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정부의 '부자 할아버지 만들기'
        2006년 07월 18일 05:58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지난 12일, 서경석 이석연 등이 주도한 한미 FTA 찬성 집회에 동원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돈을 받았다고 한다. 4000원. 박정희 시절 취로사업 때에도 사람을 이리 헐값에 쓰지는 않았다.

    한미 FTA에 진짜 찬성하는 사람들이 보증금 1억에 월세 567만 원짜리 삼성 실버타운 쇼파에서 TV를 지켜보고 있었을 그 때, 종로 무료급식소에서 이끌려온 그 분들은 장맛비를 맞으며 고명하신 전직 시민운동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에 아예 국민건강보험이 없다든지, 한국 보건복지부가 미국의 논리를 그대로 흉내내 공적연금을 개악하려고 한다든지, 그 분들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한국 경제가 세계 10위라거나, 한미 FTA가 되면 한국 경제가 흥하거나 망한다는 얘기 역시 너무도 멀고 멀다.

       
     ▲ 최민식 부산 1990 (http://human-photo.com/)
     

    어림잡아 20만 명의 노인이 밥을 굶는다. 가난으로 노인 자살이 10년새 네 배나 늘어, 꿈에 그리던 OECD 1위를 차지했다. 그 노인들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려는 경제대국이 아니라, ‘늙으면 죽어야 하는’ 제3세계에 살고 있다.

    7월 14일, 보건복지부는 “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 사회협약을 반영”하여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하였다. 273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계획 중에는 긍정적인 정책 계획도 적지 않은 한편, 눈여겨 볼 대목도 많다.

    ‘국민연금 적정부담 적정급여’라는 대목은 ‘부담률 인상 + 급여율 인하’라는 정부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은 것이다. ‘조기퇴직을 억제하기 위해 60세 이하 퇴직시 연금 감액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보고 있자면, 마치 사람들이 일하기 싫어 일찍 퇴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나는 88%의 노동자 연금을 깎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기업의 임금 부담을 덜고 고령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임금피크제와 파트타임제를 실시’한다는 것은 이 계획이 철저히 노동유연화 원칙에 입각해 있음을 보여준다. ‘노인 일자리 내실화를 위해 공익형 일자리 비율을 축소하고 생산성이 높은 일자리 비율을 확대’한다니, 그나마 있던 공공근로 일자리마저 없애겠다는 것이다.

    ‘미국 일본과 같이 요양산업에 대한 민간영리법인의 참여를 유도… 개인연금 활성화를 위해 세제 지원을 검토… 노인층의 자산소득을 늘리기 위해 금융상품 영업을 자율화.’ 우리 노인네들은 고급 실버타운에서 돈 푼 깨나 만지며 투자처를 찾는 유한계층인가 보다. 이제 ‘부자 할아버지’가 아니면, 늙으면 죽어야 하는 속설을 실천하는 도리밖에 없다. ‘VIP종신보험’과 ‘노블카운티’ 사업에 앞서 뛰어든 삼성은 천리안을 가진 것인가, 자신의 정부를 가진 것인가?

    민주노총과 참여연대의 참여에 힘입어 확정 발표된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 스스로가 그 원칙과 대강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고령친화산업에 민간기업의 시장 진입을 촉진하여,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 마련… 고령사회에 대비하여 금융시장을 선진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노인 문제는 경제성장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보다 훨씬 못살았던 시절에 밥 굶어 자살하는 노인들이 이처럼 많았던가? 국민소득은 늘었으나, 비정규직의 급증으로 인해 가구원 각자의 가구소득 기여 비율은 줄어들었고, 이는 노동력을 갖지 못한 노인 부양의 회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가 노인 문제를 부른 것인데, 노무현 정부는 더욱 첨단화된 신자유주의 노인산업 계획을 밀어부치겠단다.

    정부가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의 진보진영 역시 노인을 멀리해왔다. 노인 인구가 강력한 보수 지지였기 때문이었고, 진보진영과 역사적 세대적 경험을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노인보다는 아동에게 우선 투자하는 것이 사회 합리성과 미래 보장에 훨씬 부합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 누가 그들을 껴안지? 대한민국은 곳곳의 전쟁터에서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그들의 저임금을 원시축적 기반 삼은 한국 자본주의는 산업전사라는 알량한 칭호만 수여했고, 노무현 정부는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데… 노인은 우리의 또 다른 미래다. 노동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 모든 현세대의 미래다. 무리가 자신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믿음은 사회 안정과 발전을 위한 최소의 합리성이다.

    조금 있으면 8월이다. 좌익이든 우익이든 입에 거품 물고 조국과 민족의 영광을 떠들어대는 계절이 왔다는 말이다. 조국과 민족을 말하기 전에 그 조국과 민족을 만든 사람들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FTA 찬반의 열정이 휩쓸고 지나간 새벽녘, 신촌역 벤치에는 하얗게 머리 새고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가 그 작은 몸피를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었다.

    이 글은 시민의 신문(ngotimes.net)에도 함께 실립니다. <편집자 주>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