이라고 발언했다. 이는 마치 국민적인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거나, 정부 차원에서 대응보복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신호를 주기 쉬운 표현이었다. 여당 특위장이 이렇게 신중하지 못한 발언부터 내놓는 현실을 보면, 여당이 이번 사안을 여당 지지세력의 집결을 위한 정치적 소재로 활용하는 데 우선적 관심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2005년 <민관공동위>는 1975년 한국 정부, 즉 박정희 정부가 피해자 보상을 불충분하게 행한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규정했다. 즉 지난 정부의 잘못을 짚으며, 한국 스스로 자성해야 할 바가 있다고 말한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여당과 정부는 현 사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존재하지 않는지, 자성해야 한다. 또한 여당이 먼저 나서서 반일 민족주의를 조장하며,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듯한 태도를 우리 사회운동은 규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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