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 수수료 협상,
    카드사와 대형가맹점의 파워게임
    [금융정의] 파워게임의 피해자는 고객과 소비자
        2019년 07월 03일 04: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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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시장에서 갑과 을의 위치는 더욱 명확하다. 자본에 따라 그 위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카드수수료 시장의 구조적 위치를 들여다보면 갑을 관계를 더욱 선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카드수수료’를 둘러싼 파워게임

    카드수수료 인상을 놓고 카드사와 대형가맹점이 공개적인 논쟁을 벌이며 고객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 시작점은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말 발표한 ‘카드수수료 개편방안’이다.

    금융위원회 개편방안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대형가맹점(매출 500억 원 이상)과 일반가맹점(매출 500억 원 이하)의 수수료 역진현상(카드수수료는 매출액의 범위에 따라 결정되는데 기존에는 대형가맹점의 수수료율이 일반가맹점보다 낮았음)을 해결하기 위해 일반가맹점의 수수료율을 낮추는 것, 둘째는 수익이 줄어들어 경영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카드사의 볼멘소리에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대형가맹점의 수수료율을 인상하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금융위원회의 정책이 나온 데에는 카드산업 이해당사자들(중소상공인, 카드사 노동자)의 절박한 요구와 노력들이 있었다.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대형가맹점과 카드사라는 거대한 기업들 사이에서 불공정하고 차별적인 카드수수료를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중소상공인들의 현실과 요구를 받아들여 수수료 인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에 수익이 줄어들 것을 예상한 카드사들이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며 카드사 노동자들과 중소상공인단체들의 싸움을 부추겼지만, 이들은 싸움이 아닌 상생을 택했다. 지난해 11월 카드사 노조와 중소상공인단체는 중소상공인은 인하, 대형가맹점은 인상하는 ‘차등수수료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며 상생으로 한 발짝 나아갔다. 이와 같은 사회적인 목소리와 노력들로 인해 일반가맹점의 수수료율 인하는 이미 시행이 되었지만, 대형가맹점의 수수료율 인상은 현재 요원한 실정이다.

    당연히 수수료 인상안을 받아들일 리 없는 대형가맹점은 ‘계약해지’를 무기로 카드사들을 압박했고, 수익 악화가 우려되는 카드사는 노동자 구조조정을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쌍용차와 GM은 카드회사에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통신사들은 카드수납대행을 거절하며 반발하고 있어 이 거대한 파워게임의 피해가 고스란히 고객과 소비자, 카드사 노동자들의 몫이 될까 우려된다.

    대형가맹점은 ‘슈퍼 갑’

    카드사는 가맹점에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그에 대한 대가로 수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카드사는 이 수수료 중 일부를 다시 마케팅 비용(포인트나 부가서비스 등)의 일환으로 가맹점에 돌려주고 있다. 물론 이 마케팅 혜택의 대부분은 대형가맹점에게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일반가맹점이 대형가맹점보다 높은 수수료율을 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물론 올해 금융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일반가맹점의 수수료율은 낮아졌다.)

    2018년 카드사 대형가맹점 대상 경제적 혜택 제공 현황

    지난 3월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학영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형가맹점들은 일반 자영업자에 비해 낮은 카드수수료를 내면서도, 카드사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는 형태로 상당한 부분을 보전 받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중소상공인에 해당하는 일반가맹점이 대형가맹점의 경제적 이익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국내 8개 카드사가 지난해 법인카드 고객사에서 받은 연회비 수익은 148억 원인데 이들에게 돌려준 경제적 이익은 4166억 원에 달했다. 카드사는 연회비의 30배에 달하는 금액을 법인카드 고객에게 다시 돌려주는 ‘이상한’ 관계를 맺고 있던 것이다. 이처럼 대형가맹점이나 법인고객들이 마케팅 혜택을 독차지하며, 그들 사이에 ‘이상한’ 관계가 정립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형가맹점은 일반가맹점에 비해 보유하고 있는 고객의 규모가 훨씬 크다. 따라서 그만큼 시장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 위치는 곧 그들의 경쟁력이자 자본으로 표현되고,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들은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코스트코’의 사례다. 지난 18년 동안 삼성카드와 재계약을 거듭하며 협력관계를 유지해 온 코스트코가 5월 24일자로 제휴 카드사를 현대카드로 변경했다. 코스트코는 수수료 비용을 낮추기 위해 한 카드사와만 제휴를 맺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100%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코스트코와 새로이 계약을 맺은 현대카드와, 이마트트레이더스를 새로운 계약처로 삼은 삼성카드 사이에 과도한 마케팅이 벌어졌다. 결국 카드사는 대형가맹점과 계약하기 위해, 혹은 대형가맹점에게 선택받기 위해 그들에게 마케팅 혜택을 집중하고 있다. 이것이 대형가맹점인 코스트코와 이마트가 가진 자본의 힘이다.

