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다 적색이면서 보다 녹색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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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28일 06: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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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을 며칠 전에 탈당했습니다. 별반 열심히 활동한 건 아니었지만 애정을 가지고 함께 했던 첫 정당이었는데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어제 민주노동당으로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며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고 나온 사람들이 모여서 새출발을 다지는 발족식에 다녀왔습니다.

    새로운 진보정치운동의 대표로 나선 분들은 말씀하십니다. 종북주의가 당을 망쳤다. 또는 운동권 써클주의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했다고.

    그렇습니다. 주사파도 문제지만 사실은 그동안 함께 공범으로 연명했던 많은 운동권의 패거리 정치가 당을 망쳐온 주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사람들과 다른 자기들만의 언어와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상식과 합리성조차 부인되는 조직운영은 확실히 민주노동당을 위기로 몰아넣은 원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까

    발족식이 열리는 연단 상단 중앙에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 무슨 뜻인지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연결이 잘 되지 않습니다.

    ‘보다 적색으로’란 말을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까요. 제대로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노동자 중심성을 강화하고 꾸준히 혁명을 위해 노력한다? 아니면 혁명은 아니지만 승자독식 자본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사회복지를 확충하고 사회연대를 실천한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라면 민주노동당에서 종북주의를 몰아내고 당을 민주주의적으로 잘 운영하여 제2창당을 위해 노력하면 되지 굳이 민주노동당을 박차고 나와서 풍찬노숙의 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혹, 당을 장악한 주사파 때문에 혁신이 안 된다고 말한다면 그건 당권경쟁에서 밀려난 정파의 무능력한 핑계일 뿐입니다. 또한 그동안 함께 공범으로 당을 망쳐온 나머지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낡은 진보의 원인 종북주의"는 폐렴환자에게 감기 진단하는 것

    우리가 과거의 낡은 진보를 버리고 새로운 진보정치를 실천하고자 한다면, 과연 무엇이 낡은 진보인지 스스로에게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낡은 진보가 다 주사파 종북주의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어쩌면 낡은 정치를 버릴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 만든 편리한 핑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독한 폐렴에 걸려 기침을 심하게 하는 환자에게 감기약을 처방하는 의사는 무능력자이고 어쩌면 사기꾼일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민주노동당 위기의 원인이 종북주의라고 처방하는 의사도 역시 무능력하거나 사기꾼, 그도 아니면 비겁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보다 녹색으로!’에서 도대체 녹색은 무엇일까요? 일회용품 줄여쓰고 자연보호 실천하는 것? 새만금 갯벌 파괴사업을 취소하고 어민과 물새떼에게 갯벌을 돌려주는 것? 진보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노동자계급만이 자본주의 극복의 주력부대가 아니라 모든 풀뿌리공동체가 새로운 주체라는 것을 깨닫는 것? 농(農)적 사회만이 진정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고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발족식에 모였던 400여명과 새로운 진보정치를 지지하는 많은 분들은 과연 녹색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적색을 되돌아보고 초록을 전망할 때 비로소 새로운 정치가 탄생합니다.

    풍족하고 안락한 생활을 위해 모든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갖고 넓은 집을 가져야 한다면,
    노동자도 저렴한 가격에 골프를 칠 수 있기 위해서 골프장을 많이 지어야 한다면,
    새만금을 막아서라도 일자리를 만들고 실업을 없애야 한다면,
    서민들이 전기를 값싸게 쓰기 위해서는 핵발전소라도 지어야 한다면,
    모두가 잘사는 복지를 위해 미래세대의 자연이라도 착취해야 한다면,

    보다 적색이면서 보다 녹색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자기를 깨뜨리지 않고는 절대로 다시 태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적색이면서 동시에 녹색인 그 무엇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속은 빨간색이면서 겉만 녹색으로 갈아입는다고 새로운 진보가 될수 있을까요. 겉은 파랗고 안은 빨간 ‘수박정당’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새로운 미래대안은 될 수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적색을 되돌아보고 초록을 전망할 때만이 비로서 새로운 미래의 대안정당은 건강하게 태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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