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결정적으로 왼쪽에 있다
[책소개]『사회주의 페미니즘』(낸시 홈스트롬/따비)
    2019년 06월 29일 11: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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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사회주의가 지난 세기의 가공물일 뿐이며, 이미 오래전에 실패한 기획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 어떤 이들은 사회주의가 여성을 해방시키지 않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몰락하기 시작한 사회주의 아래에서는 ‘남성들 역시 해방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사회주의, 즉 지난 세기에 동구권에 널리 퍼졌다가 점차 몰락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사회주의’를 인식하는 일이다. 19세기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이 상상한 이상적인 사회상에는 분명 성적 분업의 종식과 성적 평등이 존재했고, 당시 사회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로 활동한 수많은 이들이 존재했다. 우리는 이로부터 사회주의를 새롭게 전유할 수 있을뿐더러 물론 확장할 수 있다. ―해제에서

왜 사회주의 페미니즘인가
: 계급은 언제나 성별화되고 인종화된다

주지하다시피 사회주의는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금기시된 단어였고, 오늘날 페미니즘은 그야말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편에서는 대통령이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성별 임금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촛불이 밝혀졌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을 무산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극소수가 많은 부를 갖는 반면, 수많은 이들이 공식적인 빈곤선 아래에서 살아간다. 지난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 재편은 우리 삶을 돌이킬 수 없이 뒤바꿔놓았다. 누군가는 나날이 노동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임금은 밑바닥에, 사회복지 제도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며, 혐오정치가 판을 치는 마당에 페미니즘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페미니즘적인 사유가 필요한 때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문제를 제기하는 만큼이나 열악한 노동조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페미니즘이며, 성차별에 반대하는 만큼이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것도 페미니즘이며, 일국 차원에서 불평등한 시민권에 목소리를 높이는 만큼이나 전 지구적 차원에서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부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페미니즘이기 때문이다. 물론 ‘페미니즘’이 한 단어로 수렴될 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모든 사상이 그러하듯이 페미니즘에도 여러 갈래(자유주의 페미니즘,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 급진 페미니즘 등)가 있다. 그중에서도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재사유할 것을 촉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자유주의로 새롭게 진용을 짠 자본주의가 우리 삶을 완전히 뒤덮어버렸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 세계화라는 현상 아래에서 완충장치 역할을 하는 것은 대개 여성이다. 여성은 주로 저임금·장시간 노동시장에 흡수될뿐더러 가사·육아라는 이중 부담을 짊어지며, 여전히 온갖 종류의 성폭력에 노출되며, 온전한 재생산 권리를 갖지 못하며, 점점 더 빈곤해진다. 다시 말해서 한 여성의 삶은 (일국 단위에서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사회·경제적 현실과 직결되어 있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아니, 더 중요한 질문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바로 이런 질문들에 답하고자 하는 책이다. 어떤 이들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1970년대가 낳은 가공물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여성해방운동이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급진 페미니즘의 결점으로 본 것의 이론적 대응으로서 꽃피웠지만, 그 뒤로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소멸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협소하게 규정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좁은 의미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쇠퇴하고 있다.

여성 억압은 더 이상 계급 억압으로 환원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이 겪는 억압을 단일하게 규정하는 대신,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폭넓게 정의하면서 사유의 폭을 확장시킨다. “계급과 성뿐만 아니라 인종/민족이나 성적 지향 등 정체성의 다른 측면까지도 통합하는 일관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여성의 종속을 이해하려는 이들, 더불어 이런 분석을 여성 해방에 이바지하는 데 활용하려는 목표를 가진 이들”이라면 누구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이며, 이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는 “계급을 여성의 삶의 중심으로 보면서도 동시에 성적 억압이나 인종적 억압을 경제적 착취로 환원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6부 35장에 걸쳐 노동, 계급, 인종, 섹슈얼리티, 재생산, 사회복지, 정치, 경제, 자연 등 우리를 둘러싼 거의 모든 문제를 망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 얘기하려면 832쪽(이 책이 832쪽이다)이 필요할 테니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언뜻 보기에 무역은 재생산 및 성적 권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건강과 인권, 거시경제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가령 미국이 쿠바에 부과한 통상금지는(헬름스-버튼법) 쿠바 제약사업을 결딴냈고, 세계 최고의 공공 보건의료 체계를 자랑하던 나라가 순식간에 임산부 영양 부족, 산아 체중 저하, 조산 등을 우려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구상의 다른 한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에이즈가 퍼져나가는데도 사람들이 약품을 구할 수가 없었다. 초국적 제약기업들이 내놓은 약품 가격은 너무 비쌌고,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에 따라 카피약을 만들 수도 없었기 때문에.

요컨대 우리 삶을 모양 짓고 결정하는 요소들은 서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연결고리’를 직시하는 데 있으며,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수행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이론적 추상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도 않고, 경제 현실을 등한시하지도 않으며, 자본주의 문제를 지워버리지 않은 채 여성 억압을 말할 수 있는 이론은 바로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다. 따라서 분명히 말하건대,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현재 진행형 기획이다. 계급은 언제나 성별화되고 인종화된다. 우리가 삶에서 다양하게 경험하는 억압들의 연결고리가 부서지지 않는 이상,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 기획이다.