    이를 두고 자본주의 시장에서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과당경쟁을 막고 그 혜택을 누리는 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공평함은 갖춰야 하지 않을까. 현실은 대단히 불공평하다. 카드수수료의 원가 산정에는 마케팅 비용이 일괄적으로 포함되지만 이 마케팅 혜택은 대부분 대형가맹점이나 법인고객이 누리고 있다. 일반가맹점은 동일하게 마케팅 비용을 부담하지만 그에 따른 혜택은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을 보고도 과연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수익자부담 원칙이 지켜진다고 볼 수 있을까.

    또한 이것을 카드사의 선택 혹은 잘못된 정책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만, 만약 카드사가 대형가맹점에게 혜택을 주지 않겠다고 했을 때, 대형가맹점은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일까? 아마도 대형가맹점은 카드사에게 계약해지 엄포를 놓으면 그만일 것이다. 이렇듯 그들은 엄청난 자본을 보유한 ‘슈퍼 갑’이기 때문에 그들과 계약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것은 오로지 카드사의 몫이며, 이는 결국 과당경쟁의 원인이 될 것이다.

    반쪽짜리 정책을 내놓은 금융위원회의 무책임함

    중소상공인의 카드수수료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와 금융위원회는 ‘카드수수료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금융위원회는 카드사에 대형가맹점에 대한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일반가맹점의 수수료를 낮추는 대신 대형가맹점의 수수료를 인상하라고 권고했지만, 문제는 대형가맹점에 집중되는 마케팅 혜택과 수수료 역진현상뿐만이 아니다. 혼란이 뻔히 예상되는 정책을 통보해놓고 구경꾼마냥 손 놓고 있는 금융위원회와 정부의 무책임함이다.

    과연 정부가 수수료를 인상하려는 카드사와 이를 거부하는 대형가맹점의 갈등을 예상 못했을까? 아마 정부는 대형가맹점이 수수료 인상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정도는 예상했을 것이다. 현행 법률에서는 대형가맹점이 굳이 수수료 인상을 받아들일 어떤 이유나 의무는 없다. 그렇기에 대형가맹점의 갑질로 인한 수수료 역진현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금융위원회가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 의지가 있었다면, 대형가맹점이 수수료 인상을 받아들일 강제적인 요소를 정책에 추가했어야 했다.

    그저 대형가맹점의 눈치를 보며 서민들을 위하는 척 보여주기 식 정책을 펼친 것이 아니라면, 금융위원회와 정부가 카드수수료 문제 해결을 위해 그 정도의 의지는 보여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따라서 현재 카드수수료 사태는 중소상공인의 카드수수료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반쪽짜리 해결책을 내놓은 정부와 금융위원회가 매듭지어야 할 일이다.

    파워게임의 피해자는 고객과 소비자

    물론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카드사 경쟁력 강화 및 고비용 마케팅 개선방안’을 통해 카드사들이 대형가맹점과 법인에 과도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법령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에서도 최근 카드 신제품을 출시할 경우 수익성 심사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미 일반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수익이 줄어들 것을 예상한 카드사가 대형가맹점의 수수료 인상에 실패할 경우, 결국 그 부담을 고객과 소비자에게 지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올해 수익 악화가 예상된다고 하지만 지난해 카드사의 실적을 살펴보면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금융감독원 보도자료에 따르면 실제 8개 전업카드사들은 지난해 1조 4천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그러면 이 수익은 어디서 났을까? 바로 카드수수료와 고율의 현금서비스 이자, 카드론을 통한 수익이다. 실제로 가맹점 수수료 수익이 6천억 원, 카드론 수익은 4천억 원 증가했다. 또한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중소상공인이 지불하는 수수료 중 마케팅 비용으로 들어가는 것은 30%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대형가맹점 수수료 중 60~140%를 마케팅 비용으로 지출한 것과 비교하면 크게 차이 나는 수치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어쩔 수 없다지만, 결국 카드사도 대형가맹점의 눈치를 보며 고객과 중소상공인들의 쌈짓돈으로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가맹점의 카드수수료를 인하하고, 대형가맹점의 수수료 인상이 힘들어지자 제일 먼저 나온 이야기는 ‘카드사 고객의 혜택 축소’와 ‘카드사 노동자 구조조정’이다. 결국 그들은 파워게임에서 자신들의 책임은 쏙 빼놓은 채, 오로지 서민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정부와 금융위원회가 추진했던 중소상공인을 살리기 위한 카드수수료 정책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수료 개편에 앞장섰던 금융위원회는 뒷짐을 지고 방관만 할 것이 아니라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대형가맹점에 대한 수수료 하한선 지정 법제화 등 강력한 후속조치를 즉각 시행해야 한다. 서민을 위해 시행한 정책이 다시 서민들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정책이 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정부가 책임감 있게 나서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금융정의연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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