어떤 사회주의 페미니즘인가
: 여성 억압은 계급 억압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렇지만 사회주의는 이미 물거품이 되어버린 기획으로 여겨지기 일쑤고,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망각된 역사로 남았다. 자본주의하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의 물결이 전반적으로 밀려나던 때에 사회주의 페미니즘도 함께 밀려났다. 이른바 복지 개혁이 이루어지고 우파가 거세게 반격하는 가운데,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기획 중 하나였던) 집안일을 ‘노동’으로서 인식하고자 하던 기획은 힘을 잃었다. 페미니즘은 점차 여성혐오적인 문화나 재생산 권리로 방향을 돌렸다. 이런 문제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지구화 아래 생산관계가 복잡하게 뒤엉키면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가 해체된 지금,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인식 틀을 유효하게 활용할 수 있지 않은가 묻는 것이다.

원제(The Socialist Feminist Project)에서 보듯이, 이 책은 ‘기획’된 것이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먼슬리리뷰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된 2002년은 주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였고, 그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물론 이 책에 실린 글들은 2002년 직전에 긴급하게 쓰인 것이 아니며, 멀게는 1960년대, 가깝게는 1990년대를 다루고 있지만, 2002년 미국에 충분히 유효한 논의였으며, 그것은 2019년 한국에도 마찬가지다. 바야흐로 정체성 정치가 가장 강력한 운동이 된 가운데, 계급이라는 요소는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함께 망각됐다. 한편에서는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가 판을 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가 이미 사라졌다고 믿고 있는) 신분이 점점 더 공고해지고 있다. 물론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토대를 두고 있는 마르크스주의는 ‘생산노동’만을 노동이라 규정했기 때문에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는 인간 노동의 교환이 어떻게 상품 교환 과정으로 은폐되는지를 탁월하게 설명했고,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억압을 계급 억압으로 환원할 수 없음을 주장했다.

이 책 편자이자 저자이기도 한 낸시 홈스트롬이 말하듯이, “이른바 ‘여성 문제’에 대해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얼마나 불완전하든 간에 그런 불완정성을 정정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필자들은 각기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활용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고 또 반박하기도 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가 닿지 못했던 곳까지 이론을 확장시킨다.

가령 1부 ‘성, 섹슈얼리티, 재생산’은 과거 거의 모든 정치사상가들이 등한시했던,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이 이룩한 가장 눈부신 성과를 담았다. 특히 ‘월경’을 다루면서 의학이 어떻게 성차별주의를 승인하고 퍼뜨렸는지, 여성의 몸이 어떻게 노동 규율과 연결되는지(혹은 그로부터 배제되는지)를 고찰한 에밀리 마틴의 글(3장)이 흥미롭다.

이어지는 2부 ‘가족: 사랑, 노동, 권력’ 역시 대부분의 정치사상가들이 등한시한 반면 페미니즘 저술에서는 핵심적이었던 주제를 다룬다. 2부 10장에 실린 스테파니 쿤츠의 글은 가족을 협력과 갈등, 모순의 장소로 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통찰력을 인정하면서도 두 사람의 가족 분석이 갖는 여러 한계를 비판하며, 11장에 실린 앤 퍼거슨의 글은 가족과 친족 네트워크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생산 및 재생산을 하나의 생산 과정으로 개념화하면서(‘성/애정 생산’) 고전 마르크스주의가 갖는 한계를 돌파하고자 한다.

3부 ‘임금노동과 투쟁’에는 흔히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기대할 수 있는 글들이 실려 있다. 성노동을 포함해 여성 노동 현장을 성실하게 관찰하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이 글들은 박력 있고, 강력하다.

4부 ‘경제학, 사회복지, 공공정책’은 여성이 어떻게 복지 수급자로 전락하는지, 또 복지 개혁이 여성의 삶에 어떻게 성별화된 영향을 미치는지(20장, 21장) 등 다른 페미니즘 저술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은 측면들을 다뤘다. 특히 여성에 대한 사적 처벌로서의 가정폭력과, 공적 처벌로서의 투옥 사이의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충격적으로 드러내는 앤절라 데이비스의 글(22장)이 인상적이다.

5부 ‘정치와 사회변혁’은 인종 문제를 중심으로(25장, 26장, 29장), 흔히 평등 지향적이라고 여겨지는 ‘민주화’가 어떻게 젠더화된 어긋남을 만들어냈는지를 고찰한 메리 E. 혹스워스의 글에서부터,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본 ‘교차성’ 개념을 통해 여성들을 구분 짓고 분할하는 여러 억압 축을 가로지르는 폭넓은 무지개운동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조해나 브레너의 글(30장), 군대가 (언뜻 군대랑은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수많은 여성들에게 어떻게-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룬 신시아 인로의 글(27장) 등 이론적으로 흥미로운 글들이 포진해 있다.

마지막으로 6부는 ‘자연, 사회, 지식’이다. 흔히 에코페미니즘은 경제 현실을 등한시한 채 환경 보호 논리만 펼치는 것으로 오해받아왔지만, 사회주의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본 에코페미니즘은 또한 경제정의를 위한 것이기도 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환경은 밀림 같은 야생적 ‘자연’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가장 큰 미덕을 꼽아야겠다. 서구에 치우친 논의가 아니라는 점이 그것이다. 물론 832쪽이 전 세계를 다루기에 충분한 지면은 아니기에 인도, 멕시코, 필리핀 등 몇몇 지역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서구라는 경계를 넘어 다양한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지구지역적 관점을 오롯이 담아내고자 하며, 여성 해방에 젠더·인종·계급·국적·성적 실천을 가로지르는 연대가 필요함을 논증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다 읽고 나면, 과연 저자들이 주장한 대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세계 대다수 여성이 당하는 착취와 억압을 탁월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접근법”임을,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이론적 유용성과 정치적 힘을 바로 여기서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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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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